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가 일명 ‘수술실 CCTV법’에 찬성 의견을 밝혀 주목된다.

인권위는 지난 17일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부정의료행위 방지 등 공익의 보호를 위해, 환자 또는 보호자가 요구해 동의하는 경우에 한해 수술 장면을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최근 병원의 수술 과정에서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의 사망이나 장애 발생, 의사 아닌 비자격자에 의한 대리수술, 마취환자에 대한 성추행 등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술 장면을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과 같은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함으로써 의료사고나 부정의료행위를 방지하거나 사후적으로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5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수술을 하는 경우 등에 한해 환자 동의를 받아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인권위는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이 환자의 안전 등 인권과 공익 보호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해 검토를 진행했다.

개정안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수술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의료행위는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해당 의료행위를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하도록 하고, 그 외의 의료행위는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촬영하도록 규정한다.

인권위는 “수술실 내에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해 촬영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 확보 등 공익적 측면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의료진의 개인영상정보를 수집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제한될 여지도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수술실의 폐쇄적 특징 및 환자 마취로 인해 주변 상황을 인지할 수 없는 점, 의료행위 제반과정에 대한 정보 입수에 있어 환자 및 보호자가 취약한 지위에 놓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수술실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와 촬영을 법률로 정하는 것은 공익 보호의 측면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수술과 그렇지 않은 수술을 구분하고 있는데, 그간의 부정의료행위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높은 중요한 수술보다는 오히려 성형수술 등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인권위는 전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영상정보처리기기를 통해 촬영하는 수술을 구분하지 말고, 원칙적으로 모든 수술에 대해 촬영하되 환자 또는 보호자가 요구해 명시적 동의를 받은 경우에 한해 촬영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의료법 개정안’은 수술을 촬영할 수 있는 영상정보처리기기에 CCTV 및 네트워크카메라를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 CCTV는 외부와 차단된 폐쇄회로를 통해 촬영 영상을 전송ㆍ저장하므로 상대적으로 보안성이 높으나, 네트워크카메라는 개방된 인터넷망을 통하므로 보안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고 실제로 네트워크카메라에서 개인영상정보 유출 사례가 다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영유아보육법’도 어린이집에 설치하는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원칙적으로 CCTV로 한정한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수술 장면을 촬영하는 영상정보처리기기는 CCTV로만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인권위는 ‘의료법 개정안’에 수술실 영상정보처리기기에 대한 촬영 범위 한정 및 임의조작 금지에 관한 사항, 영상정보의 보관 기간과 그 기간 경과 시 영상정보 파기에 관한 사항 등도 추가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처벌 규정과 관련해서는 ‘의료법 개정안’ 제90조는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한 자료를 의료분쟁 조정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목적 외에 사용한 경우에 대해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정보 보호의 일반법인 ‘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제1항은 개인정보를 당초 수집 목적 범위를 초과해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같은 법 제71조 제2호는 이를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인권위는 “비록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취급하는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을 엄격히 규제하기 위해 형사벌의 상한선을 높게 규정한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의료법 개정안’과 비교해 보면 일반적인 개인정보를 목적 외로 이용했을 경우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는 반면, 수술실 영상정보를 목적 외로 이용한 경우에는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최고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돼 처벌 수준에서 불균형이 나타난다.”라며, “따라서 ‘의료법 개정안’의 처벌 규정은 ‘개인정보보호법’과 비교해 균형에 맞는 처벌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이번 의견표명을 계기로 ‘의료법 개정안’이 부정의료행위 방지 등 사회적 공익을 보호하는 한편 의료진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적 인권 침해도 방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국외의 수술실 영상정보처리기기 관련 기준과 사례를 보면,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병원의 수술실 내에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를 법률로써 규정한 사례는 파악되지 않으나, 다만 미국 메사추세츠 주 등 일부 주에서 수술 과정을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영상정보처리기기 대신 이른바 수술실 블랙박스를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

미국의 보건의료 프라이버시 관련 법률인 ‘의료정보보호법(HIPAA, 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은 수술실 내의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에 대해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

다만, ‘개인건강정보(PHI, protected health information)’는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나 상태 등과 관련한 모든 형태의 문서화, 구술, 시각화돼 있는 정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개인건강정보는 원칙적으로 이차적 이용을 허용하지 않으나, 정보주체의 사전 서면동의 혹은 승인, 법률에 의해 요구된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영국도 수술실 내의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를 직접 규정한 법률을 두고 있지는 않으나, ‘감시 카메라에 대한 실무규범(Surveillance Camera Code of Practice)’에서 감시 카메라는 법률이 허락하는 목적과 필요에 따라 구체적 목적과 정당성을 가지고 사용돼야 할 것 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원칙은 병원에서 감시 카메라를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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