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관에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중이지만, 보건당국과 의료계, 병원계 모두 반대의 뜻을 밝혔다. 특히 이는 ‘고려장’이라는 오해를 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지난 8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달 14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됐다.

성별, 연령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현황(단위: 명)*주: 2019년 2월 3일 기준*자료: 보건복지부
성별, 연령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현황(단위: 명)*주: 2019년 2월 3일 기준*자료: 보건복지부

인 의원은 “최근 이른바 ‘웰다잉’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며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특히 노인세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방법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의하고 이에 참여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자신의 연명의료중단 관련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자신이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으로, 19세 이상인 사람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 작성이 가능하다.

현행법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등록기관으로 지정이 가능한 기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ㆍ인력 등 요건을 갖춘’ ▲지역보건의료기관 ▲의료기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법인 또는 비영리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공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9년 8월 말 기준, 지역 보건의료기관 42개, 의료기관 66개, 비영리 법인▲단체 25개, 공공기관 2개 등, 총 135개 등록기관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인 의원은 “현행법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기관이 한정돼 있어 노인세대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개정안은 노인복지관도 시설ㆍ인력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노인세대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관련 상담 및 작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노인 복지증진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노인복지관은 노인의 교양ㆍ취미생활 및 사회참여활동 등에 대한 각종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과 소득보장ㆍ재가복지, 그 밖에 노인의 복지증진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로, 2018년 기준 전국에 385개소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정안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수용곤란’ 입장을 밝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원하는 고령층의 접근성 개선을 위해, 노인복지관이 등록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의 취지에 동의하나, 현재 대다수의 노인복지관은 지자체가 비영리법인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어, 현행 법률에 따라서 비영리법인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 가능하므로 법률 개정 실효성이 낮다는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도 “노인복지관은 노인의 사회활동 역할을 향상시키기 위한 복지서비스를 주요 업무로 수행하므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설명, 작성 지원, 정보제공, 홍보 등에 관한 등록기관의 역할과 적합하지 않다.”라고 지적하며, 개정안에 반대했다.

의사협회는 또, 개정안 취지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자칫 작성 등록률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어 이를 반드시 경계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 지자체 내 공공기관, 지역보건의료기관, 보건소, 의료기관 등을 관리해 노인세대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라고 제언했다.

대한병원협회 역시 “노인복지관의 등록기관 업무수행이 그 설립 취지나 활동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적합한지,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원활한 상담과 작성 지원 등 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병원협회는 “노인복지관의 운영목적 및 성격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지나치게 치우치거나 노인 복지업무의 상대적 저해를 야기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이 고려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의료법학회도 “노인복지관에서 작성을 받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로 생각된다.”면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의료법학회는 “현재 의향서가 작성되는 곳은 종합병원, 건강보험공단 등으로 연령에 제한이 없는 곳인데, 특별한 연령층인 노인을 위해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고려장이라는 오해를 살 가능성이 높으므로 죽음에 대한 문화가 잘 정립된 이후에 가능할 것이다.”라고 제언했다.

반면, 당사자단체인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지역 노인복지의 중심기관인 노인복지관으로 확대해 보다 많은 노인들이 자기결정권 존중과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또, 노인복지관 내 전문인력을 통해 보다 전문화된 상담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의 접근성을 제고해 연명의료ㆍ호스피스에 대한 노년층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취지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라고 판단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직접 등록기관을 방문해 등록기관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어야만 작성이 가능한데, 노년층은 질병이나 노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으므로 노년층의 방문 빈도가 높은 노인복지관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기관에 추가함으로써 노년층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접근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ㆍ등록 업무를 수행하려는 인력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주관하는 제도 관련 기본교육을 이수한다는 점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과 관련한 상담의 전문성 확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전문위원실은 “노인복지관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이 노인복지관의 본래 기능인 노인의 사회활동 역량 향상과 부합하지 않고,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관을 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참고로, 2019년 2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중 60대 이상이 전체의 84.6%를 차지하고 있는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 취지가 임종을 앞둔 자에 국한 되지 않고 성인(19세 이상) 모두의 죽음과 관련한 자기결정권 제고를 위한 것임을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 노년층을 주 대상으로 하는 노인복지관을 지정 대상에 추가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전문위원실은 “현재 대다수의 노인복지관은 지방자치단체가 비영리법인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인데, 현행법 상 비영리법인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 이미 포함돼 있어 개정의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노인복지관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 명시적으로 추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ㆍ군ㆍ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미설치 지역 분포*주: 2019년 7월 31일 기준*자료: 보건복지부
시ㆍ군ㆍ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미설치 지역 분포*주: 2019년 7월 31일 기준*자료: 보건복지부

전문위원실은 이어 “2019년 7월 말 기준 전체 229개 시ㆍ군ㆍ구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이 없는 시ㆍ군ㆍ구는 5개(2.2%)인데, 노년층을 포함한 전 연령층의 접근성 제고를 위해 등록기관이 없는 시ㆍ군ㆍ구에 등록기관을 지정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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