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와 산하 시도의사회 및 각과의사회, 일부 학회도 보험업법 개정안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서울 노원구갑)은 지난해 9월 21일, 같은 당 전재수 의원(부산 북구ㆍ강서구갑)은 올해 1월 28일 각각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고용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보험가입자와 보험회사가 의료기관에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고, 의료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실손 가입자의 요청에 따라야 한다.

또, 해당 서류의 전송업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재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보험회사로 하여금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ㆍ운영하도록 하거나 이를 전문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했고, 보험회사ㆍ보험가입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진의원안은 서류전송 업무의 위탁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명시한 반면, 전재수의원안은 실손의료보험계약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ㆍ운영 할 수 있고, 이를 전문중계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란이 확대된 발단은 최근 정부가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간소화 법안에 찬성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지난 10월 24일 국회 고용진 의원은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중계기관으로 하는 실손의료보험 청구간소화법안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입장이 기존 신중검토에서 동의 입장으로 변경됐다.

이에 대해 고 의원은 “개인정보보호, 시스템구축비용 등을 고려한 결과, 심평원이 최적의 중계기관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금융위원회는 중계기관을 심평원에 위탁하는 경우, 의료계가 심평원의 정보집적 및 향후 비급여 의료비용 심사 등을 우려하고 있는 만큼, 서류전송 업무 외에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열람 및 집적할 수 없도록 법률에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혀 수정안 통과가 예측된다.”라고 밝혔다.

먼저 포문을 연 곳은 대한의사협회다. 의사협회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보험업계는 실손보험으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소비자가 더 쉽게 보험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라고 지적했다.

의사협회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청구 간소화가 되면 의료기관으로부터 보험사가 원하는 환자의 건강과 질병 정보를 마음껏 신속하게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면서, “이 과정에서 보험사는 충분한 환자 정보를 확보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새로운 보험 가입과 기존 계약 갱신을 거부하거나 진료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의사협회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국민의 편의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실손보험 적자로 흔들리는 보험업계를 위한 특혜다. 동시에 보험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의료기관에게 부당하게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물론, 의료기관이 지켜야 할 환자의 정보를 아무런 통제 없이 보험사가 요구하는대로 제출하게 하는 악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도의사회와 각과의사회도 경쟁적으로 성명을 내며 동참했다.

전라남도의사회는 11월 4일 심평원이 빅데이터를 보험회사에 제공할 경우 환자의 개인정보가 무더기로 유출돼 재앙을 불어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사회도 5일 “법안개정의 모든 이익은 보험사에게만 돌아간 채 국민과 의료기관에는 피해만 존재한다.”라며, “국민의 개인 의료정보 유출 가능성이 높은 법안을 즉시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대전시의사회도 6일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보험금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보험 청구인은 그 책임을 의료기관에 전가하게 되고,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을 조장하게 될 것이라며 폐기를 촉구했다.

대한외과의사회는 5일 “보험사는 지급률을 높이기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급을 거부하기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라며,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와 의료기관 간의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결국 보험회사의 이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외과의사회는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의료기관과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길게는 모두가 손해를 볼 수 있다.”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는 5일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는 계약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에 부당한 의무를 지우게 하는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민감한 환자 정보를 별 다른 여과없이 사기업에 전달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여러 부작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지금까지의 행태를 고려하면, 보험회사는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가입거절이나 지급거절의 근거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기관은 진료의 자율성이 침해받을 것이고, 결국 국민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며, 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학회의 반대 입장 표명도 이어졌다.

대한도수의학회는 11월 3일 성명을 내고, 보험금 청구시 필요한 영수증ㆍ진료비 내역서 등을 병원이 중계기관을 거쳐 직접 보험회사로 전송하는 것은 민감한 개인 진료정보를 민간보험회사에 넘기려는 실손보험사 특혜법이라며 법안 폐기를 주장했다.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도 5일 “보험업법 개정안은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통해 국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문재인 케어 정책의 기본에 반대되는 법안이다.”라며, “보험업법 개정안은 사보험을 정부가 인정하고 강화하며 문재인케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안으로 폐기돼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대한가정의학회는 6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빙자한 소비자 보험금 지급거부 법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가정의학회는 “최근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증가해 보험사의 경영난이 더욱 심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보험금을 더 주기 위한 것이라는 입법취지를 믿으라는 것인가?”라고 묻고, “소비자를 위해 청구간소화를 진행하려면, 정부가 지적한 서류 간소화부터 먼저 시행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대한최소침습척추학회는 6일 “보험업법 개정안은 의료 시장의 공공성 강화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사보험시장을 정부가 인정하고 오히려 강화하는 이중적인 법안이다.”라며, “보장성을 강화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향이 아니라 사실상 이를 역행해 건강권 보장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법안이다.”라며 법안폐기를 촉구했다.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도 6일 “보험업법 개정안은 환자의 편의를 언급하지만, 실손보험사의 수익 보전과 편의가 주목적이다. 진료기록과 관련 의료진의 노력과 병의원의 새로운 행정적인 소모를 무시하고 의무기록 복사료와 같은 전송비용을 책정한 것은 그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비뇨의학과의사회는 “보험회사는 환자의 보험가입 전ㆍ후 모든 진료기록을 열람한 후 여러 가지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보류할 것이다. 진료기록 전송업무의 위탁운용이 법제돼 공적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전용이 합법화되는 길을 열어 놓게 된다.”라며 법안 폐기를 주장했다.

한편, 최대집 회장을 비롯한 의사협회 집행부는 지난 5일 고용진 의원 지역사무소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업법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고용진 의원의 법안은 국민을 위한 청구간소화법이 아니라 재벌 손보사를 위한 실손보험 폭리법, 실손보험 지급 거절법이다.”라며, “국민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지 않고 일부 재벌 손배사들의 부당한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한 고용진 의원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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