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각 부처에서 빅데이터 활용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새해에도 관련 정책은 활발히 추진될 전망이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5월 13일 ‘빅데이터 플랫폼 및 센터 구축 사업’으로 10개 과제를 선정했고, 같은 달 16일에는 의료ㆍ금융ㆍ에너지 등 마이데이터 서비스 8개 과제를 선정했다. 5월 22일에는 보건복지부, 과기정통부 등 여러 부처 공동으로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포함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전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이 표적항암제 등 개인 맞춤형 치료기술 중심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데, 이러한 의료기술 혁신의 핵심기반이 ‘데이터’라는 인식 아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데이터 중심병원 ▲신약 후보물질 빅데이터 ▲바이오특허 빅데이터 ▲공공기관 빅데이터 등, 5대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 혁신신약 개발과 의료기술 연구를 통해 국민 생명ㆍ건강을 지키는 국가 인프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최대 100만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한다. 희망자를 대상으로 유전체 정보, 의료이용ㆍ건강상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인체정보는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 등에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환자 맞춤형 신약ㆍ신의료기술 연구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다.

올해 1단계(2020∼2021, 2만명 규모) 사업을 시작으로, 오는 2029년까지 100만명 규모 빅데이터 구축 완료를 목표로 한다.

또한, ‘데이터 중심병원’을 지정해 현재 병원별로 축적된 대규모 임상진료 데이터를 질환연구, 신약개발 등에 활용되도록 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주요 병원들이 병원별로 보유한 진료 빅데이터는 외국의 국가전체 인구규모(핀란드 인구 556만명)보다 큰 규모이다. 이러한 데이터가 외부 유출 없이 병원 내에서 신약 및 의료기술 연구에 안전하게 활용되도록 표준 플랫폼을 마련하는 사업을 내년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또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달 13일 개최한 제14차 회의에서 ‘개인주도형 의료데이터 이용 활성화 전략’을 심의ㆍ의결했다.

여러 의료기관 등에 흩어져 있는 의료데이터를 내 스마트폰이나 PC 등을 통해 한 곳에서 열람하고, 진료나 검사결과를 알기 쉽게 시각화해 확인할 수 있으며, 타 병원 진료기록 사본을 발급받지 않고도 내가 진료 받고 있는 병원에 데이터로 전송해 응급상황이나 일반 진료 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다양한 의료데이터를 활용해 의료진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내 의료정보를 토대로 운동관리, 복약관리 등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정책과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빅데이터 활용 사업은 국민이 얻는 이득은 없이 정부와 일부 기관에 막대한 이익이 집중될 우려가 높고, 의료기관에는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이다.”라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의료정보 접근이 개인에게 너무 쉽게 허용되면 비전문가에 의한 의료정보의 자의적 해석이 만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오히려 국민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라며,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의료정보를 쉽게 접근하고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이 국민에게 이득으로 돌아 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국민이 의료빅데이터 활용 사업을 통해 얻는 이득은 미미한 수준인 반면, 빅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민간 보험사나 일부 기업에 판매해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고, 의료빅데이터 정보를 정부에 유리하게 가공해 의료정책 추진 시 근거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소는 단일공보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의료빅데이터는 의료 통제와 의료 악법 양산의 도구로 악용 될 수 있으며, 의료빅데이터 활용 사업의 서비스 방식으로는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완전히 막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이어 “모바일과 PC 기반의 개인 주도 의료데이터 이용 활성화 계획은 원격진료 시행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의료빅데이터 활용 사업은 의료기관에 과도한 희생을 강요한다.”라며, “진정으로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의료관련 산업을 활성화 시킬 의지가 있다면, 현재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왜곡을 만든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저수가 개선, 단일공보험 체제와 관치의료 구조를 먼저 타파하고, 의료시장에서 자유가 더욱 보장되는 구조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정의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서울YMCA, 소비자시민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 함께하는시민행동도 지난해 5월 성명을 통해 “폭주하는 데이터 활용 정책, 개인정보가 위험하다.”라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는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개인정보를 포함한 데이터 정책을 쏟아내는 반면, 빅데이터 활용으로 위협받게 될 시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보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라며, “개인정보에 대한 안전망없이 추진되는 일련의 빅데이터 정책이 1억건에 이르는 금융개인정보의 유출과 같은 참사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마이데이터 사업’과 관련해 “본인 동의를 받는다고 하지만, 개인정보 침해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고지가 이뤄질지 의문이다.”라며, “의료 마이데이터의 경우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소비자들의 민감한 개인정보 제공이 사실상 강제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신뢰없이는 빅데이터 산업도 성장하기 힘들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는 빅데이터 정책의 폭주를 멈춰야 하며, 그보다 먼저 개인정보 보호체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의사)도 지난해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인가, 기업 이윤을 위한 것인가’ 제하의 기고문을 통해 “정부가 추진중인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들은 의료 현장에서 혹은 공중보건 현장에서 그 효용이 증명된 것이 극히 적은 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 사회적 차별 및 배제의 확대 재생산 가능성, 그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이 증가할 가능성 등은 더 현실적 근거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은 사회 구성원 간 충분한 토론과 합의에 근거해 차근차근 진행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새해에도 관련 정책은 활발히 추진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2020년 신년사를 통해 “더욱 멀리 미래를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라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온 지 한참이 됐지만, 아직은 보건복지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과 AI, 빅데이터 등 신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가 부족했다.”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올해는 보건복지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면서, “우리의 우수한 의료자원을 비롯해 기존의 보건의료 산업들과 돌봄 경제를 어떻게 더욱 고도화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규제 개선과 인력 양성, 기술 개발에 대하여 촘촘히 설계하며 미래를 대비해 나가겠다.”라고 전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권덕철 원장도 신년사를 통해 “2020년 진흥원이 관리하는 보건의료 R&D예산은 전년대비 17% 증가한 4,100억원으로 처음으로 4,000억원을 돌파하했다.”면서, “이를 혁신신약, 의료기기, 재생의료 등 차세대 유망기술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반 의료기술 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특히 “100만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해 신약개발 등 질병극복과 산업발전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 공공 목적의 연구를 위해 제공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통해 신뢰 가능한 빅데이터 활용 기반을 마련하겠다.”라는 계획을 천명했다.

한편, 2020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전부처 통틀어 최대 규모인 82조 5,269억원에 달한다.

이 중 바이오헬스를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예산도 책정됐는데,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에 150억원, 의료데이터 중심병원 지원사업에 93억원, 재생의료안전관리체계 구축에 12억원, 감염병 예방치료 기술개발사업에 255억원 등이 신규 편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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