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저수가, 고군분투’ 질곡의 사슬 끊으려면 ‘응답하라 2020’ 외칠 수 있어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가 불안감에 휩싸인 채 뒤숭숭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무능한 정권에서 파생된 제트 기류에 편승하여 마치 광풍과도 같았던 정치적 이벤트를 잘 이용해서 권력을 차지한 현 정부 역시 새로운 모습의 ‘신종 감염 병’ 앞에서는 감추고픈 무능함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감염 병 대처는 현 정권의 고유한 전공분야도 아니며, 관심 분야 또한 아닌 것 같다.

정권이 무능하면 전문가 집단의 역할이 더욱 더 필요하고 중요함에도 여전히 현 정부의 태도를 보면 전문가집단을 진정성 있게 활용하려고하기 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일회성 이벤트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영국 식민 아시아 주변국 보다 낮은 의학교육 수준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아이러니

지난 1980년대 미국의 ‘China Medical’ 원장을 역임했던 Patric Ongly 박사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의 China Medical Board의 원조를 받은 아시아 국가를 순차적으로 방문하여 원조 수혜국에 대한 의학교육 평가를 단행한 바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연세대가 1985년에 발간한 의과대학 학술지에 논문으로 게재되었는데, 당시 외부 전문가의 시각에서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수준을 평가한 소중한 기록으로 잘 보존되고 있다.

이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와 대만은 의료서비스와 연구 교육 분야에 있어서 교육자의 역량이 선진국에 비해 아직 부족한 상태임을 냉정하게 지적하였다.

이에 비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의 의학교육은 교수진의 역량이 ‘좋다’고 평가했다.

이와 같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평가 결과는 공교롭게도 ‘식민 일본식 서양의학교육’과 ‘식민 영국식 서양의학교육’의 차이로 대입하여 고려해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나라의 의학기술이 아시아 지역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 이런 자긍심은 점차 사회 일반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무리가 없는 듯하다.

우리 스스로 세계 최고라고 자화자찬하는 데는 임상기술의 선진화와 연구역량의 급상승이 가져온 결과인데, 사실상 의료계는 빠른 경제성장 속도를 훨씬 더 초월하여 나름의 눈부신 성과를 낸 것이다.

정부나 건보공단은 이를 두고 앞 다투며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성공이라고 해석하고 국가의 주도면밀한 운영 시스템에서 가져온 정부와 정치적 치적으로 자랑하고 있으나, 사실은 급속하고 다양한 의료 수요와 한 맺힌 의료욕구를 해결하느라 일선 의료 현장에서 몸을 돌보지 못하며 고군분투한 의학계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묵묵히 최선의 역할을 다한 숨은 노고의 땀방울이 촉촉하게 스며들어 있는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간영역의 처절한 생존 방식이 정부 의학교육 방치에도 임상 연구 역량서 선진 리드

그러나 정부와 관련 산하기관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에서는 여전히 보건의료인의 피나는 희생을 담보로 거둬들인 성공의 기반을 마치 부를 축적한 배부른 기득권의 집단적 아성쯤으로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여기에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일부에서는 의사집단은 인권보호와는 대립되는 ‘갑질’ 개념의 집단으로 비추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자리를 한몫 차지하고 있다.

고 Patric Ongly박사가 의학교육 선진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처럼 “한국의 의학교육 수준이 잘못됐고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딱 잘라서 단정할 수는 없으나,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 정부와 사회로부터 의학교육에 대한 투자가 전무하다는 명확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 수준이던 아시아 주변국들도 1980년대 이전부터 의학교육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의학교육을 물려준 일본도 전체 의대 중 75% 이상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립의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임상 및 연구역량 선진화의 비결은 결국 민간 영역의 의료인의 노력과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진 성공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민간의료와 사립의과대학의 성공 아닌 ‘생존’의 비결에는 수능성적에 대한 성취도가 탁월한 우수 학생의 선발이 뒷받침되었다고 해도 마땅히 이의를 제기할 논리는 매우 빈약해 보인다.

▽80년대 민주화 거대담론 물결아래 의료계 각종 규제 핍박 의료생태 처절한 붕괴 가속

의료계와 의사는 폭증하는 의료수요 감당과 재벌의 진입, 그리고 꾸준한 대형병원의 성장에 매진할 때 속칭 운동권은 민주화라는 거대담론의 성취를 위하여 노력하였고, 엄청난 사건 사고의 역사 속에서 투쟁의 방법론을 습득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설득역량’을 쟁취하였다.

민주화를 위한 조직 관리와 이념적 학습의 전파에도 성공하였고, 대중을 동원하는 사회적 역량도 중요한 자산으로 획득하여 쌓아 놓았다.

이에 비해 의료계는 여전히 싸구려 의료정책 속에서 대형 의료기관의 적자생존 식 지속적 성장에 가려진 채, 대형 기관과 비교 불가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개원가와 중소병원의 곡소리 나는 처절한 붕괴가 진행 중이다.

지난 1980년대에 외국인에게 비추어진 비교적 낮은 수준의 의학교육을 잘 들여다보면, 급속한 의료수요 충족에 초점이 맞추어진 급조된 최소 임상역량을 위한 의학교육으로 그런대로 폭증하는 의료수요에 대한 급한 불은 제대로 잘 끈 셈이다.

‘응답하라, 1987’이라는 대명제에 비춰본다면, 의료계는 당대의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최소 임상교육’으로 당시의 의료수요에 최대한 응답하였으며, 특히나 불과 12년 만에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의 1989 완성본이 마무리되었다는 공식 선언이 가능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1987 민주화운동 세력 정치역량 키우는 사이 의료계 의약분업 투쟁후 내부 싸움 격화

‘응답하라 1987’에서 운동권이 민주화라는 대의명분 속에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키워내는 동안 의료계는 끊임없이 출현하고 반복되는 규제와 압박 속에서 드디어 터진 2000년 의약분업 반대투쟁은 의료계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대정부 투쟁 과정에서 의사는 집단이기주의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는 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상대는 민주화 투쟁 운동으로 정치 사회적 근육이 다부지게 발달한 정치집단이어서 의사집단의 패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르며, 아픈 결과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애처로운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의약분업 투쟁은 우리나라 의사 단체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단력을 과시하였으나 정치인과 언론을 등에 업지 못하였고, 설득하지도 이겨내지도 못하였다.

이미 의사의 임상 역량은 선진화를 향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나 의사 단체의 단체적 역량은 대정부 투쟁의 충분한 뒷받침이 못되었다.

성공하지 못한 의사집단운동 패배의 트라우마는 결국 그동안 유지해 온 대의원총회를 통한 간선제에서 전 회원 직접 선거에 의한 직선제로 회장 선출 방식변경 등 의사단체 내부의 좌절과 분노로 화살이 이어져 과거에 보지 못하던 신종 의사단체의 출현으로 물꼬가 터졌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 이익’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매우 부정적이고 터부시되는 의미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과거 개발 독재시절 정부주도 경제계획에 차질을 주는 모든 행동은 국가를 망각한 집단의 이기로 몰고 가는 전형적 전체주의적 사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조직이고, 동아시아에서 보여주는 재벌은 여기에 가족주의가 편승한다.

재벌에 맞선 노조의 운동도 근로자의 노동기본권을 수호하고 근로자 개인의 권익을 위해 결성된 대표적인 이익집단이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의사들의 파업이 있었는데 의료가치의 수호를 위한 사안도 많이 보인다.

이런 경우 집단행동이란 오히려 국가 전체의 안위를 고려한 보건의료정책을 염두에 둔 파업으로 봐야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사회 곳곳 민주화 훈풍에도 의료계만 여전히 과거 군사독재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어  

현 정권도 민주화 정권이라고는 표방하나 실제로 전문직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 민주화 열풍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1987년 이전의 군사독재시절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만 부각돼 있는 ‘집단 이기주의’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용자나 통치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매우 건전한 사회적 기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득에 관한 이해 충돌이 발생할 때 토론과 협상, 그리고 대화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 벌어지는 쟁의활동(industrial action)은 법적으로 보장된 ‘기본권’ 중에서 ‘핵심 기본권’이다.

의약분업 투쟁에서 패하고 의기소침해 있던 시절 정부는 잽싸게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의사집단에 대한 불평등한 구속 장치를 마련하고 기본권의 제약을 공고히 하였다.

이어지는 정부정책의 명령과 통제 시스템 하에 정부와 사사건건 마찰은 여전히 관변단체나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언론에 의하여 자기 이익만 챙기는 집단이라는 탈색된 이미지를 급조해가는 과정이 아직도 힘차게 살아 꿈틀댄다.

학교 교육으로 해결이 안 된 부분에 대한 필요를 자각하고 이제 정부에 대항하기 위하여 의사 스스로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깊은 지식의 필요한 요구를 스스로 감지하고 터득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의사가 각종 보건의료 정책과정에서 자기개발을 위해 비 임상적 영역에서 주경야독의 정신으로 열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글픈 의료 근로조건은 이런 정책과정에 참여하기 위하여 늦은 밤 시간을 이용하거나 주말을 담보하여 희생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 흔한 평생교육 평점도 부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사 스스로 의학교육에서 배워보지 못한 역량을 갖추느라 고생길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쌓이고 확산되면, 머지않아 향후에 단체적 역량에 기여할 것임은 두말한 나위도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노력이 전문의가 되기 전에 제공될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현재의 전공의교육 제도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회의적이기도 하다.

단체적 차원에서 의사에게 분명하게 인지된 학습요구가 있다면, 이 문제는 현재의 리더들이 적극 힘써야 하는 것도 당위성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의 본질은 무엇인지, 의사단체는 의료를 어떻게 규명하는지와 이에 따른 각종 의료제도와 규제에 대한 제반 이해와 문제점 인식, 그리고 의사 단체의 발전은 어떻게 역사적으로 전개되었지 생각해보고 인지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권리 위 잠에서 깨어 국민 기본권 당당히 요구, 리더 중심 개인과 단체역량 강화해야  

현재 의과대학 과정에는 인문사회 교육과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알고 보면 지난 2012년 이후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의 변화로 시작되어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나라 서양의학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맞게 최적화된 교육에서 시작되었으나 지나친 생의학적 중심주의로 발전하였고, 서양의학이 갖는 사회적, 법적, 경제적, 정치적인 배경 지식은 정작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일제는 조선인의 이성적 진보를 가져다 줄 일종의 ‘고급학문’은 조선인에게 제공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였다고 한다.

이런 식민 후의 문화적 전통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야 서서히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의사와 의사단체가 해야 할 일은 “응답하라, 2020!”인데 의사가 사회의 요구에 즉시즉시 응답하기도 해야 하고, 의사 자신과 집단을 위한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복수의 과제를 안고 있다.

전문직이라면, 뗄 레야 뗄 수 없는 속성 중의 하나인 의료가 지니는 ‘공익성’의 문제 때문이다.

어쩌면 집단의 이익과 공익을 위한 적절한 균형감각을 보유하는 역량이 바람직한 의사단체의 모습일 것이다.

공익성을 강조하여 의사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공익성의 수호에도 의료근로자로서 법으로 마땅히 보장된 권리를 찾아 유지해야 한다.

어쩌면 속칭 운동권의 정치적 장악궤적을 배울 필요도 있어 보이고, 강력한 노조를 형성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의사단체를 벤치마킹하여 보고 배울 필요도 있다.

현재의 의사 세대는 임상영역 이외 의사단체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활발한 국제교류와 다 학제 간 학습으로 의과대학이나 전공의교육에서 배우지 못하였던 역량을 의사사회에 급속히 전파하여 2020 이후 미래 세대에 넘겨주고 제공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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