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의료기관 중심으로 인식됐던 의료정보의 주권이 환자 개인에게 넘어오는 추세다. 선진국들은 이미 정부 주도로 PHR(Personal Health Record) 관련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중이며, 우리나라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 중이다.

특히 그간 개인정보 유출ㆍ남용 등을 우려로 반대해 온 것으로 알려진 소비자단체, 환자단체도 긍정적 입장을 밝혀 세부적 논의에 착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다만 데이터 표준화 작업, 정보유출ㆍ오남용 방지할 기술적 장치, 고령소비자 배려 등은 해결과제로 남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니마실에서 개최한 ‘개인의 의료정보 주권 구축 방안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논의됐다.

이날 발제에 나선 김영학 서울아산병원 헬스이노베이션센터장은 “의료정보 주권에 대한 고전적 인식은 병원 중심이었지만, 의료정보 데이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라며,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데이터 활용의 핵심주체로 부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디지털헬스를 기반으로 한 미래의료는 병원, 의료인 중심에서 개인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라며, 개인에 의해 입력되고 이들 개인의 진료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건강자료인 ‘PHR(Personal Health Record)’에 대해 소개했다.

과거 종이나 CD의 경우 자료의 양이 제한되고, PHR 자료 활용은 개인의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했으며, 진료제공자의 자료에 대한 신뢰확보가 어려울 수 있었다.

반면, 모바일 앱과 인터넷 기반의 PHR은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풍부하고, 재난 등의 상황에서 백업이 유리하며, 다양한 서비스 모델 개발이 가능하다. 호환성과 표준이 중요하며, 집중화와 이동성이 이슈가 되고 있다.

김 센터장은 PHR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개인, 병원, PHR 사업자에 대한 맞춤형 활성화 방안 ▲병원정보시스템 및 PHR의 표준화 ▲PHR 서비스 허용 범위 ▲민간과 정부 간의 역할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PHR 데이터활용에 따른 보안과 개인정보와 관련해 ▲병원, 개인, 활용기업에 대한 데이터 권한 및 책임 ▲인증, 보안, 데이터 연계 ▲데이터의 2차활용 및 3자 제공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관련업계 뿐 아니라 정부와 소비자단체, 환자단체도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박재현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산업지원실장은 “작금의 시대에서 데이터 활용은 우리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혁신성장 동력이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독점, 데이터 공유에 대한 거부, 각종 규제 등으로 인해 수많은 데이터의 다양한 활용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금융 분야는 마이데이터 사업 등을 통해 개인의 금융정보 활용을 통한 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있지만, 의료 분야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 허물어지지 않고 있어 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실장은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해 정보 주체인 개인은 개인정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본인의 통제 하에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성숙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라며, “지난해부터 시행된 EU ‘GDPR’에서도 개인정보의 보호권을 강화하면서도 개인정보의 이동권을 새롭게 보장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미 의료분야에서는 미국 ‘블루 버튼(Blue Button)’, 핀란드 ‘마이데이터(MyData)’, 스웨덴 ‘메디컬 레코드 온라인(Medical Records Online)’ 등과 같은 정책을 통해 개인의 의료정보를 본인의 통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 중이다.

박 실장은 “의료정보는 진료정보를 비롯해 생체정보, 유전분석정보 등 매우 방대하며 종류도 다양하지만,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의료정보의 통합ㆍ연계ㆍ분석이 용이해져 의료정보 활용의 편익이 급증했다.”라며, “의료분야에서 개인정보 활용은 개개인의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 필수 조건이며, 치료, 신약 개발 등에서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돼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의료정보 활용이 핵심이며, 이미 수많은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기업이 의료 데이터 확보에 뜨거운 관심과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우리만 높은 장벽 속에 활용에 따른 편익을 누리지 못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의료서비스의 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에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42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박 실장은 “AI 닥터 시장을 2020년 260억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고, 그 시장규모는 현재보다 10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그러나 개인의 의료정보 활용이 힘들다면 예산 투입에 따른 경제 효과는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전했다.

세계적으로도 이제는 개인의 의료정보 활용이 가능한지를 논하는 단계를 벗어나, 어느 수준까지 활용 가능한지가 논의의 초점이 될 정도로 개인의 의료정보 활용은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애플은 지난해 1월 헬스 앱에 의료정보를 다운로드 받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고, 현재 존스홉킨스병원 같은 유수 병원이 참여하면서 수많은 애플 이용자에게 서비스 중이다.

박 실장은 “그러나 삼성전자 휴대전화에 탑재된 헬스 앱은 국내에서 관계 부처ㆍ기관의 비협조와 각종 규제로 인해 제한된 서비스로 한계 직면했다.”라며, “글로벌 경쟁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료분야에서의 개인정보도 이해관계자들 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보다 안전한 범위 내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도출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기술의 발전이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할텐데, 의료정보 주권 구축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장점이 많다고 생각해 확산됐으면 좋겠다.”라며, “다만, 그동안 소비자들이 수많은 개인정보 사고를 경험하며 시장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정 사무총장은 또, 소비자 이해도 증진을 위한 표준화 작업이 선행돼야 하며, 고령소비자에 대한 배려도 중요한 과제라고 전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환자단체는 ‘마이데이터’에 찬성하지만, 일부 그룹이 반대해 공식입장은 못 내고 있다.”라며, “공공이 PHR 플랫폼을 만들어 관리해야 신뢰하고 정보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보험회사가 의료정보를 보험심사 목적으로 개인에게 요구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현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변호사는 “개인이 의료정보 자기결정권, 데이터 이동권 행사는 전문성, 독점성, 긴급성, 판단능력 한계, 데이터보관 기관의 규모 등을 고려할 때 환상에 가깝다.”라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또, ▲정부의 기술만능주의, 신산업개발 조급증 ▲의료기관 집중, 수직계열화 ▲상업화된 대형의료기관, 보험사, DTC 회사의 시장 왜곡 ▲검증되지 않은 헬스케어서비스는 흉기(결혼, 취직, 보험가입 등) 등의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환자중심 운용을 하려면 우선 수술실 CCTV부터 시행하고 디지털헬스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또, 환자가 진료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 제도 및 시스템 구축해야 한다.”라며, 주거지의 헬스 부스(Health booth)화, 재택진료, 원격진료 등을 주장했다.

아울러 국가의 후견적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근거중심 기술만 허용하고, 사전예방주의를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이외에도 ▲혼합진료 금지, 실손형보험 규제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의료인의 대량양성으로 공공의료 확대 등 공공의료 인프라 구축 ▲오남용시 입증책임 전환, 징벌적 배상, 자격박탈, 형사책임 등을 주장하며, 국민적 합의와 양보, 설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정부는 PHR 도입에 대한 우려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이런 트렌드로 가고 있는 추세이고 활용도도 높다고 인정했다.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PHR이 앞으로 도입돼야 하고 활용도도 크지만, 아직 국민이 자기 의료정보의 가치, 활용도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라고 밝혔다.

작은 인센티브에도 영리목적 기업에 넘길 수 있는 등, 사회적으로 우려되는 상황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과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가 PHR을 진행중이거나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PHR이 도입되면 만성질환자의 경우 자가 건강관리를 하고 무슨 약을 언제 어떻게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아동 예방접종을 어떻게 했고 치매에 걸린 부모가 어떤 치료를 했나 관리도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환자가 능동적으로 치료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의료인과 소통이 가능해지며, 휴ㆍ폐업 의료기관이 발생해도 진료 연속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응급상황시에는 병원에 온 환자가 의식이 없어도 포털이나 스마트폰을 조회해서 정보를 확인하고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처럼 의미있는 시도이고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라며, 해외사례를 참고해 우리나라도 여건에 맞춰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용어, 정보교류 기술, 각종 서식 등의 데이터가 표준화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영국의 NHS처럼 정보 유출과 오남용 우려가 없도록 공공 부문에서 PHR이 든든하게 구축되고, 이와 병행해 민간의료기관, 개별플레이어가 부가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오 과장은 “정보의 속성상 유출되면 끝이므로 정보 유출과 오남용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강력한 사후적 처벌도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그는 “환자권리와 개인의 의료정보 권리 보장 등을 위해 방향성은 이 쪽으로 가야 하는데, 방법론은 공적 프레임이 많이 준용돼야 할 것이다.”라며, “정부도 정책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할 테니 국회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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