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메르스 등의 감염병 유행 시 고조됐던 공공보건의료 지원 의지가 ‘지속성’ 있는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던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기관(시설), 인력, 병상 등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자원 확충 계획을 준비하고, 투자의 지속성 확보를 위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이슈 앤 포커스-코로나19 특집호 5편’에서 윤강재 보건정책연구실 보건의료연구센터장은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살펴본 감염병과 공공보건의료’를 통해 “코로나19 유행과 대응을 통해 감염병 대응의 일차 방어선으로서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투자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윤강재 센터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관심과 확충 주장이 높아졌다.”라며, “발생 시기와 규모, 파급력을 예측하기 어려운 감염병은 수요ㆍ공급에 기반한 전통적 시장ㆍ가격체계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공공보건의료’의 역할이 강조돼 왔다.”라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공공보건의료를 확충해 감염병에 대응하는 것은 타당한 방향이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지난 2015년 메르스 유행 과정에서 고조됐던 공공보건의료 확충 주장이 진정 이후 지속성 있는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던 경험을 반추하는 한편, 공공보건의료 확충에 대해서는 단순히 국가나 지방정부가 급성기 의료를 제공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대응 경험을 통해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병상 수(2017년)*자료: OECD Statistics(2020년 3월 5일)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병상 수(2017년)*자료: OECD Statistics(2020년 3월 5일)

윤 센터장은 우리나라 병상자원의 모순점을 우려했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 당 병상 수는 12.3개로, 일본(13.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지만, 공공의료기관의 관점에서 병상 보유 수준을 보면, 전체 병상자원 가운에 공공의료기관이 보유한 병상은 상대적으로 열악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 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1.3개(OECD 평균 3.0개), 전체 병상 중 공공의료기관이 보유한 병상 비율은 10.2%(OECD 평균 70.8%)로, 두 지표 모두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한다.

인구 1,000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2017년)*자료: OECD Statistics(2020년 3월 5일)
인구 1,000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2017년)*자료: OECD Statistics(2020년 3월 5일)

윤 센터장은 “코로나19 유행 전 우리나라는 과잉 공급을 우려할 정도로 병상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국민은 자유로운 의료서비스 이용에 익숙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목격한 ‘병실 부족으로 인한 입원 대기열’과 ‘병실 없어’ 자가격리 중 사망 사례는 그동안의 익숙함과는 모순되는 경험이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기간ㆍ규모ㆍ파급력 예측이 불확실한 감염병의 특징은 일시적인 의료서비스 공급 부족 현상의 한 원인이지만, 이 모순의 저변에는 민간 중심의 총량 확충에 맞추어져 왔던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들이 잠재해 있다.”라고 분석했다.

공공의료기관 병상수 비율(2017년)*자료: OECD Statistics(2020년 3월 5일)
공공의료기관 병상수 비율(2017년)*자료: OECD Statistics(2020년 3월 5일)

먼저, 감염병에 일차적으로 대응해야 할 공공의료기관이 보유한 자원의 절대량 자체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 단기간에 대량 환자가 발생해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수용 한계를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공보건의료체계를 작동시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함으로써 취약 지점을 보강하는 연계(중앙-지방정부 간, 정부-민간 영역 간)가 신속하게 작동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는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국가방역체계 개편 방안’을 수립해 신종 감염병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 시설(감염병 전문병원)과 병상(음압격리병상) 등 공공의료자원 확충을 주요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윤 센터장은 “일부 개선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노정된 감염병 전문치료체계 및 전문병상(음압병상)의 부족 현상은 ‘공공의료자원 확충’이라는 방향성이 계획대로 실제화됐는지, 그렇지 못했다면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17년 2월 국립중앙의료원이 중앙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2017년 8월 조선대병원이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다른 권역에서의 지정은 계속 지체됐고,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중앙-권역 감염병 전문병원을 중심축으로 한 전문치료체계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다만,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마련된 추경안에 영남권과 중부권 등 2개 권역에 감염병 전문병원을 확충하는 예산이 포함됐다.

또한 메르스 사태 이후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은 음압격리병실을 1개 이상 설치하되, 300병상을 기준으로 100병상 초과할 때마다 1개의 음압격리병실을 추가로 설치하도록 의무화해 음압병상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의 음압병상 수는 총 1,027개다. 이 가운데 국가 지정 음압병상은 29개 기관 198개 병상으로, 2015년 메르스 사태 직후 19개 기관 119개 병상에 비해 양적 증가를 이뤘다.

그러나 지역 거점 공공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2019년 평가에 따르면, 음압격리병실을 운영하는 비율은 65%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전국 24개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음압격리병실 가동률 역시 평균 49.0% 수준으로 보도됐다.

윤 센터장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감염병 유행 당시와 진정 이후 대처를 살펴보면, 유행 단계에서는 감염병 대응을 위한 공공의료자원 확충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용이하게 합의되지만, 유행이 진정된 이후의 ‘지속적 투자’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그 원인으로는 감염병의 특성상 대응을 위한 예산 투입 대비 효율성 달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자원 확충ㆍ운영이 곧 적자를 발생시키는 요인이라는 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이 낮은 우리나라 상황상 민간 영역에서의 협조와 투자가 일정 수준 필요한데,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당위성만으로 손실 감수를 요구하는 것에 따른 한계도 있다.”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응급의료기관 지정 과정에서 논의된 음압병상 설치 의무화 방향에 대해서는 음압병상은 평상시에는 활용도가 낮고 비용 부담이 발생하므로 일선 병원 입장에서는 ‘유지 자체가 손해’임을 호소한 바 있다.

윤 센터장은 “코로나19가 진정 단계로 접어든 이후에도 현재 조성된 ‘공공보건의료 투자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려면 공공 영역에서는 사전 대비가 더 큰 사회적 비용 부담을 예방한다는 근거를 마련하고, 민간 영역에서는 공공보건의료 참여에 대해 사회가 보상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감염병 대응은 대표적인 시장 실패 가능 영역으로서 가격과 시장체계 작동이 어렵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공공보건의료기관이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며, ‘비용’과 ‘효율’의 관점이 아니라 ‘사전 예방’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역ㆍ지역 책임의료기관제도(안)*자료: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보건복지부, 2018)
권역ㆍ지역 책임의료기관제도(안)*자료: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보건복지부, 2018)

또, 당위성과 함께 감염병의 사회경제적 손실 규모와 사전 예방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 절감의 근거를 과학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예산 당국과 국민을 설득하는 근거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역설했다.

보험업계는 감염병 리스크의 경우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사고 발생 시 손실 규모가 큰 꼬리리스크(tail risk)로 파악하며,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가 기후변화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해외에서의 추정 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윤 센터장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공공의료기관에는 자원 확충 의무화와 ‘착한 적자’를 통한 보전을, 민간의료기관에는 참여 유도를 위한 일정 수준의 손실 보전 등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할 필요도 있다.”라고 제언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병상 부족으로 인한 입원 환자 자가격리’는 과거 의료자원의 절대량이 부족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선례를 찾기 어려운 경험이었다.”라며, “감염병과 같이 단기간에 대거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해 우리 사회가 보유한 자원을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한 체계를 반성적으로 점검하고 개선점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감염병 유행으로 수용 한계를 초과하는 다수의 환자가 발생함에 따라 ‘자유로운 의료기관 선택’ 원칙 대신 중앙대책본부 차원에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환자 이송ㆍ전원체계를 가동하는 이니셔티브 발휘가 불가피했다.”면서, “다수의 긴급환자 발생 시 일차적으로 대응해야 할 ‘책임의료기관’을 사전에 지정하고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우선적으로 활용하되,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수용력을 초과하는 환자 발생 시에는 민간병원을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특정 지역에서 대거 환자가 발생해 권역 내에서 해결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 인근 권역을 ‘전원ㆍ이송체계’로 묶는 방안도 제시했다.

윤 센터장은 아울러 “코로나19 진료 제공 과정에서 환자를 중증도에 따라 분류해 경증 환자는 ‘생활치료센터’를 활용해 생활과 치료를 제공한 점도 그동안 우리 보건의료체계에서 선례를 찾기 힘든 ‘낯선’ 현상이다.”라며, “의료자원 투입의 우선순위 고려가 불가피한 감염병 등 대량 환자 발생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자가 관리가 가능한 경증 환자에게 생활치료시설 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한 함의는 적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중증도 분류에 활용할 타당도 높은 측정법의 개발, 합리적인 생활치료시설 지정 기준 마련, 생활치료시설 입소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인력과 장비 확보 등의 과제는 선결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외에도 그는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방안 역시 다각적으로 모색됐다.”라며, “확진자의 이동통신 및 신용카드 정보 등 빅데이터를 활용한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은 동선 파악 정보의 정확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역학조사관의 업무 부담 경감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며,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없는 범위에서 감염병 확산 방지에도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논란이 있었지만 전화 상담ㆍ처방 등을 비롯한 원격의료와 관련된 주제 역시 이후 정부와 의료계를 중심으로 논의의 깊이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어 그는 “이번 코로나19는 집단 밀집형의 치료ㆍ생활ㆍ수용시설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고, 기저 질환이 있는 고령 환자의 치명률이 높게 나타났다.”면서, “인구고령화를 비롯해 장기요양이 필요한 만성질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집단 밀집형 서비스 제공보다 지역사회 자원이 연계 작동하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감염병 발생 시 지역사회의 고위험군(기저 질환이 있는 고연령층) 또는 고위험집단(독거 고령자, 집단시설 거주자 등)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들에게 선제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면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서 독거 고령자를 위한 방문간호서비스 실행 방안 등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윤 센터장은 “코로나19 유행과 대응을 통해 감염병 대응의 일차 방어선으로서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투자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과거 메르스 등의 감염병 유행 시 고조됐던 공공보건의료 지원 의지가 ‘지속성’ 있는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던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기관(시설), 인력, 병상 등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자원 확충 계획을 준비하고, 투자의 지속성 확보를 위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점 한 가지는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공공보건의료’는 정부나 공공기관만이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위해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통해 공공보건의료의 확충이 단지 의료기관의 확충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보건의료체계가 보여 준 취약 지점을 보완하는 접근으로 발전한다면, 향후 발생 가능한 감염병에 대한 효과적 대응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한 삶 구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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