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사 업무범위와 관련한 법안을 두고 의사와 응급구조사가 각각 다르게 해석하며 대립하고 있어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지난해 11월 5년마다 응급구조사 업무범위를 조정하는 내용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최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현행법에서는 응급구조사는 ‘의료법’에 따른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응급처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응급구조사 업무의 체계적ㆍ전문적 관리를 위해 응급구조사 업무지침을 작성해 보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응급구조사 업무범위는 지난 2003년 2월 개정된 것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응급의학 기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에게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 의원은 “최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수행한 ‘응급구조사 2차 직무분석’ 결과에 따르면, 응급구조사 업무 요소를 240개로 분석하고 병원 내에서 이뤄지는 응급처치만도 39가지로 분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령에서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15가지로 한정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윤 의원은 “이처럼 현실에 맞지 않는 응급구조사 업무범위로 인해 응급환자가 시의적절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고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응급환자를 위해 현행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업무범위를 벗어난 응급처치를 한 응급구조사가 ‘의료법’을 위반한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개정안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응급구조사의 업무에 대한 교육, 평가, 질관리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 5년마다 응급구조사 업무범위에 대한 적절성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고 있는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및 응급구조사 업무지침에 반영하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안에 대해 의료계와 응급구조사단체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대한의사협회 및 대한응급의학회는 “개정안은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를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는 환자의 안전 등을 고려할 때 수용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5년마다 강제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우며, 위원회 구성이 논의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위원 구성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보다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응급구조사협회는 “응급구조사 업무범위의 적절성에 대해 5년마다 객관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복합적 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를 통해 논의하려는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라며, 찬성 입장을 전했다.

특히 개정안은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일방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부합하게 조정(삭제도 가능)하려는 것으로, 환자의 안전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수정의견을 내놨다.

복지부는 응급구조사 업무범위의 조정 필요성에 공감하나, 이를 응급의료정책 심의ㆍ조정 기능을 가진 ‘중앙응급의료위원회’를 통해 논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적정성 조사결과 업무범위를 반드시 조정하기보다는 조정을 검토할 수 있도록 조항을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은 개정안의 취지는 인정하면서도, 일부 고려해야 할 점을 지적했다.

전문위원실은 “일선 현장에서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조정에 대한 요청이 계속되고 있는 점, 의료기술의 발전이나 의료환경의 변화에 따라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도 현실에 맞게 지속적으로 조정해나갈 필요성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적정한 수준으로 주기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는 개정안의 취지는 타당하다고 보인다.”라고 밝혔다.

다만,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는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사항이므로, 그 적정성을 위원회와 같은 합의제 의사기구를 통해 논의ㆍ결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에 대해서는 현재 직역별(응급구조사, 의사 등) 의견대립이 상당히 큰 상황이므로, 개정안과 같이 위원회를 구성한다면 법률에서 위원의 선임 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전문위원실은 아울러 안 제41조제2항은 위원회의 적정성 조사결과에 따라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조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조정’한다는 용어가 조사결과 업무범위를 현재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5년마다 반드시 이를 변경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이를 ‘그 결과를 업무범위에 반영하여야 한다’ 등으로 수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편, 응급구조사는 응급환자에 대한 상담ㆍ구조 및 이송과 ‘의료법’ 제27조의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법에서 규정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응급처치(의료행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 또는 면허를 말한다.

응급구조사는 업무의 범위에 따라 1급과 2급 응급구조사로 구분되며, 응급구조사가 되려는 사람은 소정의 교육과정(1급: 대학에서 응급구조학 전공, 2급: 응급구조사 양성기관의 양성과정 수료)을 거쳐 보건복지부장관이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는 법 제41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33조에 따라 [별표 14]에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2급 응급구조사는 ▲구강 내 이물질 제거 ▲기본 심폐소생술 ▲외부출혈의 지혈 및 창상의 응급처치 등과 같은 10가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1급 응급구조사는 이에 더해 ▲심폐소생술 시행을 위한 기도유지 ▲정맥로 확보 ▲특정 약물 투여 등 총 14가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응급처치는 원칙적으로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에 의해 수행돼야 하지만, 2급 응급구조사 업무범위에 해당하는 응급처치를 하는 경우와 급박한 상황에서 의사의 지시를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의사의 지시 없이도 수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행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돼 있어 응급구조사가 응급환자에게 시의적절한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7년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도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게 규정돼 있어 응급구조사들이 응급의료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환자로부터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소ㆍ고발을 당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음이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측면에서 보다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의료계는 많은 응급구조사들이 요청하고 있는 에피네프린(천식, 두드러기 등 심한 알러지 반응을 치료하고 심한 저혈압의 응급처치에 쓰이는 약), 아미오다론(부정맥 치료제의 하나) 등과 같은 약물을 투여하는 응급처치의 경우 약물을 잘못 투여하였을 때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어 허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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