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진정 분만실에서 의사들을 몰아내려 하나?”

의료계가 사산아의 유도 분만을 준비하던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산부인과 의사가 법정에서 구속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올해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경상북도 안동의 산부인과의원에서 사산아의 유도분만 중 태반조기박리에 의한 과다출혈로 사노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A 의사에게 금고 8월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또,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의사단체들은 불행한 사고로 운명한 산모와 유족에게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한 위로를 전하면서도, 불가항력적 사고를 이유로 의사를 구속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은 15일 성명을 내고 “전국적으로 분만을 담당하는 병의원이 감소하는 현실에도 지방 중소도시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분만실을 운영하며 24시간 산모를 돌보던 산부인과 의사가 하루 아침에 범죄자가 됐다.”라고 지적했다.

전의총은 “태반은 임신 동안 자궁 내에서 태아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산모로부터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며 정상적인 분만에서는 태아의 분만이 완료된 후 태반이 분리된다.”라며, “태반조기박리는 태아가 분만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반이 자궁의 부착 부위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을 말하며, 출혈로 인해 산모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의총은 “이번 사건에서의 태반조기박리는 형태가 ‘은폐형’으로 출혈 부위를 조기에 발견하기 어려운 형태라는 것이 부검 결과 밝혀졌으며, 어느 산부인과 의사라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 확언하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전의총은 “최근 10년간 절반 이상의 분만의료기관이 폐업했고, 전국 60여 시ㆍ군ㆍ구에서 분만의료기관이 없어 산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의사를 구속하면 어느 누가 분만실을 지키겠나?”라고 호소했다.

전의총은 “모든 의사들은 환자의 치료 결과가 좋을 때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치료 결과가 좋지 않거나 불가항력적이고 불행한 결과가 초래됐을 때 슬픔과 절망을 느낀다.”라며,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들에게 그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민사에 의한 처벌뿐만 아니라 형사 처벌까지 가한다면 어느 의사가 진료 현장을 지킬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전의총은 “이번 판결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절망스런 심정에 깊이 공감한다.”라며, “행동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투쟁에 뜻을 함께하며 동참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서 의사협회는 9일 성명을 내고, “태반조기박리에 따른 징후와 증상은 다양할 뿐만 아니라, 해당 산모 환자의 경우 부검감정서 및 법정진술을 통해 은폐형 태반조기박리로 판단돼 이에 의한 과다출혈은 예견이나 진단 자체가 매우 힘든 사안이다.”라며, “이러한 의학적 판단에 기인해 1심 재판부에서 인정했듯이 산모 환자가 내원할 당시에 이미 태반조기박리가 발생했다거나 그 증상이 발현돼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의사협회는 “해당 의사를 판결 확정 전에 법정 구속한 2심 판결은 형사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의료사고를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취급함으로써 선한 의도로 이뤄지는 의료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의료현실을 망각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의사협회는 “의사들은 더 이상 전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생사의 분초를 다투는 분만 현장, 외과 수술현장을 기피하게 될 수 밖에 없다.”라며, 의료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전환과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했다.

아울러 의사협회는 “의료분쟁으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해결을 촉진하고 안정적 진료환경을 보장함으로써 국민보건환경과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의료분쟁특례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경상남도의사회도 9일 성명을 내고, “부검 결과에서 보듯 이 사건은 태반조기박리 중에서도 일명 ‘은폐형’으로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려운 의료진의 고의나 실수가 아닌 불가항력적인 경우이다.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고 과실 치사 부분에 대해 무죄라는 합리적인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의사를 법정 구속해 의료계를 허탈과 상실감에 빠트렸다.”라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불가항력적인 사고로도 한순간에 범죄자가 돼 법정 구속됐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상실감과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움에 휩싸였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다면 대한민국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을 포기해야 한다.”라며,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바로 잡아달라고 촉구했다.

전라남도의사회(회장 이필수)는 지난 12일 성명을 내고,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산모 및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하는 한편, 안타까운 현실을 설명하며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의사회는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산부인과 진료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출산을 장려해야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산부인과 의사들의 책임과 부담을 나눠져야 할 필요성을 나타내준다.”라며, “정부는 대한민국 산모들이 안심하고 출산을 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산부인과 의사들이 안심하고 진료 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도 12일 성명을 내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분만인프라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의료현장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두려움과 절망감 속에 의료현장을 떠나게 만든 재판부의 선고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모든 의사는 선한 의도로 진료행위에 임하며 환자에게 나쁜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으로 잘못된 결과가 생길 수 있으며 이러한 결과에 환자 및 가족들과 함께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의료진이다.”라며, “의학의 불완전성을 고려하지 않고 왜곡된 의료환경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한 의사에게 민사상 책임뿐만 아니라 형사상 책임까지 지우는 사법부의 판단은 매우 잘못됐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비뇨의학과의사회도 성명을 내고, “예견과 진단이 힘들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은폐형 태반조기박리에 의한 과다출혈이라는 의학적 사안을 막지 못했다는 이류로 법정구속을 한다면, 앞으로 산부인과 의사는 구속을 피하고, 전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분만을 중지해야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1년 365일, 24시간 분만실이 유지 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의료환경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다.”라며, “대법원에서 이런 잘못된 판결을 자행한다면, 그 모든 사회적 책임은 모두 법원과 국가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