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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은 (윤리적 판단이 가능한) 인간이 아니다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
헬스포커스 / 헬스포커스뉴스 | 승인2019.06.17 6:8

의료윤리를 등한시하면 사무장병원 등 악화가 양화 구축
선진국, 천박한 영리 추구 봉쇄 순수 목적 제한 허용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영어 단어 ‘corporation’을 우리말로 하면 ‘법인(法人)’이다. 사람은 아닌데, 법적으로 사람의 위치에 준하는 법적존재와 지위를 부여받는다.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나 법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해당 부처에 신청을 하여 허가 절차를 밟아야 비로소 법적 지위가 생긴다.

법인은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재단법인과 병원과 같은 특수법인 등 다양한 형태로 탄생할 수 있다.

법인은 사람들이 모여 단체를 구성했다는 의미인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 시대에 이미 ‘길드’의 형태로 태동해 발달하기 시작했다.

즉,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권익은 물론 사회적 이미지와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산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질(質)을 보장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다.

▽전문가단체 자율 규제는 중세시대 ‘길드’에 뿌리
10~15세기경 유럽에서는 인구 2만여 명이 넘는 규모의 도시들이 형성되면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됐다.

도시의 발전은 종래 힘이 있던 강자인 군인, 교회지도자, 귀족 이외에 의사, 회계사, 상인, 제조업 등 지식이 필요한 다양한 전문직을 필요로 하게 됐다.

프랑스에는 공공의 법률로 100개가 넘는 전문직 단체를 구성하도록 했고, 전문직은 스스로 알아서 집단의 일을 해결하도록 ‘자율권’이 부여됐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현상에 프랑스는 ‘협회의 사회’로 불리 울 만큼 많은 단체가 사회 속에 존재했다고 한다.

당시 교육환경을 감안한다면 복잡하고 오랜 기간 공부가 필요한 특별한 직업에 대해서는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자율적인 규제를 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은 다른 유럽국가도 비슷하게 발전하면서 영국과 이태리 등에도 다양한 길드가 존재했다고 한다.

‘의사길드’는 자체적인 단체의 규정으로 의사가 되기 위한 교육에 관한 규정과 회원의 의무에 대한 규정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회원의 자격과 교육, 그리고 의무 사항으로 자신의 이득에 앞서 환자에게 제공되는 수준 높은 의료를 우선으로 했고 공중보건 활동 그리고 극빈자에 대한 의료봉사와 교회에 대한 헌신 등이 규정으로 구비돼 있었다고 한다.

이런 길드내의 자체 내규는 후에 점차 의료윤리로 발전하게 된다.

길드조직은 후에 자신들의 독점적 권리와 기관 자체의 이득이 우선한다는 비난과 함께 혁명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길드와 함께 새로운 직능을 갖는 조직이 등장하게 되는데 16세기 초반에 영국의 헨리 8세 재위 기간 교회가 갖고 있던 의사에 대한 규제권리를 의사집단인 ‘College of London’에 이양하게 됐고, 이 단체는 훗날 영국 의학협회(General Medical Council)로 발전해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귀감이 되는 ‘의사 자율규제 단체’로써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의사의 교육과 면허 그리고 의학교육기관의 평가인증에 대한 최고의 역량을 선보이고 있다.

▽개별, 소규모 의사윤리가 모여 전문가 단체 프로페셔널리즘으로 형성 발달
최근 우리나라는 문케어 이후 급속한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이 발생하며 애초에 우려됐던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강화 정책이 결국 부실한 의료전달체계를 초토화시키는 참극을 목도하며 살고 있다.

이런 현상을 세심히 들여다보면, 이 문제 역시 의료윤리의 발달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인지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와 같이 이미 그리스시대 의학윤리의 태동기를 거쳐 발전해 온 서양의학은 의료윤리의 발달이 의사 개인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길드라는 조직을 통해 단체적 규약의 성격을 갖게 됐다는 것과 시대가 변하며 의료도 의사의 단독 개원에서 대규모 자본과 단체에 의한 종합병원의 형태를 취하게 됐기에 의료윤리도 개인과 의사단체가 갖추어야 하는 ‘집단윤리’로 발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달리 설명하자면, 길드의 발달에서 보여주는 의료윤리의 발달과 의사들이 모여 단체를 구성했을 때 보여주는 단체의 의무와 윤리 등이 집단적 규약의 형태로 성장하고 발전해 형성된 이른바 의료 분야에 대한 전문가의 단체적 프로페셔널리즘의 발달을 동반하게 됐다.

의료윤리에서 법인에 관한 중요한 논점은 법인의 의료 활동에 대한 금지 조항이다. 이것이 명확히 남아 있는 나라가 놀랍게도 미국의 의료법이다.

미국에서는 속칭 ‘CPOM 금지법’이 51개 주중 37개 주에 명시되어 있다. CPOM은 Corporate Practice of Medicine으로 일명 ‘법인의료’로 잠정 번역할 수 있는데, 달리 표현하면 ‘상업적 의료’에 대한 금지조항이다.

세계 유일의 오리지널 자본주의 국가로 불리는 미국에서 조차 상업의료를 지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법인의료를 법으로 금지한다니 언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세계사의 굵은 줄기에서 지대한 역할과 영향력을 과시해 온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들 세 나라의 지나온 과정은 서로 뒤엉겨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유럽대륙과 영국 섬나라에서 받은 문화의 흔적 중에 하나가 바로 법인의료 금지인데, 그 원류는 ‘의철학’의 발달이 대단했던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독립운동가 벤자민 프랭클린이 프랑스에 거주할 때 자신이 보았던 ‘사롱문화’의 영향이 아닌지 추측된다. 당시 상당수의 프랑스 혁명을 이끈 지식인 중에는 의사출신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법인의료 금지 원칙=경제적 이익만을 좇는 불순 의료 배척
법인의료 금지에 대한 논리의 출발은 “의사는 과연 자신이 자신을 고용하는 것 이외에 타인으로부터 고용될 수 있는 직업인가”에 대한 오래된 철학적 물음이고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겠다.

다른 말로 풀어쓰자면, 제3자가 의사를 고용해 자신의 이득을 추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료 전문가 입장에서의 깊은 고뇌가 응축돼 있는 근원적 문제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의사를 고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할 때 제3자는 의사에게 순수 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불순한 의도의 압력을 가해 오로지 고단위 수익성에 초점을 둔 ‘의료 악적 형태’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종교적 목적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진정한 의미의 봉사 개념에서 의료에 접근한다면 이는 다른 차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이명박 정부시절에 당시 경제 부총리의 주장에 따라 전문직도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사회적 이슈로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개방’이라는 속뜻은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전문가를 고용해 개업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고용창출 내지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하에 ‘전문자격사개방제’를 법으로 완성하려 했던 의도로 있었다.

실제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의사가 아니라도 의사를 고용해 개원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이는 마치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에는 ‘의료윤리’ 쯤은 의미가 없으며 역사의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진다.

공자, 맹자 등 이른바 ‘자’로 끝나는 분들이 유난히 많은 중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지독한 비윤리적 사회현상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이 아닌지 역설적 발상이 솟구친다.

과거 우리나라 MB 정부의 계획 역시 윤리와 법 등 폭넓은 다학제 학습을 받지 못했던 일개 경제 관료가 급조해 내놓은 천박한 법안으로 논의 과정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점이 제기돼 결국 ‘아니면 말고’ 식의 소모성 논쟁에만 부채질을 하다 전문직에 대한 상처와 자괴감만을 안겨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이 논리를 확장해 보면, 의사 개인이 다른 의사 개인을 고용해도 안 된다는 단순한 원칙이 성립됨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프랑스 공중보건법에 명시된 의료윤리를 읽어 보면, 위와 같은 문제점은 의사의 독립성을 손상하는 계약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판 이전의 구판을 확인해보면, “의사는 타인에 의하여 고용될 수 없는 직업”이라고 명확히 표현했다. 그렇지만, 고용의 목적이 공중보건이나 비영리 형태의 다른 목적일 경우에는 허락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모태 미국도 법인의료 금지 원칙 보건소 등 예외적 허용
미국은 이러한 개념이 보다 확대돼 자본이 병원을 소유할 때 법적으로 경계를 하는 것이다.

즉, 37개 주에서는 법인은 의료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다만, 선한 목적일 때 예외를 두고 법인의 의료를 허락하고 있다.

예외 조항의 대표적인 것이 의과대학병원과 보건소 등이다. 미국의 각 주 마다 이 구태의연해 보이는 법안에 대한 이유를 달고 있는데, 그 흔한 표현이 “법인은 사람이 아니기에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법인의 속성은 집단적 이익추구의 장치로써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영리법인에 의한 병원도 허가를 내주고 있다. 단, 선한 목적이라는 명확하고 심플한 단서 조항은 항상 엄중히 적용된다.

미국의 영리병원은 초대형 상장회사로써 약 100개가 넘은 계열병원들을 소유하고 있는 거대 ‘의료기업’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악명 높은 초고가인 미국의 의료시스템에서 다양한 혁신적 방안과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위해 매진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리법인에서 고용의 형태를 잘 살펴보면 대개는 의사집단과 병원의 협상에 의한 고용형태이지 병원이 직접 사람을 고용해 급여를 주는 형태는 거리가 있어 보임을 알 수 있다.

의사와 병원은 명확한 계약관계에 있으며 반드시 의사의 독립성 보장에 대한 조항을 준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법인이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는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 병폐로 독버섯처럼 번성하고 있는 일부 요양병원들의 사기 행각이나 사무장병원을 이용한 건보재정의 도둑질에서 그 면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나라에 과연 사무장병원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이런 병원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요양원, 요양병원 등 노인을 한낱 돈벌이 대상으로만 보고 수준 이하의 질 낮은 의료로 공공보험의 재정을 축내고 있다.

도대체 이런 의료기관에 고용돼 있는 의사는 어떤 사람들인지, 싸구려 의학교육의 산물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윤리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에 대한 이해는 매우 낮아 보인다.

건보공단은 사무장병원 해결책으로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현재 활동 중인 모든 의사의 계약관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면허관리기구가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사무장 병원의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에서 선한 목적의 취지에서 예외적으로 허가받아 운영되는 대학병원의 경우에도 의사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소속 대학 의사에게 병원 수익 창출을 위한 어떤 부당한 요구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만일 병원 경영자가 병원소속 의사에게 수입에 대한 압박을 가하면 자신이 윤리적인 위배사항으로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최고대학의 병원장이 교수들에게 환자 1인당 건당 1,000원 정도의 인센티브를 부과해 구설에 올랐다.

원장 자신의 집안이 일제 때부터 속칭 ‘동동구리무’ 장사로 돈을 번 ‘기발한 재벌’ 출신다운 생각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해진다.

▽비윤리적 의료법인 악용 시 의료생태계 파괴 선한 목적 의료 괴사될 것
병원이 의사와 환자 1인당 진료비 중 1,000원을 분할한 것이 되어 이것은 의료윤리가 금지하는 수가분할(Fee Splitting)의 범죄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다른 예로 물리치료사가 정형외과 의사에 고용되어 있는데, 환자 치료 건당 일정액을 해당 의사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아도 이것은 대표적인 수가분할 사례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대수롭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의료윤리는 동아시아적 상황에 따라 기준이 낮게 맞춰져 있거나 아니면, 아직도 서양의학에 대한 이해부족 현상이 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버스를 운행해 동네 노인들을 죄다 모셔 와서 물리치료라고 안마 해주고 돈을 버는 사무장병원은 의사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 하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언론을 통해 아프리카 소년병이 자신이 휴대전화도 쓸 줄 알고 소련제 기관총인 AK47도 잘 다루고 사람도 죽여 봤다고 자랑하는 모습을 봤다. 끔찍하고 불행한 일이다.

총기사용법을 배운 것은 좋은데 언제 써야 하고 언제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군인다운 자세를 배우는 것인데 어린 나이에 누군가에 의해 잘못 세뇌된 길을 갔거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의적으로 터득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한 나라의 의료수준은 단순히 기술적인 면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의료 윤리나 사회적 제도가 어떻게 의료와 함께 구성되어 어떤 의료를 펼치는가가 중요한 관건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큰 대학병원들은 문케어 체제가 만들어 내는 국가주도 의료의 도덕적 해이와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착한 국민과 환자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대학병원들이 대동단결하여 일차의료의 대학병원중심 국가로 재탄생하고 있는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대학병원의 일차의료 서비스의 지극한 기여는 의료계, 정부 모두 아직도 서양의학의 올바른 이해의 결여에서 오는 후진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4차 산업혁명시대의 선도적 현상인지 거꾸로 뒤집힌 우리나라 의료 생태계의 앞날이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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