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는 손 씻기 등 공중보건위생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분야 재정 지출의 정책적 우선순위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재정포럼’에서 서영준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건의료 재정 지출의 효율성: 코로나19 사태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을 통해 공공병원이 의료제공체계의 중심이 되고 보건의료 분야 재정 지출의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하며, 과잉진료 억제 및 의료서비스 남용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서영준 교수는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하는 사태를 보면서 정부의 방역 실태, 특정 교회집단의 행태, 중국에 대한 태도 등 각자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문제는 확진자들을 격리해 치료할 공공병원의 의사와 병원이 부족해 민간의료기관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근근이 꾸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는 평소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중요성을 방증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5.8%, 병상은 10%에 불과해 OECD 회원국 중 민간의료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또한 취약지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할 의료 인력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주고 의사를 고용해 운영하고 있는 곳이 많다.”라고 전했다.

그는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공공병원이 국가의료제공체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민간의료기관은 보완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시설이 열악한 국립중앙의료원이나 특수목적 병원인 보훈병원, 국립암센터, 국립재활병원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서 민간의료기관들이 의료제공체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공공의료기관은 지방의료원을 중심으로 주로 취약계층을 위한 보완적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라며, “공공병원이 의료제공체계의 중심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민간의료기관이 의료제공체계의 중심이 되면 공익적 기능보다는 수익 중심의 진료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진료비나 진료의 양을 불필요하게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이번과 같은 전염병 확산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보건의료 분야는 공익적 성격이 강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에 대한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가 높지 않아 전국의 공공병원들이 어려운 여건에서 취약지역의 의료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번과 같은 국가적 의료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공공병원에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도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역대 정부의 공공병원에 대한 정책을 보면 운영 적자를 보는 공공병원을 비효율적으로 보고 예산 지원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물론 공공병원 운영의 구조적 비효율성은 개선돼야 하지만, 이를 빌미로 공공병원 확충과 육성에 소홀하고 민영의료기관에 의료제공체계의 중심 역할을 맡김으로써 공공병원에서는 재정이 부족해 공익적 의료사업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의료서비스 제공 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현재도 상당수 공공병원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라고 전했다.

서 교수는 또, 보건의료 분야 재정 지출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분야 예산 실태를 보면 공익적 관점에서 비용 대비 건강 유지나 증진 효과가 높은 질병 예방과 보건교육, 환경위생 등의 공익적 예방 서비스 분야에는 4조 7,000억원의 예산이 지출되고 있는 반면, 사후적 치료 및 재활 서비스에는 약 48조원이 지출돼 재정 지출의 효과성이 낮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국민이 내는 보험료와 정부 예산지원으로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의 지출 내역을 보면, 사후 치료 중심의 병원급 이상이 51.2%를 차지하고 예방 및 조기 치료 중심의 1차 의원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27.7%에 불과해 과잉진료로 인한 낭비와 더불어 동네 의원 중심의 지역의료제공체계를 구축하여 의료이용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이 쉽게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이러한 의료비 지출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 수준을 보면 2009년에 6.1% 수준이던 우리나라는 2018년 현재 8.1% 수준으로 OECD 평균 8.8%에는 약간 못 미치나, 이마저도 2020년 이후에는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고령화와 더불어 급속한 의료비 지출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의료비 증가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건강관리 지표들을 보면 드러나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평균수명의 경우 2018년 기준 OECD 평균 81세보다 높은 83세(남 80세, 여 86세)이나 건강수명은 64.4세에 불과해 많은 국민들이 평균 19년 가까이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의료기관과 약에 의존해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서 교수는 “의료비 지출은 결국 공급자의 진료행태와 이용자의 의료이용행태가 결합하여 결정되는데, 진료행위의 양에 비례해 진료비가 증가하는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는 민간의료기관들로 하여금 과잉진료의 유인을 제공하게 되며, 수익성이 낮은 진료를 기피하고 보험에서 부담해주지 않는 비급여 서비스를 증가시키며 민영보험을 권장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은 보험료 부담은 싫어하면서도 의료이용에 따른 선택권과 보장성은 늘려주기를 바라는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이며, 1인당 평균 입원일수 19.1일, 외래일수 16.9일이라는 OECD 평균의 두 배에 가까운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이용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보건의료비 지출의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과잉진료에 대한 강력한 억제조치와 더불어 도덕적 해이에 빠져 의료서비스를 남용하고 있는 이용자들에 대해서도 자기 책임을 강화하는 등 무분별한 이용행태를 옥죄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예방 및 건강증진, 1차 의료 및 공공병원 확대를 위한 예산을 대폭 늘리고 민간의료기관 중심의 진료에 소요되는 예산은 합리적으로 조정해 의료공급자와 수혜자의 행태를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서 교수는 “이러한 정책에는 민간의료공급자와 수혜자의 반발과 저항이 따르게 마련인데, 특히 이익집단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나가려면 엄청난 추진력과 협상력이 필요하다.”라며, “모든 선진 복지국가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민적 대타협에 의해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이런 큰 방향에서의 국가적 보건의료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수적인 서비스, 즉 기본적인 의식주와 교육, 의료, 노후복지는 보수냐 진보냐에 관계없이 국가가 책임지고 그에 대한 재정을 확보해 효율적으로 운용해 나가야 하는 분야이다.”라며, “코로나 19 사태가 수습된 후 많은 국민이 손 씻기 등 공중보건위생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분야 재정 지출의 정책적 우선순위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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