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안전과 의료질 향상을 위해 간호사 인력배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재원일수 감소 등으로 이어져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또한 간호사의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은 환자 사망률을 낮추는 등 환자 안전과 직결된다는 주장도 제기돼 눈길을 끈다.

자유한국당 이명수ㆍ윤종필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상희ㆍ기동민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국민건강권 보장을 위한 간호의 질 향상방안 토론회: 간호사 배치수준 강화방안을 중심으로’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린다 에이켄(Linda Aiken)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간호대학 교수는 “간호사의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은 환자 사망률을 낮추는 등 환자 안전과 직결된다.”라고 밝혔다.

에이켄 교수는 이날 전 세계 30개국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국제비교연구를 통해 간호가 환자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에이켄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뉴저지 및 펜실베이니아의 491개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간호사 근무환경이 환자의 재입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밝혔다. 담당 환자가 1명이 증가할 때 이로 인해 간호사 업무가 가중되고 재입원률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심부전ㆍ폐렴ㆍ심장마비 환자의 경우는 9%, 고관절ㆍ무릎관절 치환술 환자는 8%, 일반 수술환자는 3%, 어린이 환자는 11% 각각 재입원을 경험했다. 또 이로 인해 환자는 통증, 고통, 죽음을 야기하게 되며 의료비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의료 생산성마저 저해하는 등 환자와 병원, 정부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부족한 간호사 인력을 보조인력으로 채울 경우 간호사의 사기저하는 물론 보조인력에 대한 지도와 감독으로 인해 간호사 업무를 가중시키고 환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2014년 벨기에, 잉글랜드, 핀란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 유럽 9개국 300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 42만 2,7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간호학(BSN) 학사학위 간호사의 비율을 10% 높이면 환자 사망률을 7%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는 간호사 인력 정책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고 있다. 미국에서 제일 먼저 간호사 배치를 법제화했던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간호인력 법제정이 환자의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해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2004년 연구에서 확인했다.

캘리포니아주 뿐만 아니라 미국 다른 주에서도 간호사 배치와 관련된 법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영국, 칠레 등도 간호사의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논의를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칠레의 경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14명에서 8명으로 줄인 결과 재원일수 감소 등으로 연간 미화 2,200만불을 줄일 수 있었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경우 환자 대 간호사 비율 2000년에 법제화했으며, 호주 퀸즈랜드주도 간호가 환자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간호사 인력 배치 수준을 확대했다.

특히 호주 퀸즈랜드주의 경우 간호사 인력 배치 수준을 확대한 이후 환자 사망률을 12% 낮췄으며, 환자 간호에 필요한 시간은 13% 늘어났고 12%의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등 적극적인 간호 인력 확대 정책을 통해 환자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간호가 환자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전 세계 30개국 모두가 간호사 인력 정책을 통해 환자 사망률을 낮추는 등 환자 안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세계 의료인력 비교연구 전문가인 제임스 뷰캔(James Buchan) 영국 퀸마가렛대 교수도 에이켄 교수와 의견을 같이했다.

뷰캔 교수는 간호사 한 사람이 사직하는 것은 적어도 몇 달치 월급과 맞먹는 비용이 소모되며, 간호사의 높은 이직률은 환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간호사에게 주어진 고강도 업무량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의료사고의 가능성을 높이므로, 간호사의 이직을 감소시키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라며, “간호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간호사의 장기근속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뷰캔 교수는 또 영국의 경우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에서 모두 간호사 배치기준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배성희 이화여대 간호대학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간호사 1명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경우 평균 16.3명을, 병원은 43.6명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며, 미국 5.7명, 핀란드 5.5명, 스웨덴 5.4명, 노르웨이 3.7명 등과 비교하면 적게는 3배, 많게는 11배나 많은 환자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간호사에게 장시간 근무 및 초과 근무, 높은 업무 강도 및 불충분한 휴게시간 등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게 되고, 결국 간호사를 병원에서 떠나게 함으로써 인력수급 불균형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미국과의 비교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경우 간호사의 평균나이와 근무연수가 각각 46.7세와 18.1년이었던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28.7세와 6.2년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또, 탄력근무제로 근무하는 시간제 간호사 비율이 미국은 전체 간호사의 27%를 차지했던 반면 우리나라는 0.5%에 불과해 간호사 인력 운영이 경직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 교수는 한국의 간호사 인력 배치 관련 정책 시행을 위한 시스템 마련을 위해 ▲의료법에서 근무조별 간호사 1인당 환자수 규정 추가 ▲간호관리료 차등제의 의료법 기준에 맞춰 점진적 변화 등의 법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아울러 긍정적 인센티브로 ▲입원료에 포함돼 있는 간호관리료 분리 및 간호수가 개발 ▲적정 인건비에 대한 지불보상을, 부정적 인센티브로 ▲인력정원기준 미충족의 경우 시설 및 장비 사용 제한, 시정명령(의료법), 의료기관 인증취소 등을 제시했다.

배 교수는 간호사 근무시간 및 초과근무에 대한 정책으로는 근로기준법의 보건업의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조항을 삭제할 것을 주장했다.

패널토론에 나선 박영우 병원간호사회장은 “우리나라 병상 수는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많은 반면, 간호사는 부족해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수가 많다.”라며, “이는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므로 안전한 간호사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수가보상과 같은 인센티브와 유인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의료기관 내 충분한 간호사 배치를 위해 간호사 배치에 대한 법적 강제성 부여 및 보상체계를 역설했다. 구체적으로 수가개발 및 간호등급제를 개선하고, 인력기준 준수여부 모니터링 및 미준수 기관 제재하자는 것이다.

그는 또, 신규간호사 적응을 돕기 위한 교육 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적정 수준 이상의 간호사 급여를 유지할 것을 역설했다.

박 회장은 “간호사 인력배치 수준은 안전한 간호환경 구축을 통한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간호서비스에 합당한 간호관리료의 적용 및 적정수준 이상의 간호사 급여 유지를 위해 지역별ㆍ종별로 동등한 수준의 간호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인력관리의 최우선 포인트인 신규간호사의 간호현장 정착과 관련한 의료기관의 임상 간호교육 체계 개선을 위한 국가 정책 입안 및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오선영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도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는 곧 환자안전과 직결된다.”면서, “간호사 배치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노동조건 개선을 통해 간호사의 이직을 줄여야 한다. 이직자 감소분으로 배치기준을 강화하고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병원계는 간호사 뿐 아니라 다른 보건의료 직종도 꾸준히 채용을 늘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거시적 관점으로 늘어나는 의료수요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2017~2018년 전국 병원의 간호사 순증인원이 8,000명이 넘는다. 또, 같은 기간 병원 전체 고용인력은 5만명이 증가했다.”라며, “병원도 그만큼 증가하는 의료이용에 대처하고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고용을 많이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송 부회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이나 병원급 의료기관은 충분한 간호사 인력 확보가 어렵다.”라며,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고 근무조건을 향상시키면 나을 수 있지만, 같은 조건이라도 간호사가 계속 이동하며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임삼간호사 수가 전체 면허자의 50% 정도에 불과하다는 간호계의 주장에 대해 “나머지 50% 중 30% 정도는 간호 관련 유사직종 근무로 판단된다. 학교보건, 공적영역 등 유사직종에서 간호 면허자 수요가 사회적으로 늘어나는 부분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병원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많은 간호사 수요가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간호인력 공급 확대 정책이 훨씬 중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송 부회장은 이어 “우리나라는 병상수, 입원일수, 입원환자수, 외래방문수 등이 OECD보다 훨씬 많다.”라며, “그런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계속 의료인력을 늘려야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인의 적절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적정한 지불이 돼야 한다는데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지, 단순히 배치기준을 법제도적으로 높인다고 해서 잘 적용되고 실천될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환자안전을 위해 간호사 배치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승용 보건복지부 간호정책TF 팀장은 “최근 10년 사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가장 빠른 간호인력 배출 증가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하다.”라며, “우리나라가 병상수가 많은 나라인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홍 팀장은 최근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따라 수립될 보건의료인력 계획의 핵심이 간호사라고 강조하며,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종합적인 접근 측면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문인력의 경우 양성과 배출, 숙련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므로 인력배출과 확충현황 등을 고려해야 하며, 행위별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는 건강보험 체계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는 하루만에 전국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지리적 환경으로 환자쏠림 현상이 다른 나라보다 좀 더 큰 고민이라며, 배치기준 등과 관련해 보건의료인력 쏠림현상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홍 팀장은 “인력은 인력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 의료시스템 내에서 차지하는 문제다. 의료기관이 적정한 기능을 제공하고 적정규모의 병상, 인력 등과 연결되는 것이다.”라며, “모든게 연결돼 있어서 지금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보다는, 큰 그림에 대해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단계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게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이 이 정도를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겠다는 책임성까지 이끌어낼 수 있도록 연구결과 등 근거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최근의 수요에 맞는 학교 교육과 유휴인력 교육, 신규교육, 보수교육 등 교육의 중요성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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