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진에서도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등 의료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중인 독일에서도 여전히 의사의 진단 및 진료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 하에 이뤄져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와 대면한 상태에서 상담이나 진료행위를 해야 한다는 원칙은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에서 여전히 ‘금과옥조(Goldstandard)’라는 것이다. 특히 원격의료는 환자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의 특수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선택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대한의료법학회가 지난 18일 연세대학교에서 개최한 월례학술발표회에서 김수정 명지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독일의 원격의료 현황’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독일은 2018년 이후 과거 원격의료 금지를 전제로 했던 여러 법 규정을 정비하고, 세계 최초로 건강 앱 처방을 가능하게 하는 등 의료의 디지털화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가 출범한 2018년 3월부터 연방보건부 장관 Jens Spahn이 이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의료 디지털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다.

김수정 교수에 따르면, 독일의사협회는 2015년 12월 11일 발간된 ‘의사직업규칙’ 제7조제4항에 대한 제안설명서에서 초진은 대면진료여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서 비판받기도 했고, 환자들 사이에서는 원격의료로 초진을 할 수 있도록 원하는 의견이 늘어났다.

또한 이 같은 의사협회의 제안설명서에도 불구하고, 2016년부터는 초진은 대면진료여야 한다는 원칙을 폐기하는 주(州)의사협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연방의사협회는 표준의사직업규칙 제7조 제4항을 개정해 단독 원격진료 금지원칙을 완화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 5월 개최된 제121회 독일 의사회의는 압도적 다수결로 제7조제4항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주의할 것은 개정된 제7조제4항 제1문 및 제2문에 따르더라도, 의사의 진단 및 진료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 하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연방의사협회의 이사회는 의사는 환자와 대면한 상태에서 상담이나 진료행위를 해야 한다는 원칙은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에서 여전히 ‘금과옥조(Goldstandard)’에 해당하며, 디지털 시대에도 의료의 배경으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술은 의사의 활동을 지원해야 하지만, 의사의 개인적인 애정 어린 관심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표준의사직업규칙 제7조제4항의 개정을 제안했던 바이에른 주의사협회의 협회장인 Gerald Quitterer도 단독 원격의료가 허용된 이후에도 환자의 안전과 의료 정보의 보호가 제1순위가 돼야 하며, 여전히 오감에 기초한 의사와 환자의 대면 진료가 원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원격의료는 환자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의 특수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선택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표준의사직업규칙이 변경된 이후에는 대부분 주의사협회가 단독 원격진료 금지 원칙을 완화한 개정 표준의사직업규칙 제7조 제4항을 수용했지만, 단독 원격의료 금지원칙을 고수하는 주도 있다.

브란덴부르크 주의사협회는 장단점을 모두 형량해 본 결과, 개정 표준의사직업규칙 제7조 제4항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결의했다. 현행 규칙에서 허용하는 원격의료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자를란트 주의사협회도 2018년 5월 전적인 원격의료 허용을 명시적으로 거부했다. 거부 쪽에 투표한 회원들은 일단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이는 의사들의 손을 떠나 새로운 영업모델이 될 위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를란트 주의사협회는 이후 입장을 바꿔 지난해 4월 연방의사협회의 표준의사직업규칙에 따라 전적인 원격의료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독일의 원격의료 관련 법률 현황을 보면, ‘E-Health’ 법률은 전자의료카드 및 온라인 영상상담 도입 등, 통신기반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전자의료카드(elektronische Gesundheitskarte, eGK)는 환자의 의료정보를 온라인으로 저장하고 온라인으로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원격의료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미 2015년 1월 1일부터 병원과 치과병원에서 의료보험카드 대신에 전자의료카드가 사용됐다. 2017년 12월부터는 연방 전체에 통신기반시설이 도입됐으며, 첫 단계로 의원과 치과의원이 연결됐다. 이후로는 병원, 약국 등에 통신기반시설을 연결하기 위해 협의하는 중이다.

또한 법 개정 중 원격의료와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방사선 촬영에 대한 자문의의 사실 평가를 위한 원격의료 절차와 온라인 영상상담의 실행이다. 이 내용은 사회법전 제5권 제291의g조로 신설됐다.

아울러 원격의료 금지원칙은 의사직업규칙 뿐만 아니라 의약품법과 치료제광고법에도 그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의사직업규칙이 개정된 이후에는 의약품법과 치료제광고법의 해당 규정에 대해서도 개정 논의가 있었다.

치료제광고법 제9조가 제정될 당시에는 전적인 원격의료가 포괄적으로 금지돼 있었지만, 2019년에 디지털의료법에 의해 개정됐다. 원래 규정은 제1문이었는데, 제2문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된 전문적 기준에 따라 진료받을 사람과 의사와 대면이 필요하지 않다면, 통신매체를 사용해 이뤄진 원격의료의 광고에 대해 제1문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마찬가지로 의사나 치과의사가 처방을 하기 전에 의사 또는 치과의사와 처방을 받는 자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이 있을 것을 요구하는 의약품법 제48조 제1항 제2문 및 그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제3문을 삭제하는 방안이 ‘의약품 공급안전 강화에 관한 법률’의 입법안에서 논의됐지만, 2019년 개정에서 이 규정은 변경하지 않고 일단 유지됐다.

대신 의약품 공급안전 강화에 관한 법률은 전자처방전을 도입해 약국은 처방전이 필요한 약품을 단독 원격의료를 한 의사가 발행한 처방전을 받고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전자 처방전의 적용을 위한 구체적인 요건은 법률이 발효된 때로부터 7개월 이내에 의사들의 자치기구가 확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해당법에 따르면, 의사와 영상 면담을 할 수 있으며, 영상 면담 중 의사가 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다.

이 경우 환자가 전자처방전을 받고 나서 선택한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품을 구입하면 해당 약품은 택배 서비스를 통해 집으로 배달된다. 이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며, 약물 치료를 더 안전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직접 병원을 방문해서 전자처방전을 받고 약국에서 직접 약을 살 수도 있으며, 환자가 원하면 종이에 인쇄된 처방전을 받을 수도 있다. 전자처방전 시스템은, 약품 간의 상호작용을 체크하고 모든 의약품이 서로 양립가능한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기대되고 있다.

김 교수는 “표준의사직업규칙 제7조제4항으로 인해 원격의료가 제한돼 있었다면, 의약품법과 약사법에 의해 약국 외 의약품 구입이 제한돼 있었는데, 전자처방전은 약국내 구입 원칙도 상당히 완화시키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건강 앱 처방제도 도입이 눈길을 끈다. 의약품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거나 혈당을 기록하는 것을 도와주는 기능을 하는 건강 앱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의료법은 이러한 건강 앱을 의사가 처방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그 비용은 공공의료보험에서 지급된다는 제도를 신설했다. 즉, 의약품 및 의료기기에 관한 연방기구가 건강 앱의 안정성, 기능적합성, 품질을 심사하면 이 앱은 1년 동안 임시로 공공의료 보험에서 배상된다.

이 기간 동안 앱 개발자는 독일 의약품 인스티튜트에 해당 앱이 환자의 상태를 개선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개발자가 얼마나 많은 금액을 받게 될지는 공공의료보험 수뇌부와 직접 협상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개정에 대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보험공단은 디지털 응용을 평가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이러한 프로그램의 효용과 비용이 불균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공단 수뇌부는 위험분류 I과 IIa의 적용을 오로지 제조자의 자료에만 근거해 의사와 병원은 배제한 상태에서 의약품 및 의료기기에 관한 연방기구가 심사하는 것은 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연방의사협회는 디지털 건강 응용의 새로운 허가절차에는 의사와 환자의 특별한 필요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반면, 건강 앱이 앞으로 법정의료보험에서 지불된다는 것을 연방심리치료협회(BPtK)는 기본적으로는 환영한다.

연방심리치료협회장은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게 되면 정신과 치료를 집중화시키고 의료성과를 안정화시키며, 정신적 질병을 피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방정신치료협회는 건강 앱을 진료에 사용할지 사용한다면 어떤 앱을 사용할지는 심리치료사나 의사만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방 보험계약의사협회는 건강 앱을 개발할 때 반드시 의사도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자 진료에 전혀 관련되지 않은 사람이 건강 앱 개발을 주도하고 건강 앱이 전체적인 치료 컨셉에 통합되지 않는다면 이는 기회의 낭비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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