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도입 논란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청와대에 이어 기획재정부에서 원격의료 검토 필요성을 잇달아 언급하면서 원격의료 도입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인데,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여전히 강하게 반대하며 투쟁을 예고하고 나서 갈등이 예상된다.

앞서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은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의 21대 국회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한 ‘혁신 포럼’ 강연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어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청와대 관계자가 원격의료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격의료는 국내법 상 불법이지만 코로나 사태로 한시적ㆍ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수석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원격의료 사례가 많이 나왔다.”면서,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소규모 병원은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이번에 해보니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수석은 강연 후에도 “한시적으로 허용한 전화 상담 진료가 17만건이 된 것은 처음 경험한 것이다.”라며, “이를 다각적으로 분석해 장ㆍ단점을 따져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지난 14일 “기재부도 비대면 의료(원격의료) 도입에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3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그동안 밝혔던 원격의료 도입과 관련한 입장이 김 수석의 발언과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김 차관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시행한 한시 조치들은 비대면 의료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다.”라며, “다만, 본격적인 비대면 의료를 위해서는 의료법 개정 등이 필요하므로 21대 국회에서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라고 역설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을 전면화하며 의료, 교육, 유통 분야 비대면 산업 집중 육성을 강조했으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원격의료, 원격교육, 온라인비즈니스 등 비대면 산업의 규제 혁파와 산업 육성에 각별히 역점을 둬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잇달아 나온 청와대, 중앙부처 발 발언에 파장이 커지자 여당은 “원격의료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건 아니다.”라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김연명 수석이 코로나19 때문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해 비대면 의료를 했더니 성과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인데, 이는 원격의료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과는 별도의 이야기이다.”라고 밝혔다.

조 정책위의장은 또, “원격의료보다는 비대면 의료라는 용어를 쓰는 게 맞다.”라고 설명했다.

윤관석 정책위 수석부의장도 “(원격의료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추진하거나 (당정이) 협의한 적이 전혀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일단 선을 그었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에 비대면 산업이 포함된 만큼, 21대 국회에서 원격의료를 위한 입법이 이뤄질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한편, 그 동안 의료 질 하락과 의료민영화 등을 우려하며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해 온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강력 반발하며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만약 정부가 ‘코로나19’ 혼란기를 틈타 원격의료를 강행한다면 모든 것을 걸고 극단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최 회장은 “환자의 의료이용 편의성이나 비용 대비 효과를 기준으로 원격의료에 대해 평가해선 안 된다. 모든 진료는 대면을 원칙으로 불가피한 가령 원양어선, 국내 극소수 격오지 등에만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 감염병이라는 비상시국을 이용해 의협이 적극적 대처가 어려울 수 있는 시점을 틈타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원격의료를 추진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의사들이 목숨을 걸고 진료하고 있는 감염병 사태 가운데 의사들이 대부분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의료계가 반대하는 정책을 동의 없이 추진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코로나19 상황에 의료민영화가 웬 말이냐.”라며, “문재인 정부는 원격의료 등 의료민영화를 철회하고, 필수 의료인력 및 의료장비를 확보하라.”고 촉구했다.

의료연대본부는 김연명 청와대 수석과 김용범 기재부 차관의 발언에 대해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를 이용해 국민 건강권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채 원격의료 기기 및 바이오 회사 지원을 목적으로 명백한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원격의료는 값비싼 디지털 장비와 통신설비를 판매하는 게 주일뿐, 코로나19를 비롯한 어떤 병도 치료할 수 없다. 게다가 환자들이 대형병원에 쏠리게 되면서 의료전달체계를 붕괴시키고, 필연적으로 민간 통신기업이 개인 질병정보를 집적하기에 정보유출 위험이 있어 대표적인 의료민영화 정책으로 꼽힌다.”라고 지적했다.

의료연대본부는 이어 “세계적으로도 안전성 효과성이 전혀 검증되지 못한 원격의료에 목을 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반문하며, “코로나19 또는 벽지ㆍ오지에 사는 등 여러 이유로 병원에 올 수 없는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기계 판매가 아니라 더 많은 방문 의료체계와 응급시설을 갖춘 공공의료다.”라고 강조했다.

또, “코로나 19 상황에서 지금 당장 정부가 할 일은 불필요한 원격의료 도입을 할 것이 아니라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숙련된 간호사 인력을 확보하고 각종 의료보호장비 및 필수 의료장비를 비축하는 것이다.”라며, “지금이라도 원격의료에 대한 입장을 바꾸고 병원 현장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의료연대본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진행하고자 했던 원격의료를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를 핑계로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원격의료 도입은 국민의 건강권을 의료재벌과 IT기업에게 팔아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정부가 주장을 철회하고 충분한 보건의료 인력과 필수의료장비를 확보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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