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가 일반약 슈퍼판매를 저지하기 위해 비장의 카드로 내세운 5부제에 대한 여론이 녹록치 않다. 시민단체는 물론 약사사회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시민단체는 심야응급약국의 전철을 밟을 것이 뻔하다며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나섰고, 일선 약사들은 약사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집행부의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특히 슈퍼판매를 저지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임에도 청와대와 복지부가 의약품 재분류와 약사법 개정을 통한 슈퍼판매 추진 방침을 다시 밝히면서 약사회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약사회가 내놓은 5부제는 무엇인지, 어떤 이유로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지 알아봤다.

▽5부제란?
대한약사회는 오는 20일부터 전국 약국이 참여하는 순환근무제, 즉 5부제를 시행할 방침을 밝혔다.

약사회는 지난 9일 비상대책위 집행위원회를 개최해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5부제 시행의 구체적인 방침을 결정하고, 이미 운영중이던 당번약국의 규정도 개정했다.

5부제에 따르면 약국이 5일마다 한번씩 오후 12시까지 근무하고, 공휴일에는 4번마다 한번씩 근무해야 한다. 약사회는 약국의 규모나 지역에 상관 없이 전체 회원이 평일 밤 12시까지 5부제로 약국 문을 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층약국이나 병원 앞 문전약국도 예외 없이 참여하도록 했지만, 일부 지역별 특수성에 의한 예외는 인정하기로 했다.

또, 약국이 위치한 건물이 특정 시간에 출입할 수 없도록 폐쇄되거나 약국 위치상 참여가 쉽지 않은 경우에는 지원성급 납부나 휴일 당번약국 운영을 더 하는 것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약사회는 참여를 거부하는 약국은 약사회 내부 윤리규정을 적용하기로 했으며, 윤리위를 거쳐 복지부에 고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실효성 없다”
시민단체는 약사회가 마련한 ‘당번약국 활성화’ 방안은 심야응급약국의 전철을 밟을 것이 뻔하다며,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실련은 “지난해 약사회가 심야시간대 운영약국 도입방안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실제 전국 약국수의 0.3%에 불과한 숫자만이 운영되고 그 조차도 대도시, 유흥가에 집중돼 지역적 편차와 불균형이 심각해 실효성 없는 방안임이 확인됐던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는 2007년 ‘24시간 약국’ 이라는 이름하에 전국 확대가 시도됐던 것과도 유사해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검증된 것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들은 심야응급약국이 약사회의 궁여지책에 불과했듯이 5부제 시행 역시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실효성 없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우려했다.

경실련은 “상비약 약국외 판매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커지자 이를 막기 위해 급한 불만 끄고 보자는 식의 약사회 자구책으로는 상비약 약국외 판매요구와는 상관없으며 이의 근본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약사들 여론도 ‘부정적’
약사사회 내부에서도 5부제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이지 않다. 약사 회원들의 희생으로 이뤄진 집행부만의 승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약사들은 특히 과도한 업무강도를 생각할 때 현실성과 실효성 없는 무리한 방안이라고 지적했으며, 치안 문제와 심야응급약국 실패에 대한 의구심도 나타냈다.

온라인 약사 커뮤니티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은 “약사회의 당번약국 제안은 여론의 압박과 시간의 횡포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인한 것이다”면서, “위 아래로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과 한정된 틀 속에서 대안찾기를 골몰하다 결국 회원들을 육체적, 정신적 혹사의 길로 내모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고 집행부를 비판했다.

약준모는 또, 전국 2만여 약사들은 이미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인 2,357시간보다 무려 1,500여 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당번약국 시행은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인해 시행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실적으로 내방객이 거의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두 시간씩 야근을 더 하라는 것은 약사들더러 개인적인 삶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포기하라는 강요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약준모는 5부제 시행에 앞서 ▲심야시간대 약 구입 불편검증 ▲지자체 협의 후 지역여건 맞게 시행 ▲치안 안전장치 마련 ▲대한약사회 산하 총괄 기구 설치 등을 요구했다.

▽5부제 시행했는데 결국 슈퍼판매?
슈퍼판매를 막기 위해 5부제를 내놨지만, 지난 10일 복지부가 액상소화제, 드링크, 파스류, 정장제 등 20여 품목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약사회는 다시 곤혹스런 상황에 놓이게 됐다.

진수희 장관은 10일 복지부 기자실을 방문해 자유판매약을 도입하는 의약품 분류체계 개편 입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을 밝혔다.

복지부가 지난 3일 발표한 국민의약품 구입불편 해소방안 이후 여론이 악화되고 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다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약사들이 힘겹게 지켜온 약 판매 독점권이 국민 여론과 정치권의 힘 겨루기에 의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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