정부ㆍ여당이 원격의료 허용을 본격화하자 의료계와 노조, 시민단체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한 시민단체는 기획재정부 장관 면담 요청까지 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7일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디지털 기반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과 코로나 방역 계기 시범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운을 뗐다.

이어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기 특별연설에서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포스트 코로나’ 중점 육성 사업으로 꼽았다.

13일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은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포럼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긍정적 검토 의견을 밝혔으며, 정세균 국무총리와 성윤모 산업통산자원부 차관,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말을 보탰다.

15일에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 김강립 차관이 중앙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새로운 기술을 의료와 접목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미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계류중이다.”라며, “의료 이용의 사각지대나 현 의료체계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원격의료는 의료영리화의 발판이라며, 코로나19를 빌미로 한 원격의료ㆍ의료영리화 시도를 멈추라고 비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18일 성명을 통해 “정부ㆍ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는 본인들이 비판했던 원격의료와 이름만 다를 뿐 방향은 같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원격의료가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한국판 뉴딜’ 운운하며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이와 더불어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비대면 진료라고 말만 바꿔 의료영리화를 재추진하려는 속내가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정부ㆍ여당이 지금까지 설명한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전화상담 처방’이다. 이 조치는 이미 코로나19 확산 후 지난 3개월간 불가피하게 이뤄졌다.”라며, “그러나 예외적인 전화상담 처방만으로 ‘뉴딜’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원격의료 허용, 즉 정부ㆍ여당이 말하는 비대면 진료 허용은 의료영리화 재추진을 위한 초석으로 읽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비대면 진료’ 선긋기는 의료법 제17조 1항이 진료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는 “직접 진찰”을 우회해 원격의료가 가능한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고, 또 스스로 부정해왔던 의료영리화를 추진했을 때 닥쳐올 저항감을 낮추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라고 거듭 비판했다.

이어 “원격의료는 수 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추진되지 못했다.”라며, “의료지식이 없는 환자가 원격 진료기기를 작동하거나 자신의 증상을 말하고 원격으로 처방을 받았을 때, 오진과 의료사고의 위험성은 전문 의료진이 직접 진료받았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오진이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가 책임을 오롯이 져야만 하는지 등 책임 소재 문제도 있으며,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에게 원격의료는 지식·정보격차로 인한 의료 불평등까지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또한 원격의료가 본격화될 경우 대형 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면서, 원격의료 경쟁이 심화됐을 때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병ㆍ의원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한다는 원격의료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의료전달체계까지 무너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격의료를 대안으로 내세울 때가 아니다. 지금 시급한 것은 코로나19 환자를 진찰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원격의료가 아니다.”라며,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의 필요성은 상식이 됐다. 현재 병상 수 기준 10%에 불과한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할 방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더불어 열악한 보건의료노동 환경을 통해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함으로써 보건의료인력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의료영리화가 아니라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만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절박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 15일 원격의료 관련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에게 공개 면담을 요청하고 나섰다.

무상의료본부는 “난데없이 대표적 의료 민영화 정책인 ‘원격의료’가 코로나19 대응 핵심 정책인마냥 추진되고 있다.”라며, “원격의료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추진했던 핵심 의료 민영화 정책으로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친기업을 표방했던 두 정부의 핵심 의료 민영화 정책을 코로나19를 핑계로 문재인 정부가 되살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원격의료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바도 없고 코로나19 감염병 진단과 치료는 대면 진료가 책임져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앞으로도 원격의료는 감염병을 막지도, 진단하지도, 치료하지도 못한다.”라며, “코로나19 재난 사태에서 불가피하게 전화를 통해 이뤄진 비대면 진료의 ‘성과’를 부풀려 원격의료를 정당화하는 것은 너무 설득력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가 원격의료를 코로나19의 대응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원격의료가 숙원사업인 의료기기업체와 IT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한 혹세무민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원격의료 추진의 핵심 부서인 기획재정부 장관의 면담을 공개적으로 요청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처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는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실증을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지난 13일 중기부는 ‘제4차 규제자유특구 규제특례등심의위원회’를 통해 강원 디지털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의 사업자를 추가로 지정하고 15일 관보 고시했다.

강원 디지털헬스케어 특구에서는 코로나19로 의사와 환자 간 감염을 차단하고 의료기관 접근이 어려운 산간벽지 고령 및 만성질환자 등에 대한 원격의료 실증을 진행한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1차 병원 7개를 추가하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 원격관리 시스템 전문기업 2곳과 연세대 원주산학협력단 등 대학산학협력단 4곳을 특구사업자로 추가했다.

이번 1차 병원으로 선정된 ▲한림의원 ▲상지푸른의원 ▲한사랑의원 등은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의 원격의료 실증을 실시한다. 기존에 선정됐던 원주 밝음의원까지 총 8개 1차 병원이 실증을 진행한다.

원격관리 시스템 업체는 ▲건강마당(원격관리 서비스 운영업) ▲라이프시맨틱스(생체신호 모니터링 솔루션 지속 관리)이며, 대학산학협력단 4곳은 원격의료 실증환자 관리를 지원한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원격의료가 국민 건강 차원에서 점진적 추진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박영선 장관은 지난 15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프레임보다는 국민 건강을 지키는 효율적인 방법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균형점을 맞추고, 의료계에서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한 소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중기부에서 강원도 규제자유특구에서 원격의료 실증 작업을 하는데,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민과 사회적 합의 속에서 (원격의료가) 한 단계씩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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