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국내에서의 호평을 훨씬 뛰어 넘어 전 세계 영화인들 주목을 받으며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전에 모처럼 국민 모두에게 큰 즐거움이 선사됐다.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한 것은 결국 우리나라 나름의 독창적인 영화 예술의 우수성을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것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온 국제적 낭보는 안타깝게도 불청객인 코로나 19와 일명 ‘짜파구리’ 기획 이벤트로 많은 국민들 가슴속에 오랫동안 지워지기 힘든 씁쓸함만 가슴 깊이 묻어 버리게 됐다.

대통령의 진중하지 못한 조기 낙관론과 좀처럼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목젖이 보일 것처럼 완전히 뒤로 목을 젖힌 채 파안대소하는 축하연의 모습은 이게 과연 현실인지 비현실적인 꿈속의 상황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려운 관문을 거쳐 국위선양의 힘든 여정의 여독이 가라앉기도 전에 불러들인 영화 제작팀 등 관계자들까지 청와대에 불려가 안 받아도 될 비난을 함께 받았다는 측은한 동정론까지 일었었다.

▽기생충 같은 숙주 조건 바이러스가 우리 정치 사회 문화 통째로 반추
영화 기생충이 미국에서 우리의 상상 이외의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가 보여주는 극심한 빈부차이의 문제인데, 미국은 실제로 우리나라의 빈부 차이 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나라의 바탕이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며, 자신의 노력만큼 보상을 받는 나라로 각인돼 있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나라 저소득층 가족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아예 불가능한 듯이 보이는 사회적 계층 이동의 암울한 현실, 그리고 사업에 실패하여 부도를 내자 부잣집 주인 몰래 지하 비밀공간에 숨어 지내야 하는 부잣집 가정부 부부의 착한 두 가족에 대한 생존의 이야기를 ‘악한 부자’와 대비시켜 흥미진진하고 리얼하게 전개시킨다.

반 자의적으로 비밀 지하실에서 감금생활을 해야 하는 남편의 기구한 삶을 설정한 기발한 영화 구성에서 ‘진정한 기생충’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역설적 질문을 던져준다. 

바이러스는 일종의 기생충과 같은 속성을 지닌 존재로 반드시 숙주가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남의 생명에 더부살이로 얹혀살아야 하기에 독자적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바이러스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면, 매우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다. 이러한 태생적 열세를 만회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바이러스는 능동적인 감염 능력과 지속적인 비밀번호 변경으로 생존 본능을 극대화하는 듯하다.

거침없이 시공을 초월하는 바이러스는 지역사회 감염을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 낸다. 거대 시각에서 이런 현상은 전염병 감염이 보여주는 ‘사회적 감염증상’인 것이다.

특히, 아직도 원인 바이러스의 특성에 대해 잘 모르고 치료법도 뚜렷하지 않은 기만적인 질환에 대하여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적 현상을 겪게 해준다.

‘조기 낙관론’으로 무언가 큰 희망의 풍선효과를 노리려는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체면을 일순간에 보란 듯이 손상시킨 괴질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수많은 ‘사회적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사회적 감염증상의 우월적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쟁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 미디어 과다 노출증 검객들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급증했던 확진자의 증가는 엄청난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가져왔고 수많은 언론매체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괴질에 대한 다양한 전문가를 양산하여 배출하고 있다.

학문의 세분화로 바이러스를 전공한 미생물학자, 감염학자, 역학자, 예방의학자, 임상의사, 공무원, 정치인, 평론가 등 매일 하루 종일 돌아가는 수많은 매체에서 마치 일기 예보하듯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전투에서 승전보를 예측하는 ‘설(舌)검객’이 된 듯하다.

전문가의 양산은 일견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각기 다르거나 정확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할 때 부실한 메시지 관리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면과 그 부작용과 후유증이 만만찮아 보인다.

자신의 출연횟수를 자랑삼아 여기저기 떠벌리는 속칭 철부지 ‘관종 전문가’도 속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순수 방송인만 나와서 바이러스를 논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버거운 주제로 각종 미디어 매체가 전문가를 동원하여 되도록 정확한 사실을 알리겠다는 긍정적이고 좋은 의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얼마 전 NYT보도에서 경기도 지사와 서울시장의 코로나바이러스 19 관련 행보를 ‘정치적 쇼’라는 기고가 실렸다.

국가적 위기에서 자신들이 무엇인가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부각시키기 위한 애처로운 노력이 결국 희극 화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정치인을 비롯하여 연예인, 체육인, 전직 장관과 교수, 의사, 예술인, 철학자, 요리사, 변호사 등 사회적 전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전문식자층이 이미 모든 사회적 사안에 대해 일반 사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속칭 ‘개그 화’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중이다.

보다 노골적이고 진솔하게 이야기 하자면, ‘위기는 기회로’라는 단순 명확한 캐치프레이즈 아래 다시 잡을 수 없는 좋은 기회에 정치적으로 한 몫 단단히 챙겨보겠다는 것인데 이런 부류가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죽느냐 사느냐 시국에 선거 겨냥 현실인식 장애 불나방 같은 위정자들
4월 총선이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이번 사태를 최대한 자신들의 업적으로 부각시키려는 눈물 나는 노력이 한눈에 다가온다.

신천지교회 대문까지 찾아간 어떤 도지사나 신천지를 살인죄로 고소한 서울 시장의 눈물겨운 노력들이 오히려 역겹다. 동서고금 불문하고 생사를 넘나들게 하는 역병에 왜 이리 ‘역겨운 일’들이 많아야 하는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괴롭다.

만일에 신천지교회장이 살인죄 고소대상이라면 이 나라 최고위 지도자들은 ‘살인 방조죄’로 입건되어야 할 판국이 아닌가.

지난 메르스 사태 때에도 정부 대책과는 별도로 서울시 독자적인 쇼를 한 밤중에 급조하여 전광석화처럼 화려하게 펼쳤던 경력을 복기해보면 시장이 늘 주장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우매한 백성을 매우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사회적 감염증상으로 가장 치명적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현상은 ‘자기팽창증(self-inflation)’이다. 1980년대 중국식 전통에 대한 논란이 다시 주목을 받을 때 ‘중국적 전통’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던 중국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중국인의 특징은 속이 좁고(narrow mindedness), 이타주의가 결여되었다고 스스로 비판하였다.

이런 전통은 중국인을 매우 순종적 노비 근성과 포악한 근성을 갖는 군주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게 한다고도 주장하였다.

중국인에게는 평등한 사람의 개념 보다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이 두 부류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보다 권력이 높은 사람에게는 한없는 열등감을 갖고 대하나 막상 자기가 권력을 갖게 되면 누구보다 혹독한 군주로 변한다는 설명이다.

심각한 열등감과 어처구니없는 자만심의 양가감정의 사회적 표현은 선거철만 되면 시장에 나가 허리가 꺾이도록 큰절을 하고, 눈도장 찍고 손 한 번 더 잡아 보려는 악수행렬에 나서는 우리네 정치문화와 무척 닮아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자문해본다.

당선만 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배지 신예 무기를 장착한 안하무인의 인간으로 변하는 것은 사회적 간격 없이 이어지는 후렴구와도 같은 현상이다.

▽처방 불가 자기팽창증후군에 확장된 허황된 망상 바이러스 최고 숙주
자기 비판적 중국인 유학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적 전통이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증상이 소위 ‘자기팽창증’으로써, 보잘것없고 조그마한 성공도 매우 크게 부풀려져 거대한 성공으로 둔갑시키는 팽창현상을 보인다고 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 정복을 놓고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시진핑의 영웅화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을 보고한 의사를 핍박한 중국 공산당체제가 보여주는 중국적이고도 매우 중국적인 현상이다.

중국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고 중국의 즐거움이 우리의 즐거움이니 아마도 우리나라도 후기낙관론이나 지연낙관론의 공로를 인정하여 마치 무협지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중국식 지도자 영웅 만들기가 출현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진핑 방한을 학수고대하고 있으니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며, 제법 나올 만한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중국의 아픔을 같이 나누겠다는 절대 우방 정권인 지금 이 시대 우리의 팽창증도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방역체계와 의료수준이 세계최고 임을 자랑하고 이미 개그맨이 되어버린 개혁정치인은 우리나라 행정력의 우수성이 전염병 극복의 바탕이라고 혀가 마르도록 자화자찬에 매진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해도 반드시 칭찬 받을 일이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개혁의 주도자들이 꿈꾸는 무릉도원의 별천지 세상인가 보다. 자기팽창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보면 중국 전통에 대한 비판에서 “중국인은 스스로의 잘못을 여간해서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자기 잘못에 대한 인정이 쉽지 않다. 자신의 잘못을 대속(代贖)하여 줄 희생양을 찾는데 아주 능하다. 보건복지부장관은 마스크와 방호복 부족의 원인을 기업이나 의료인이라는 놀랍고도 기막힌 주장을 서슴없이 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도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인정 보다는 오히려 잘못의 결과는 악한 기생충이나 악한 집단 탓으로 돌리고 이런 부족 사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했다는 성공신화로 팽창시키는 더욱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는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필생 시대 낯 두꺼운 정치 활개 역병 통제 불능
일부 정치인은 세계가 찬사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빠른 진단체계와 최대의 검사 역량에 대한 국가적 치적을 내세우며 여전히 더더욱 빠른 진단과정과 검사를 원하는지 ‘공공의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세계최고라는 의료에 의료인에 대한 처우는 세계최고인지 아니면 의병, 학도병 동원 같은 공보의, 군의관 차출인가 냉철한 분석은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정치인 자신의 지역구에 꼭 필요하다는 토를 달고 있다.

신설의대를 만들 여유와 공공예산이 있다면 기존 의과대학을 활용하여 적절한 투자나 위기상황에서 감압병상을 갖춘 유용한 병상 확보가 우선일 것이다.

예상컨대, 아무래도 신종전염병이 진정되고 나면 다음에 찾아올 것은 그동안 전쟁터에서 사투하듯 목숨걸고 고생한 의료인보다는 훌륭한 지도자와 정치인, 그리고 공무원에 대한 성공신화로 미디어를 화려하게 장식해댈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사회안전망의 확대로 각종 구조대가 육해공에 갖춰져 있다. 해수욕이나 등산 중 사고로 다친 사람을 구조하면 포상도 받고 진급도 가능하다.

자신의 고유 본연의 직무가 구조인데 구조를 하면 포상을 받는다니 참 훌륭한  제도이고 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매일 구조가 진행되는 의료 현장이나 병원 응급실에는 포상이 아닌 욕설과 폭력 그리고 민, 형사상의 고소와 협박이 훈장처럼 따라붙는다.

중국과 서로 붙어 있으면서도 조용히 신종 전염병을 겪고 있는 타이완, 홍콩, 마카오, 베트남을 보며 진정 포상을 받아야 하는 집단은 다른 나라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더 늦기 전 전문가들과 소통의 창과 높이 맞춰 세계가 함께 대응해야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면 되는 것을 굳이 자기가 부풀려 특별한 것으로 전환시키는 자기팽창증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중국인의 입국을 통제하지 않았음에도 세계 최고의 진단수준에 입각하여 세계 최고의 방역을 갖춘 나라임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은 모범사례라고 자부하는 공무원과 정치인을 보며 이제 감염병이 종식되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국제적 종식에 대한민국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말할 태세로 보인다.

이번 바이러스의 특징이 폐렴이외에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에 의한 자아팽창증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다고 세계보건기구에 잘 알릴 필요가 있다.

즉 세계최고 방역역량이 가져오는 합병증과 후유증은 바로 세계 최고 자아팽창증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에 알린다고 하여도 세계보건기구 역시 이미 이 병에 확실한 면역력이 형성된듯하여 어떤 처방과 치료가 유효할지 그게 제일 큰 걱정이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