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의사면허 관리는 중동, 동남아시아보다 못하다.”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지난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합리적인 의사면허제도 개선을 위한 제2차 토론회’에서 나온 목소리다.

이날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국민건강 수호’를 위해 의사면허관리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보건당국은 전문가단체의 자율권한 강화 방향성엔 공감하면서도, 독립적인 관리기구 주장에는 말을 아꼈다.

발제에 나선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사체유기, 영업사원 대리수술, 성추행 등 비윤리적 사건이 발생하면 사회는 의사협회, 의사들을 비난하고 비윤리적 적폐 대상 집단으로 간주한다.”라며, “그러나 정작 의사들은 그들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만, 법으로만 처리하다 보니 법망을 피해가면 그 의사들을 막을 길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시대착오적 의사면허 관리, 효율적 자율규제 장치 부재, 국가적 차원의 전문직 관리 발달 미진 등을 지적하며, “의료기술은 최고 선진국을 자부하지만, 면허관리는 후진국가에 머물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안 소장은 면허기구가 있어 자율규제가 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 의사 자율규제 기제로 사회적 신뢰를 획득하고 불필요한 재판의 사회적 낭비와 불만을 방지하며, 사무장병원도 존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제에 나선 임기영 아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현재 의사협회 중앙회에서 운영 중인 중앙윤리위원회의 역할의 한계와 업무진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전문가평가제 운영에 관한 문제점과 함께 궁극적 해결방안으로 독립적인 면허관리기구 필요성을 제시했다.

임 교수는 “1년에 수 천건 이상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불평(complaints)’과 ‘보고(reports)’를 모두 처리하기 위해서는 전문 면허관리기구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면허관리기구의 중재가 있다면 이들 중 대부분은 쉽게, 원만하게 해결될 사안인데, 면허관리기구가 없는 상태에서는 이들 중 대부분이 의사 및 의료기관과의 직접 충돌, 보건소, 보건복지부, 소비자보호원, 언론, 경찰, 소송 등으로 이어져 엄청난 비용 지출과 유무형의 손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현재 유일하게 면허관리 기능과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는 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이하 중윤위)의 경우, 전체 불평 및 보고의 2~3% 정도에 불과한 징계 처리만으로도 업무가 과중한 상태다.”라며, “윤리위원회 규정이나 조직 등에 여러 문제가 있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업무처리가 안 되고 있다. 또, 새로 생기는 전문가평가제와의 관계도 분명하지 않으며, 향후 이로 인한 혼란과 갈등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윤위는 매월 1회 회의에서 15~20건의 사건을 진행하는데, 최고 징계가 회원 자격정지 3년에 불과해 실질적인 징계가 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이는 중윤위의 권위가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하며, 국민 눈높이도 맞추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또,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하는 경우 피드백이 거의 없으며, 민ㆍ형사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중윤위가 개입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 문제가 있다.”라며, “징계 대상자가 반발하거나 비협조적일 때 징계 절차를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고, 의학회나 각 전문학회 윤리위원회, 전문가평가제와의 관계가 확실히 정리돼 있지 않다.”라고 전했다.

대한의사협회 자율규제를 위한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 역시 시ㆍ도의사회와의 독립성 문제, 윤리위원회와의 관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와 새로 출범한 전문가평가제 모두 뚜렷한 한계가 있다.”라며, 독립면허기구 설립이 궁극적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발제자인 박형욱 대한의학회 법제이사는 영미권과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므로 이에 맞는 징계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이사는 “영미의 의사 면허관리기구는 법의 위임 하에 구성된 독립적 위원회가 담당한다. 그러나 행정처분의 권한이 부처에 있는 우리 법체계에서 영미의 독립된 의사 면허관리기구를 도입하는 것은 체계정합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라고 전했다.

따라서 변호사 징계의 계층적 구조처럼 보건복지부가 행정처분의 최종적 권한을 유지하되, 법의 위임하에 의사협회 또는 독립적 기구의 자율징계 절차와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박 이사는 또,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의료행위 등의 판단에 있어 자율징계의 역량을 길러 나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현명하며 바람직하다.”라며, “다만, 의료기관 업무정지, 건강보험법의 징계 등 변호사에 비해 지나치게 중층적인 징계를 단순화하는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면허관리 구성은 변호사 징계위원회보다 다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조사위원회와 같은 기구가 필수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의료계 패널토론자도 의사면허관리기구 도입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해영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관 주도의 제재가 아닌, 전문직에 대한 자율규제권 부여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라며, “세계보건기구는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질적 향상과 관리를 위한 지침서’를 통해 모든 회원국이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평가인증제도와 환자안전을 위한 의료인력관리제도를 2020년까지 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전문가단체의 회원에 대한 자율규제는 전문가 영역의 특수성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국민건강 수호’라는 사회에 대한 ‘궁극의 선 실현’에 기여한다.”라며,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 확대 실시를 통해 전문가단체로서의 자율규제 실천 토대를 마련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산하단체 및 회원의 자율적 참여로 전문가단체 자율규제를 통한 의학전문 직업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정부는 전문직의 자발적인 참여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적극적인 조력자 역할 수행으로 전문가 영역의 부적절한 규제로 인한 각종 모순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고, 제어 가능한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부족한 진료역량 회복과 임상진료 부적격자를 걸러내기 위한 ‘의사면허 등록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명진 한국의약평론가회 총무이사는 “면허관리기구의 설립과 관리 영역, 역할 정립에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종 법안 개정방법과 의사 면허와 전문성에 관련된 사안을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별도의 ‘의사법’ 제정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 이사는 그 도입 단계로 의료인력의 정확한 파악과 필수 역량관리를 위해 외국사례를 착안해 ‘의사면허 등록법’ 등을 제안했다.

그는 “의대 실습기간 중 의학지식을 임상진료에 적용하는 것을 보고 술기를 배우고 있지만, 의대 재학 중에 배우고 익힌 진료역량으로는 실제 진료현장에서 독자적으로 환자를 진료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라며, “의사면허만 있으면 별다른 연수과정 없이 바로 독자적인 임상진료를 할 수 있는 현재의 불안한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환자를 직접 진료하기 적절하지 않은 범죄행위를 한 사람이나 신체적 결함, 인지장애 등을 가진 사람을 걸러낼 과정과 의료인력의 글로벌화에 대한 대비, 환자안전을 위한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면허관리가 필요하다면서, ‘의사면허 등록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변호사법처럼 의료인 징계인절차를 이원화하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현행 제도 틀 내에서 자율징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두륜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의료인의 경우 2010~2015년 면허처분 사례가 연 평균 404건이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라며, “의료인의 의무규정은 매우 많아 행정처분 사유도 매우 많다. 이러한 규정은 복잡한 법리 판정을 요구해 소송도 많고, 판례도 수시로 변경된다.”라고 밝혔다.

현 변호사는 “징계절차를 의료인단체에 주거나, 이원화한다면 징계를 위해 법 위반 사실을 인지하고, 제보를 받고 징계위를 구성해 의뢰, 집행하고 이의신청시 대응까지해야 한다. 상당히 많은 인력과 부서가 필요하다.”라며, “의료인단체가 이러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이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현행 제도 틀 내에서 자율징계권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의료법의 자격정지 처분사유 중 품위손상 행위에 대한 의료인단체의 징계요구권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의료인단체의 요구에 대해 복지부가 반드시 응할 의무도 없고 처리결과를 알려주는 절차도 없다. 이 부분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의료인단체가 품위손상으로 판단해 자격정지를 요구했다면 복지부는 사유 및 결과를 통보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보건당국은 전문가단체의 자율 권한 강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의료계의 독립적인 면허관리기구 신설 주장에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손호준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최근 정신과 의사, 약사 사례 등과 관련해 의료계, 언론, 국민으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고 있다. 윤리적 문제에 대한 국민 감수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라며, “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일반적 감정과 법으로 규율하는 법 감정은 다르고, 전문가 판단은 또 다른것 같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잘 조율해 제도화할지 고민중이다.”라고 밝혔다.

손 과장은 또, “법으로 모든걸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효율적이지도 않고, 환자안전과 의사의 전문성 영역에 있어서 법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결국은 법 이외에, 법 전후에 전문가들의 자율적인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는 방향은 맞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의사면허 독립적인 면허관리기구에 대해서는 말은 못하지만, 현재 있는 징계권을 강화하거나, 국민 신뢰를 얻으며 어떻게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을 하는 등 성공사례를 만들어 내는지가 순차적으로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법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변호사, 회계사처럼 징계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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