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반 “과학의 발전이 삶에 유익한가?”라는 설문조사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예상과는 달리 상당수 유럽인은 “유익하지 않다”라는 시큰둥한 답변을 내놨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같은 내용으로 설문조사를 했다면, 대부분 “유익하다”라고 답했을 것 같다.

유럽인은 20세기에 과학기술로 무장된 새로운 형태의 국제 전쟁을 두 차례 겪었다. 과학의 발전이 삶의 유용성(efficiency)을 증강시킨 반면에, 이로 인한 삶의 질은 오히려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뼈저린 역사적 경험에서 형성된 것 같다.

▽NATO(No Action, Talk Only) 정부, 쇼 그만둬야 위기 상황 벗어날 방향 찾아
노무현 정부 시절 황우석 박사의 현란한 ‘과학적 쇼’에 집권당과 정부는 열광하였고 엄청난 규모의 연구비를 쏟아 부었다.

과학적 성과와 애국심, 그리고 국가적 자존심을 묘하게 엮어 대부분의 국민들은 황당한 사기극에 넘어갔으며, 황우석 박사에 대한 과학적 근거의 이성적 비판세력을 마치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찬 ‘반사회적 집단’으로 내몰아 핍박하였다.

100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대한민국이 배출한 세계 최고의 수의과학자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연구윤리 교재에 실증적 사례로 생생히 등장하여 국가적 위상과 국격(國格) 상승(?)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는 전문가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의 표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우리나라 생명윤리 분야는 최소 10년 이상 진보하도록 순기능을 안겨줬다.

정치인이나 고위 행정 관료가 과학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지나친 기대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과학적 진보로 인한 인류의 피해를 막고자 나라 별로 국가차원의 생명윤리기관도 설립하고, 대통령 자문 등 최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조직의 정책결정에 한 치의 실수가 허용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쓴다.

노무현 정부 시절 황우석 박사에 대한 맹신과 전폭적 지지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비윤리적 과학자가 가장 핵심 원인이라는 데는 반박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정무적 판단’에 ‘과학적 검증’이 한참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고, 황우석 박사에 대한 건전한 비판론을 견지한 소신그룹에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백안시한 것에 더욱 큰 문제가 있었던 마치 우화와 같은 사건이었다.

▽의협 공식 입장 회장 개인의견 아닌, 전문가 의견 집대성한 과학적 처방
과학적 지식이 정치적 그리고 정책적 의사결정과 연관되어 나타날 때 정부나 정치인은 심사숙고를 바탕으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데 이런 검토에는 찬, 반 의견에 대한 세밀한 수집과 찬성, 반대의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견이 존재할 때 어떻게 이를 풀어 나갈 것인가를 결정한 후 검증되고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비로소 정책으로 신중히 채택하여야 한다.

이런 결정의 종착역은 현 상황에서 이야기 한다면 결국 공중보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의 가능성(likelyhood)’에 대한 판단인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COVID 19)에 의한 신종 전염병의 도래와 최초 국내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국경봉쇄나 여행 자유화에 대한 논란은 처음부터 설왕설래하였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건 분야 전문가로서 전염병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이에 따른 중대 결정을 쉽게 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내린 결정에 의하여 중국의 우한 경유자의 입국 금지조치를 내렸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자유여행 지지 권장을 무턱대고 믿은 감염학자나 예방의학자의 조언이 정부의 공식 의견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자신의 전공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입국통제’에 대하여 각기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의견이 존재할 때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집단은 이런 다양한 의견에 대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의견청취를 한 후 합의된 내용을 전달하고 전문가 단체와도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위기상황일수록 투명하고 명확한 절차가 더욱 더 요구되는 것이다.

▽제목소리 내는 전문가단체 입 봉쇄, 듣고 싶은 얘기만 정책 반영 결국 낭패
대한의사협회는 산하 단체인 대한의학회 등 다른 단체와 논의와 협의를 통하여 정부와는 반대되는 의견을 지금껏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의사협회를 노골적으로 전문가 자문 그룹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에 불만을 제기하고, 자유여행 지지 정책이 가져 올 공중보건의 위협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복지부 장관의 견해로 보면, 전염병의 대처는 감염학 전공이 더 전문성을 갖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의사집단의 의견은 감염학과 역학을 포함한 예방의학과 미생물학, 그리고 진료 일선을 담당하는 개원의나 봉직의 등 다양한 단체의 합의된 의견을 더 중요시 한다.

복지부 장관이 감염병 대책의 전문성에 대한 행정적 판단이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초월한 것이고, 결국 이렇게 하여 후베이 성을 제외한 중국지역의 입국자를 통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런 정부 조치를 반대하고 우려하는 전문가의 입과 전문가 단체의 공식 의견은 철저히 봉쇄하였다.

정부가 펴 온 ‘조기 낙관론’의 침통한 붕괴의 모습을 지켜보며 정부는 과학적 사실이 개입되는 중대한 결정에 어떤 절차를 거쳐 정책결정을 하였는지를 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즉 과학과 정책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미숙한 처리를 보여주는 정치 조직의 취약성이 노무현 정권 이후에 다시 부활하여 반복되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들이 불만을 제기하였을 때 일방적으로 귀를 닫고 무시하다 보여주는 결과는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매우 참혹할 수 있다.

잘 훈련된 의사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환자의 불만과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수행한 의료행위에 대한 진솔한 비판도 때로는 겸허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지극히 당연한 보편적 원리가 전염병 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고 부담 정책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편의성 원칙(principle of convenience)’에 의한 절차로 단순화 되면서 진솔한 전문가의 조언을 깡그리 무시하는 돌이킬 수 없는 정무적 판단의 실책의 우를 범한 것이다.

▽불확실성 위기 상황 낙관론 자폭행위, 냉철한 이성적 판단 정책에 반영돼야
세계보건기구의 여행금지에 대한 권장사항이나 다른 문건을 세밀히 조사하였는지도 궁금하다. 정치인 아니 고위 행정 관료가 이 문건을 제대로 읽어 보았을 리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복지부 장관도 복지 전공자가 세계보건기구의 전염병 정책에 대한 문건을 직접 접하고 판단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고 부담 정책결정의 근거자료가 세계보건기구의 권장사항에 바탕을 두었다면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제시 된 권장사항의 배경(context), 과학적 근거자료 등에 대한 주의(caution)와 회의(skepticism)에 입각한 비판적 시각의 냉철한 검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혹시라도 세계보건기구의 입장문을 마치 경전(canon)이나 표준(gold standard)으로 생각하여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이것도 정책결정 절차의 심각한 비판적 사고의 문제가 내재된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190개 이상의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는 기구로써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기구의 정책에 깔려있다.

190여개 회원국의 평균적 사안에 대한 ‘통일된 권장사항’으로 각각의 나라가 이를 받아들일 때 각 회원국이 처한 상황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여행 제한에 대한 입장은 후진국에서 전염병이 발발하여 이를 솔직히 공지하고 회원국 모두가 협력하여 전염병을 봉쇄(containment) 한다는 주장으로 ‘containment’의 우리말 이해와 번역도 혼란스럽다.

달리 표현하면, 세계보건기구의 입장에서 자유여행이나 교역을 제한할 경우 후진국이 선진국으로부터 받는 과잉대응에 의한 징벌적 조치로 볼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즉 어려운 나라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전쟁 중 자화자찬 집착, 국민들 각자 알아서 하라는 ‘비보호 좌회전’ 신호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여행자유화를 지지하는 전문가 집단이었던 범 의료계 전문가집단을 비선조직으로 매도하는 아집에 사로잡힌 이익단체라고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심지어 대한의사협회가 이들을 ‘빨갱이’로 몰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비선’으로 명명한 것은 정치집단이지 대한의사협회가 아니다.

여행통제를 주장한 것도 회장의 단독의견이 아닌, 신종 전염병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장시간 숙고를 거듭한 끝에 내린 위원회의 신중한 의사결정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주장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전염병 위기상황에 정부가 구성한 전문가집단의 편향성과 투명성 제고를 요구하는 것이지, 동료 교수들에 대한 비난이 아닌 것이다.

비판은 옳고 그름과 정확한 방향과 그렇지 않는 엉뚱한 방향을 구분 짓기요, 비난은 근거 없이 떠벌리며 상처 주는 것쯤은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동료 전문가에게 신 매카시 적 선풍을 일으키는 집단이라는 주장은 절대로 협회의 입장도 아니요, 그런 입장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전문직 단체는 전문직 단체가 반드시 고수해야 할 입장이 있는데 이것은 환자와 사회의 보호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국방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국가 방역체계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중국인 입국허용에 대한 공중보건의 위협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판단한 것이다.

정부나 세계보건기구가 주장한 자유여행을 금지하였을 경우 발생하는 각종 폐해가 현재의 시점에서 오히려 자유여행을 허용하였을 때의 부작용으로 나오는 것은 정말 역설적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COVID 19)에 의한 신종전염병은 매우 기만적이고 아직도 현대적 과학의 기법으로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악성 전염병이다.

▽방심한 작은 불씨 순식간에 잿더미 신종 감염 병 기만적 특성 명심해야
잘 모르는 전염병을 두고 전문가 간 상호 반대되는 의견으로 전문가 집단 내 상호 비난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은 결국 위기상황에서 위험사정(Risk Assessment)과 이를 근거로 관련 이해당사자와 전문가 집단이 합의하여 일관성을 갖고 국민에게 공지하여야 하는 위험소통(Risk Communication)의 미숙함이 원인이다.

위험소통의 문제가 발생하면 당연히 국민은 최고통제기구(control tower)에 대한 혼란과 각기 다른 고위정책 결정기구의 각각 다른 의사소통에 당혹감과 불안감, 그리고 신뢰감의 상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고 의사결정에서 보여주는 과학과 정치 간의 균형감각 상실은 과거 황우석 사태의 교훈에도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고 부담 정책결정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세계최고라고 자화자찬하는 방역역량에도 정치적 미숙이 가져오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초기 전염병대처의 커다란 허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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