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적 의료사고 인신 구속하는 신 공안시대
선진국은 의사에게 정당한 진료거부권 보장

최근 우리나라에서 의사에 대한 형사구속 사건이 남발되는 양상이다.

이미 시기적으로 몇 년이 경과한 사건이거나, 의료의 특성상 최선을 다해 진료를 했더라도 치료결과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장애가 발생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이른바 ‘불가항력적 의료사안’의 경우 소위 ‘묻지 마 형사 처벌’로 몰아가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상식을 넘어선 과도한 구속의 예는 과거 독재시절 정치적 발언 하나만으로 ‘반정부’ 또는 ‘반체제’라는 이름으로 인신구속을 하고 심지어 소리 소문 없이 각종 고문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잘 알려져 있다.

군사독재 정부 시절 ‘육법회’라는 조직으로 육사졸업생과 사법영역이 한 조직으로 국가발전이라는 명분하에 정권의 목표와 존속에 저항하는 선량한 다수의 국민을 탄압하는 앞잡이로 악용한 바 있다.

이처럼 맹견과도 같은 형사적 처벌의 전통은 어찌 보면 일제 강점기 이후 체제에 대한 저항을 금기시하고 탄압하였던 독재의 전통을 그대로 전수한 듯이 보인다. 전문직은 권력과 밀착되어 보이는 전통적인 보수적 모습이기도 하다.

왜곡된 의료의 뿌리 일제 시절 극소수 의사 특권층 오인 큰 원인

조국 근대화가 과학문명, 그리고 산업위주의 근대화였다면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한 근대화는 매우 느리게 진보했다.

민주화 보다는 배고픈 민생이 항상 우선이었다. 민생을 위해서는 인권의 정지나 유보도 얼마든지 그 희생을 당연시했던 암울했던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측면은 의학과 의료계도 예외는 아닌듯하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이후의 우리나라 의학에서 가장 높은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일본이 깔아 놓은 의료의 바탕 위에 아주 소수의 교육받은 의사가 받은 혜택은 지금의 의사와는 비교가 불가능해 보인다.

일반인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상황은 마치 복권 당첨의 효과와도 같았을 것으로 보이고, 그러한 사회 분위기는 극소수 의사를 ‘특수계층’이 아닌 ‘특권층’으로 각인하도록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제, 군정, 군사독재, 그리고 광주사태와 같은 군사독재의 정점의 뒤에 비로소 쟁취한 민주화 이후 투쟁전문가 집단에 의한 시민 없는 시민 사회는 탈 권력화 사회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탈 권력화의 방법론은 역시 독재정권에서 혹독하게 배운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권력의 승계는 가능했어도 근본적인 정치와 사회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비록 민주화 인사들에 의한 정권 장악에도 평화롭고 민주적인 권력구조의 구축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환자돌보는 의료인의 손에 수갑부터 채운다면 과거 공안정권과 다를 바 없어

일제부터 속칭 말 안 듣는 조선인에 대한 처벌은 쉽사리 감옥에 가두고 정당한 인간의 기본권리가 부정된 채 사회질서를 이유로 탈법 불법이 자행됐고, 형사적 처벌의 무늬를 띤 법테두리를 벗어난 무지막지한 린치를 도구로 하는 익숙한 사회를 만들었다.

유신시절 독재의 정점 시기는 공안(公安)검사의 등장과 국민을 위협하는 공안정권으로 회자됐다.

이 뒤에는 안보논리를 내세운 군사독재의 하수인 역할을 한 검찰과 사법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초고속 성장으로 질주한 의료 분야 역시 국민의 건강을 위한 의료서비스 요구를 충족시키기 바빴고, 수지타산이 맞을 리 없는 신기술 도입에도 불철주야 경쟁 일변도로 달려왔다.

전 국민 강제 의료보험 도입에도 정치권력이 닿지 않았던 의료계는 그저 바라 볼 수밖에는 없었고 강제적인 의료보험 덕에 많은 국민들이 의료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의료계에 대규모 자본의 진입과 의료기관의 대형화를 경험하며 신기술이 미치는 영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한 경쟁 속에 세계에서 가장 다빈치를 많이 사용하고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왓슨 진단기기를 가장 많은 구매한 것을 내세우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의료과실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 없이 분쟁건수 급증 시 ‘전문 직업성’ 크게 위협

의료과실에 대한 적절한 대책 없이 급속히 증가한 현대적 최신식 의료의 발전은 의료분쟁의 엄청난 증가로 이어지면서 의료계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민주화 투사들이 장악한 정권에서 약자로 간주되는 환자의 피해와 권익을 위해 전문 직업성의 정착도 되기 전에 우리나라의 의료는 검찰과 법원에 의한 규범적인 강요된 완벽한 전문 직업성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결과가 나쁜 의료에 대한 단속은 의료에 대한 면밀한 과정이나 원인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과 판단보다는 나쁘다는 결과 자체가 규범에 벗어나는 일로 의사가 마치 원인제공자처럼 여겨졌고, 열정적인 검사에 의하여 높은 배상액을 뽑아내기 위해 의사의 인신구속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계는 이제 민주화 쟁취 이후에 신 공안시대를 맞고 있는 느낌이다. 

의학과 법학,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고등교육에서 일본이 물려준 구조적 폭력이 물들어 있다.

지금은 비록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의 폐쇄적이고 지독한 수직적 위계질서에 의한 의국제도나 서슬 퍼런 조폭 같은 검찰제도 역시 사무라이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러한 검찰의 모습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군, 검찰, 정보부 등에 대한 인권침해의 누적은 결국 현 정권이 과거 독재시절에 경험했던 권력의 반민주적인 모습에 대한 변화의 시도를 검찰개혁이라는 명제로 사회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 풍조와 맞물려 검사나 법조인이 되기 위한 보다 더 근본적인 법학 교육의 전통은 어떨까 자못 궁금하다. 

선진국, 선한 의도 의료행위 형사적 처벌 대상 삼지 않는 것이 당연 

갈수록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 의료계도 이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진 세계의 흐름에 하나하나 눈을 떠가는 느낌이다.

선진국에서는 진료 활동으로 인해 그 결과가 나빠 장애가 발생하거나 사망을 초래했다고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절대로 형사법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불법마약처방을 했거나 서양에서 보여주는 정신 병리적인 의사에 의한 고의적 살인 아니면 의료 활동에 대한 결과로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전문가집단이 사회와 공동으로 전문가적인 판단에 의한 징계를 결정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징계란 곧 면허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다.

형사처벌의 근본은 악한 의도와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선한 의도로 하는 진료나 의료가 형사처벌과는 처음부터 맞지 않다고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선진국과 같이 의료 활동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면 이미 선진국과 같이 진료거부권의 요구에 대해 ‘의사면허는 곧 살인면허’라는 누명을 씌우는 매우 원초적인 이야기를 듣게 될 공산이 매우 커 보인다.

일부는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은 의료분쟁으로 인한 배상이 너무 미약해서 생긴 것이라는 견해를 보인다.

그러나 의료활동에 의한 부정적 결과를 놓고 부족한 배상액의 문제로 의사를 인신 구속시키는 사례는 인간의 권리를 지켜야할 사법부가 스스로 의사를 인질로 잡고 줄다리기를 펴는 공안 정권의 방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과도한 형사법 적용 시 건강한 사회 발전에 역행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져

법학전공자들도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과도한 형사법의 적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견해를 보인다.

즉 현재의 사법부 역할이 사회에 대하여 지나친 관여를 형사법을 통해 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것은 정치권이나 전문가 집단 그리고 기업을 하는 모두에게 발전적 장애의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선진국 면허기관에서는 지나친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의료의 전문 직업성을 떨어뜨리고 전문직의 사회에 대한 충실한 봉사를 방해한다고 본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현실이 됐다.

이제 낮은 수가에 대한 의료 활동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액과 형사처벌의 위협 속에서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은 의사들에게 매우 위험한 흉기와도 같은 안전하지 못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현 정권에도 과거의 정권보다 좋아진 것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속칭 민주화를 위한 투쟁전문가 출신이긴 하나 진작 민주화에 의한 현대적인 나라의 운영에는 경험이 아주 일천해 보인다.

더구나 전문직에 대한 나라의 적절한 관여의 수준도 전혀 가늠해 볼 방도가 없어 보이는 집단으로 보인다.

결국 자신들이 증오하던 독재정권 시대의 방법인 공안을 이용한 약자에 대한 보호가 마치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 속에 빠져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 우리의 의료계는 저수가, 질적 저하, 이유 불문의 고액 의료분쟁 배상 그리고 형사처벌이라는 무시무시한 의료 환경 속에서 의료기술은 세계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다.

의료기술은 강국이나 이것마저도 역설적으로 적절한 의료규제가 없었기에 생겨난 부차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진정한 의료강국이 보여주는 의료문화는 매우 야만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언젠가 의사집단을 보고 ‘헛똑똑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사 구속 등 형사적 린치 이전에 합리적 배상제도 논의부터 이끌어내야

의료에 대한 의사의 형사처벌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배상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고, 아직 우리나라에 설립되어 있지 않는 현대적 의사면허기구의 설립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 한 번 강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법조계, 시민사회, 언론 등과도 의료에 대한 의사의 형사처벌이 시대착오적이며 민주화된 국가에서 나타나지 않는 현대의 공안현상임을 알려야 한다.

의료계는 조국 근대화, 현대화 그리고 우리와 맞지 않는 것에 대한 반근대화의 삼중고에 탈 근대화까지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검찰에 의한 과도한 의료간섭은 다른 나라에도 알려야 하고 세계의사회, 세계보건기구, 각종 국제적 인권위원회에서도 논의돼야 한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 정도를 민주주주의 방식을 채택한 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거대담론의 성취로 정지 상태에 있는 현실에서 이제는 보다 더 세밀한 민주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의료계가 앞장서야 할 국가적 현안처럼 보인다.

정당한 진료거부권 제도를 살인면허라고 거침없이 부르는 시민단체 지도자에게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선진국의 의사면허는 무엇이라고 부를지 자못 궁금하다. 이들에게 의사면허는 007 살인면허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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