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의 심의ㆍ의결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이 추진중이지만, 보건당국은 건정심의 실질적 권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의약계 대표에게 심평원에 대한 자료요청 권한을 주는 방안도 추진 중이지만, 이 역시 보건당국은 과도한 자료요구로 인한 심평원의 업무 부담과 개인정보 보호 우려 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앞서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은 지난 5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최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이명수 의원 “건정심 구조 및 기능 개선해야”
건정심은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과 더불어 요양급여의 기준과 요양급여비용,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 등과 같은 주요한 건강보험 정책에 관한 심의ㆍ의결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구로서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명수 의원은 “하지만 한편으론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고 위원의 구성상 절차적 민주성이 담보되기 어렵다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건정심의 주요역할 중 하나인 수가와 보험료 결정은 위원 구성상의 문제로 체결 당사자의 의견이 무시된 채 정부의 의지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어 건정심 구조 및 기능에 대한 개선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및 개정안의 건강보험정책 결정 기구 비교
현행 및 개정안의 건강보험정책 결정 기구 비교

이에 대해 개정안은 건정심 역할을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주요 정책사항 등에 대한 심의 및 자문으로 축소하고, 기존에 건정심에서 수행하던 요양급여 기준과 약제ㆍ치료재료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심의는 전문성 강화를 위해 전문평가위원회에 위임하도록 했다.

또, 가입자위원ㆍ공급자위원 각 10명으로 이뤄진 ‘수가및보험료조정위원회’를 설치해 건정심 심의ㆍ의결 사항 중 ▲요양기관 유형별 환산지수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부과점수당 금액에 관한 심의ㆍ의결 권한을 해당 위원회로 이관하도록 했다.

아울러, 의약계 대표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환산지수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가 있는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건정심 권한 조정 및 별도의 건강보험정책 결정 기구 신설
건정심은 보건복지부장관 소속 위원회로 현행법 제4조 등에 따라 건강보험 정책 전반(요양급여의 기준ㆍ요양급여비용 및 보험료율 등)과 관련된 최종 의사결정(심의ㆍ의결)기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위원장 1명(보건복지부차관)을 포함해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 8명, 의료공급자를 대표하는 위원 8명, 소관 행정부처(보건복지부ㆍ기획재정부), 공공기관(국민건강보험공단ㆍ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및 전문가로 구성된 공익위원 8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된다.

건정심의 전신인 의료보험심의위원회(1994),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2000)의 경우 건강보험료 결정 권한을 갖지는 않았으나, 2002년 건강보험재정의 수입ㆍ지출 간 상호 연계성을 강화하고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정심이 건강보험료 및 요양급여비용(수가)에 관한 결정 권한을 모두 갖도록 개편됐다.

건정심은 건강보험의 수입ㆍ지출을 아우르는 정책 결정 전반에 관한 의사결정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고 정책 결정에 대한 대표성을 확보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가입자ㆍ공급자 간 이해관계 대립이 존재하는 사안에 있어서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요양급여의 적정 기준ㆍ가격 등을 심의하기 위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 및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부과점수당 금액(이하 보험료율), 환산지수 등에 대한 가입자ㆍ공급자 간 갈등이 위원회 내에서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의사결정이 이뤄짐에 따라, 건강보험정책 결정에 관한 대표성과 수용성을 높이고자 한 당초 건정심의 설치 목적이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의사결정에 불만을 제기하며 가입자ㆍ공급자위원이 표결 과정에서 퇴장하거나 건정심을 탈퇴하는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는 특히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가입자ㆍ공급자 간 의견 대립을 조정해야 할 공익위원이 주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심의 과정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하는 문제에 기인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의료행위ㆍ치료재료ㆍ약제에 대한 요양급여 여부 및 적정 기준과 가격(의료행위의 상대가치점수, 치료재료 및 약제의 상한금액)을 심의하는 데 있어서 건정심의 전문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요양급여 여부, 기준 및 항목별 가격을 심의하기 위해서는 각 의료행위ㆍ치료재료ㆍ약제의 적용 목적, 적용 방법, 효능ㆍ효과, 부작용, 안전성 및 적용 원가 등에 대한 의학적 지식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데, 해당 사안 외에 보험료율ㆍ환산지수 등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한 심의ㆍ의결 권한이 집중돼 있는 건정심의 특성상 개별 요양급여의 기준과 가격의 적정성을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법률상 근거는 없으나,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보건복지부령)’ 등에 따라 볼 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설치된 분야별 전문평가위원회(약제급여평가위원회 포함 총 7개)는 건정심의 심의ㆍ의결 전에 의료행위ㆍ치료재료ㆍ약제의 급여 기준 및 가격에 관한 사전 평가를 수행해 해당 내용을 건정심에 보고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의 안건이 전문평가위원회의 평가 결과대로 원안 의결(2017년 기준 9,883건 중 8,683건(87.9%))되고 있어 실질적으로 전문평가위원회가 요양급여 여부, 기준 및 항목별 가격에 관한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개정안은 건정심이 이해관계자 간 합의기구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행 권한 집중 구조에서 요양급여의 세부적인 사항에 관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해 보험료율 및 환산지수는 가입자ㆍ공급자 간 자율적 합의에 따라 수가및보험료조정위원회에서 정하도록 하고, 요양급여 기준ㆍ가격 등에 관한 사항은 전문평가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세부적인 위원회별 구성을 보면, ‘수가및보험료조정위원회’의 경우 보건복지부차관을 위원장으로 해 건정심의 가입자위원과 공급자위원이 추천하는 각 5명을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전문평가위원회’의 경우 별도의 구성 규정 없이 하위법령에 이를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

현행 및 개정안의 건강보험정책 결정 기구 비교
현행 및 개정안의 건강보험정책 결정 기구 비교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개정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개정안에 따를 경우 건정심의 역할이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등의 심의기능에 그치는 등 위원회의 성격 및 위상 등이 크게 저하돼 건정심의 실질적 권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건정심과 수가및보험료조정위원회, 전문평가위원회간 구조적 관계설정 등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도 “건정심의 권한을 축소하고 기능별로 별도의 의사결정기구를 설치해 건강보험정책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수용성ㆍ신뢰성을 높이고 심의의 전문성을 보완하려는 취지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나, 몇 가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먼저, 수가및보험료조정위원회의 구성에서 정부를 포함한 공익위원을 배제함으로써 위원회의 파행적 운영이 심화되고 결정 사항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보험료율 및 환산지수의 결정은 가입자의 비용부담과 공급자의 수입으로 직결돼 양측의 의견 대립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개정안의 위원회 구성에 따르면 이를 조정ㆍ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할 위원이 없어 의사결정이 지체되는 등 위원회가 파행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재정을 지원해 의료 분야의 사회안전망을 확충함과 동시에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담보해야 할 책임이 있는 주요 정책결정자임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에 따를 경우 보험료율 및 환산지수 결정에 정부가 배제됨에 따라 공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의 역할을 대변할 의사결정자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위원실은 “개정안에서 제기한 문제를 개선하면서도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정책 결정의 책임자로서 정부의 역할과 가입자ㆍ공급자위원 간 의견 대립의 조정ㆍ중재자로서 공익대표의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 외의 공익위원으로는 가입자ㆍ공급자가 신뢰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선임될 수 있도록 현행 공익위원 구성 방식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전문위원실은 “전문평가위원회의 위원 구성 및 의사결정 방식 등에 관한 규정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전문위원실은 “개정안에 따른 전문평가위원회는 의결기구로서 그 결정 사항이 행정기관을 구속하는 효과가 있으며, 전문평가위원회의 심의ㆍ의결 사항(요양급여 여부ㆍ기준ㆍ가격) 역시 건강보험 보장성과 건강보험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수가 및 보험료조정위원회의 결정 사항과 비교해 그 중요성을 달리 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률에 위원회의 구성ㆍ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위원의 자격, 구성, 임기 등)을 규정해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의약계 대표의 심평원에 대한 자료 제출 요청 근거 마련
현행법상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요양기관 유형별 의약계 대표자는 매년 의료행위의 환산지수에 관한 계약을 체결해 해당 연도의 요양급여비용 산정에 이를 반영하고 있다.

현행법 제45조제6항에 따르면, 공단 이사장은 환산지수 계약 체결을 위해 필요한 경우 심평원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으며, 심평원은 그 요청에 성실히 따르도록 규정돼 있는데, 동일한 환산지수 계약 당사자인 의약계대표에게는 심평원에 대한 자료 제출 요청권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개정안은 환산지수 협상의 당사자인 의약계 대표에게도 공단과 마찬가지로 심평원에 대한 자료 제출 요청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해당 조항 역시 복지부는 “의약계 대표에게 심평원에 대한 자료요청 권한이 주어질 경우 과도한 자료요구로 인한 심평원의 업무 부담과 개인정보 보호 우려 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부정적 검토의견을 내놨다.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도 해당 조항은 타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정부와 의약계 상호간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문위원실은 “의약계 대표가 심평원을 통해 환산지수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로 보인다.”라면서도, “현행법상 심평원은 보험자인 공단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기관으로서, 공단 이사장이 심평원에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 규정은 건강보험 사업을 별도의 두 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단지 심평원의 의무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인데, 환산지수 계약과 관련해 공단 이사장이 심평원에 대한 자료 요청 권한을 가짐을 이유로 의약계 대표의 심평원에 대한 자료 요청 권한을 명시해야 형평성에 부합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적정한 환산지수 계약 체결을 위해 법률에 따라 의약계 대표의 심평원에 대한 자료 제출 요청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환산지수 계약 당사자 간 동등한 정보 획득 기회를 부여하고자 하는 개정안의 기본적인 입법취지를 고려해 공단과 의약계 대표 상호 간에 자료 제출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전문위원실은 예를 들어, 공단 및 심평원이 보유하고 있는 건강보험재정에 관한 자료, 요양기관의 요양급여비용 청구 및 시설ㆍ장비ㆍ인력 신고자료 등에 대한 의약계 대표의 요청 권한에 상응해 공단 이사장이 의약계 대표의 소속 단체 또는 해당 단체에 소속돼 있는 요양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별 수입, 지출(비급여 수입ㆍ지출 포함), 진료량(비급여 진료 포함) 및 인건비ㆍ재료비ㆍ관리비 등 비용에 관한 통계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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