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와 관련 의료제도를 다각도로 살펴보면, 표면상으로는 ‘총액(계약)’ 형태가 아닐지라도 내용 면에서만큼은 이와 비슷한 ‘준 총액계약제’ 개념이 깊숙이 뿌리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정부 주도로 연간 총 의료비의 지출 규모를 기획된 범위 내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의료발달의 정도와 의료수요의 질적 양적 증가와 각종 질병 양태 및 인구구조의 변화 등 수 많은 변수 등을 감안한 연간 의료비 총액과 직결되는 ‘총 파이’의 크기는 ‘전족’처럼 매년 꽁꽁 묶여 있는 저성장세 기조 속에서 늘어나는 폭은 극히 제한적이다.

▽환자 유인 목적 본인부담금 면제 명백한 위법임에도 종종 선의로 미화 의료질서 훼손
이런 가운데 누가 먼저 파이의 일부라도 가져갈 것인가를 놓고 의료기관 간 과당 출혈 경쟁이 심화되면서 본인부담을 면제해 주는 의료기관이 미디어에 오르내리며 왕왕 화두가 되고 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본인부담금을 환자를 위해 받지 않는 매우 착한 척 하는 기관들은 말 그대로 ‘선한 적자’임을 표방하는 구호처럼 넉넉한 인심을 베푸는 행위처럼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소액이라도 의료소비자인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면제하는 행위는 본인부담을 빠짐없이 징수하는 의료기관들 보다 선호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의료 질서를 무너뜨리는 환자 유인행위라는 명백한 위법 소지가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의료계에서 근절되지 않고 지속되는 환자 본인부담금 면제 등 여러 형태의 환자 유인 행위를 볼 때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견고한 틀로 자리 잡고 있는 ‘의료윤리’가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게 된다.

이미 선진국에서도 우리의 바람직하지 않은 지금의 모습과 유사한 ‘악성 의료’를 경험했을 것이며, 이를 방지하고자 오늘날의 의료윤리로 육성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부정적 사례가 지루할 만한 의료윤리의 의미와 내용이 쉽게 피부에 와 닫게 하는 대목이다.

▽과학에 기반 한 의학의 본질과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해야 순기능 커질 수 있어
일전에 한 박사과정의 초년생 철학도가 “국민에게 유전자정보 검사를 받게 해주면 좋은 것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솔직히 철학도 입장에서 단순한 질문 보다는 깊은 생각을 요하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정적 측면이나 유전자검사가 내포하고 있는 인류사에 가져올 철학적 관점이나 위험성에 대해 성찰해보는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필자는 개개인의 유전자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안다고 하여 무엇이 달라지고 좋아질 수 있는지를 역으로 물었는데, 철학도의 대답은 이것으로 자신이 건강정보와 건강적인 운명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신천지 같은 신기술에 대한 기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다시 부정적 측면에서 질문했다. 만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DNA상에서 암 발생과 치매 등 부정적인 유전정보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선뜻 대답을 못하기는 그 철학도에게 혹시 취업 면접에서 특정 유전자를 소유한 사람은 면접에서 배제시키면 어떻게 하겠냐는 가정에 국가단위 유전자 정보서비스에 대한 잠정적인 위해를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과학의 발전이 경우에 따라 심각한 위해 초래 유럽 사회 등 역기능적 측면 경계 강화
아직도 우리사회는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삶의 진보를 직선으로 확장시켜 연결시킨다.

그러나 이미 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서 대중의 정서는 과학의 발달이 반드시 인류의 삶에 진보적이지 않다는 의견들이 다양한 설문조사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양대 세계 대전을 통하여 당시 수준에서 과학과 기술은 매우 빠르게 진보하였고 그 진보된 기술로 일부 상당한 이득도 있었으나 국제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에 막대한 폐해를 끼친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살상무기의 발달과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결합되기도 하였고 이데올로기 간의 치열한 싸움에 악용되기도 하였다.

유럽 사회는 과학의 발전에 대한 부차적인 위해 가능성에 대해 영리하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경계를 지속하고 있다.

폐해를 경험하여 과학의 발전이 반드시 사회적 이득이나 국가적 이득으로 연결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위대한 과학적, 기술적 진보라고 홍보되는 새로운 것을 더욱 경계하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사회적으로 적용을 시도하고 국민과 공익을 위한 사업으로 포장하며 뒤에는 숨어 있는 정치권이나 정부 혹은 기업이나 단체가 2차적 이득을 추구한다는 이유인 것이다.

▽허황된 바이오산업 등 여과장치 없으면 국민 우롱하는 ‘제2 황우석사태’ 언제든 재발
우리나라는 과거나 현재의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서라도 바이오산업을 이끌고 우선 진입부터 하고나서 나중에 따지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다.

전자업계 활성화를 위한 폐쇄회로 TV가 유치원으로 시작하여 이제 수술방, 분만실, 신생아실은 물론 필요하다면 개인의 안방에까지 퍼질 태세다. 윤리적인 고려는 아마도 사치스러운 모양이다.

검증되지 않는 허황된 바이오산업의 거품이 진정 우리나라의 좋은 미래의 먹거리가 될지 아니면 회복하기 힘든 재앙으로 닥칠지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원전이 무섭다고 원전폐쇄를 결정한 정부가 바이오산업이 더 끔찍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2차적 이득에 눈이 멀어 있는지 신세대 성장 동력과 직장창출로 포장하고 있다.

이런 정책의 뒤에는 항상 정치권이자 재벌 등 권력의 그림자가 비추어진다.

국민의 수준이 높다는 배경에는 의료산업화가 아닌 의료상업화의 내용을 사회적으로 적절히 걸러 주는 장치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과연 우리나라에 이런 정치적 상과로 포장되는 과학의 발전을 검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황우석 2세’가 힘센 정권의 후광에 따라 얼마든지 출몰할 수 있는 위험한 낮도깨비 같은 사회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형 의사면허기구 운영 국가, 진료비 할인 등 천박한 ‘상업의료’ 철저히 배격
선진국에서 상업적 의료에 대한 기준은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다. 의사면허기구를 표방하는 의료표준(medical standard)에서 진료비에 대한 불투명한 감면이나 할인 행위는 일체 엄중하게 금한다.

진료비 본인부담 면제라는 사실은 의료에서 할인의 혜택을 의미하는데 그렇다고 할인이 결코 환자를 위한 봉사는 아니다.

문제는 본인부담 면제로 환자를 유인하는 행위에 대하여 일부 의사 회원들이 별다른 죄의식이나 윤리적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의료계는 문케어로 인한 각종 검사의 급증이나 종합병원 쏠림 현상을 날카롭게 비난하면서도, 일부 의사 회원과 의료기관에서 자연스럽게 표방하고 있는 본인부담 면제나 접근성 제고를 위한 교통편의 등 명백한 상업적 활동을 목적으로 한 환자유인에는 매우 둔감한 것이 사실이다.

의료 재원은 분명 한정된 자산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정부는 무한정 의료비를 조달할 수는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의료기관은 의료기관 대로 의료소비를 부추기며 동시에 한 방향으로 내달리면 결국에는 모두가 망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소비자인 환자와 의료 제공자인 의료기관 모두 악성 의료 과소비와 바람직하지 않은 상업성 의료에 대한 적절한 제동과 경계를 유지해야 지속가능한 좋은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정보제공에 대한 철학도의 반응이 깊은 사고보다는 감각적 유용성과 편의성에 지향되어 있듯이, 상업적 의료에 대한 의사집단의 인식도 좀 더 깊이 있는 사고를 요한다.

▽한정된 의료 재원에 옳지 않은 상술 적 의료 견제해야 양질 의료 지속가능성 보장
중국은 지난 1980년대 덩샤오핑의 주도적 역할로 과감한 개방정책을 단행하였다. 중국 인민들은 충분한 재정적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6.25 한국 전쟁에 가담했다가 혹독한 참전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모택동도 6.25 참전 결정을 몹시 후회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아들도 전투도 못해보고 전사하였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중국 전체가 10년 넘게 가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에 대한 공정한 분배로 중국 인민들의 먹거리 걱정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급된 식량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1년 치 배급량을 6개월 만에 다 소비한 끝에 중국은 개방 전 3000만 명에 달하는 기아사라는 씻기 어려운 치욕의 역사를 기록했다.

당시 남한 인구수에 밑도는 수많은 인민들이 어처구니없이 굶어 죽은 것이다.

사회주의 배급 도입으로 이론상으로는 굶어 죽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국은 현실적이지 못한 사회주의 망령에 부패와 소비를 통제하지 못해 결국 무고한 인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뼈아픈 교훈을 새기며 세계적 개방의 조류에 합류하기로 결정, 자본주의 경영방식을 과감히 도입하였다.

정통 사회주의를 고수하던 공산당의 체제 운영 방식도 ‘중국식 사회주로’ 이름을 바꾸어 사상적 해방과 체면유지에 성공한 것이다. 

▽막무가내 퍼주기 식 ‘문 케어’ 궤도 수정 않는 한 제동장치 풀린 폭주열차로 궤멸될 것
지금 문케어를 고수하는 우리 정부 입장이라면, 중국의 기아는 과거 정권부터 내려온 자연스런 대물림 현상으로 책임 회피와 갈피를 못 잡는 어설픈 변명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위기를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개방이라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바꾸어 한세대 만에 세계 2위의 대국으로 다시 변모시켰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부정적 의료 현상이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의료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선진국이 이미 경험하고 이들 국가의 의사들 역시 스스로 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경계 목’으로 명문화한 ‘의사 윤리’ 및 ‘의료 윤리’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강화할 때가 된 듯하다.

언뜻 실체가 없는 허풍쟁이 바이오산업의 추진과 본인부담과는 별개의 사안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맹탕 바이오산업이나 환자 유인용 미끼와도 같은 본인부담금의 면제는 그 이면에 사악한 뱀과 같은 짙은 상업성이 깔려 있다는 사실에서, 어찌 보면 사탕발림 식 독약과 동일하다. 

본인부담금 면제라는 할인 방식은 기업이 이윤을 좀 더 내보겠다는 일종의 고차원적이지 않은 상거래 수단의 전형적 모습이다.

이런 본인부담 면제 행위에 대해 의료 윤리적 측면에서 심각성을 부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가조차도 반영하지 않는 정부의 살인적 저수가 정책에 맞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대부분의 선량한 의료인들의 주장을 무색케 하는 천박한 상업성의 몰염치한 개입이기 때문이다.

저 수가에서 한층 더 파고 내려간 싸구려 의료수가로 제공되는 질 나쁜 의료가 본인부담 면제에 숨어 의료의 질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의사집단에 대한 사회적 평판을 한낱 장사치로 격하시킨다.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에 비윤리적 상행위 전면 금지 생명 존중 바탕 의료윤리 정립
상업적 의료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프랑스의 경우 의사직업윤리법(제57항)에 명시조항을 두어 환자 빼돌리기의 시도나 관련된 행위를 전면 금하고 있다.

여기에 동법 제67항에서 경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에서 진료비 할인으로 이어지는 모든 의료행위를 금지시키고 있다.

나아가 제74항에서는 모든 상업적 의료행위에 대해 포괄적으로 불허한다. 윤리규정이 직업윤리법으로 표현되는 프랑스에서 이런 의료행위는 의사의 품위를 손상하는 치졸한 상업적 행위로 터부시한다. 상인을 폄훼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의료의 속성은 상업의 출발점과는 다른 생명의 존중과 건강의 숭고한 가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달리 설명하자면, 프랑스의 상업적 의료에 대한 품격 있는 거부는 의사는 전문직인 동시에 지식인의 전통을 중시하는 반면, 의사가 의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형태든 상업적 요구에 충족하거나 부응하는 맞춤형 조달서비스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공적 보험, 민간보험, 영리병원 등 어떤 형태의 의료에서도 상업적 행위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의사의 개원 장소가 일반 상업 용도의 건물에 입주하는 것도 금하고 있고, 의료와 관련한 광고 역시도 의사 이름, 전화, 전문 과목, 진료시간, 보험관련 사항 등 꼭 알려야 할 내용으로만 국한시킨다. 

▽우리나라도 의료법-의료윤리에 ‘품위손상금지’ 포괄적 명시, “다만 잘 안 지켜질 뿐”
상업적 의료금지는 우리나라의 의료법과 의료윤리에도 이미 반영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식 표현인 일체의 ‘품위 손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의료기관은 비영리 기관이라는 우리나라 의료법 정신을 비춰볼 때 역설적이게도 상업적 의료가 횡행하여 질주해가는 현실은 우리 정부 주무 부처의 무기력과 무능의 행정력을 구조적 결함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이제 다시 한 번 선진국 형 자율 규제(self regulation)의 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강한 설득력으로 응집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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