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감염병 대응을 위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통고 의무 이행을 강제화하고,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백신 기술과 샘플 정보를 제공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세계보건기구 내에 감염병 위협에 직접 노출된 국가에 재정적ㆍ기술적 원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의 강력함을 유지하면서 중간 단계의 경보체계를 마련하는 등, 국제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9일 발행한 ‘이슈와 논점’에서 정민정 정치행정조사실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대응 관련 국제법의 한계와 개선과제’를 통해 국제법상 신종 감염병 통제의 한계가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정민정 입법조사관은 “일반적으로 감염병은 국경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발병국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제기구와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적 관리와 협조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관련 국제기구와 국제법에는 세계보건기구(WHO)와 ‘2005년 국제보건규칙’이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감염병 대응체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가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정 입법조사관은 먼저, 당사국의 질병 사태 통고 의무 강제제도가 없는 점을 지적했다.

당사국의 신속한 통고는 신종 감염병의 초기 대응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발생지국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해당하는 신종 감염병의 존재를 확인하고도 이를 세계보건기구에 통고하지 않는다면 이는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

문제는 세계보건기구에 ‘2005년 국제보건규칙’ 제6조를 위반한 국가를 제재할 수 있는 이행강제 메커니즘이 구비돼 있지 않고, ‘2005년 국제보건규칙’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당사국간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강제적인 사법적 분쟁해결절차가 없어 이행을 강제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정 입법조사관은 또, 당사국의 샘플 정보 공유 인센티브가 없는 점도 문제삼았다. 실제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중국의 한 연구소가 세계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재생산하는 데 성공했지만, 바이러스 샘플은 공유하지 않고 유전자 서열 정보만 공개했다.

‘2005년 국제보건규칙’ 제6조제2항과 제7조에 따르면, 당사국이 제공해야 할 정보는 감염국이 자국 내 감염병 발생여부와 현황, 자국의 대응조치 등에 관한 정보로 제한돼 있다.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진단 백신 치료에 관한 기술 또는 감염병 바이러스 샘플에 대한 정보는 제공해야 할 정보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아울러 정 입법조사관은 당사국의 국가 자원과 국제법 준수 역량 문제도 지적했다. ‘2005년 국제보건규칙’은 입국 지점에서의 여행자에 대한 인도적 대우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여행자의 입국금지 또는 격리 조치를 취할 때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세계보건기구가 2020년 1월 30일 발표한 임시 권고에 따르면, 여행 또는 무역 제한조치를 권장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마다 방역능력에 차이가 있어 국가마다 구체적인 이행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공중보건 역량이 충분하지 하지 못한 국가의 경우 특정 국가의 국민에 대한 전면적 입국 금지와 같은 과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외에도 감염병의 중간 단계 경보가 없는 것도 문제다.

‘2005년 국제보건규칙’에서는 질병 관련 사안의 규모나 심각성에 따라 단계를 ▲질병(disease) ▲사태(event) ▲공중 보건 위험(public health risk)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등, 4단계로 구분해 공중보건 문제를 유연하게 단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했다.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는 가장 심각한 마지막 단계로, 질병의 국제적 확산으로 인해 타 국가들에게 공중보건 위험을 구성하고, 잠재적으로 협력적인 국제대응을 필요로 하는 비정상적인 사태를 의미한다.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는 ‘2005년 국제보건규칙’ 상 유일한 감염병 경보 단계이자 최고 수준의 경보이다. 이 때문에 초동조치로 감염병의 확산을 차단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 입법조사관은 이 같은 신종 감염병에 대한 국제법 규제의 한계점에 기초해 국제법적 개선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세계보건기구 당사국의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통고 의무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신설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가 보유한 백신 기술과 샘플 정보는 국가의 경제적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감염병 대응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샘플 정보 공유를 법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라며,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백신 기술과 샘플 정보를 제공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정 입법조사관은 또, “세계보건기구 내에 감염병 위협에 직접 노출된 국가에 재정적ㆍ기술적 원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결과는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1차 감염자를 파악해 격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의료시스템이 취약한 개도국에서는 자원 부족으로 국제법을 준수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며, “이때는 개도국에 대한 기술적ㆍ재정적 지원으로 신종 감염병 통제에 필요한 보건 인프라를 갖추게 해 국제법 의무 이행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의 강력함을 유지하면서 중간 단계의 경보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일상적인 공중 보건 위험 단계(3단계)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4단계) 사이에 신종감염병에 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기 경보 메커니즘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15년 세계보건기구 총회가 설치한 ‘에볼라 발생 및 대응 관련 2005년 국제보건규칙의 역할에 관한 평가위원회’의 권고 사항이기도 하다.

한편, 정 입법조사관은 우리 국회는 국내 보건체계 발전을 위한 법률 정비 노력과 함께 신종 감염병 통제에 관한 국제법 기준을 개선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우리 정부와 외국정부, WHO와 국제사회에 ‘2005년 국제보건규칙’의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는 한편, 결의안 형태로 국제법상 신종 감염병 통제의 개선방안에 관한 의사를 결집해 표명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정 입법조사관은 “최근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전 지구적 공중보건체계가 모두 가동되고 있음에도 어느 방향으로 국제보건상태가 전개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라며, “현재로서는 각 국 정부의 국내 보건체제 강화노력이 세계보건기구의 감시체제와 최대한 맞물려 작동하게 해 그 시너지 효과를 증진시키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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