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의 건강권 보장 측면에서 북한 보건의료 시스템 회복을 위한 남북 협력이 필요하며, 일회적인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 전망에서 남북 보건의료협정 등에 기초해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성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지난 22일 발간된 ‘보건복지 이슈 앤 포커스’의 ‘북한 보건의료 분야의 변화와 전망’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북한은 전 인민에 대한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 고려의학과 신의학 병행, 예방의학 강조, 대중의 보건사업 참여라는 기본 원칙하에 대부분의 재원을 정부 예산으로 조달,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본 구조는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보편적 의료서비스의 가장 일선 전달체계인 진료소와 호담당 의사들은 의료기기를 갖추지 못한 채 의료 상담 수준의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으며, 2차 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시ㆍ군ㆍ구역 인민병원의 시설도 매우 낙후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탈북 의료인에 대한 질적 조사 결과, 기존 보건의료 시스템의 구조는 유지하고 있지만 기초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도 설비, 의약품, 인프라 등이 부족한 문제가 만연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된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문제로 인해 질병에 대한 충분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며, 낙후된 설비 등의 문제로 추가적인 손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 역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북한 체제 특유의 위로부터의 보여 주기 활동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사회 전반의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국가의 배급 체계를 통한 의료 물자와 의약품 공급은 유명무실해지고 시장을 통한 조달이 일반화됐다.”라며, “시장에서의 자원 동원 능력에 따라 계층 간 의료이용의 격차가 생기고, 적절한 치료보다는 대증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북 제재는 의약품 공급 문제의 한 요인이 되고 있는데, 북한의 제약 능력이 뒤처져 있는 것과 함께 의약품, 제약 원료 수입이 막히면서 제약공장에서 생산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의 의료인력과 의료기관의 수는 상대적으로 충분한 상황에서 의료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자원과 현대적 기술의 활용이 문제인데, 대북 제재의 해제 없이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북한 보건일군의 총수는 인구 1만명당 약 32.9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남한보다도 약간 높고 전 세계 평균인 14.2명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은 원료의 주체화 등으로 보건의료 영역에서 자생력을 키우는 것과 먼거리의료봉사와 같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질적 향상을 이루는 방향으로 노선을 설정하고 있는데, 성과 여부는 북한 경제의 회복 속도에 달려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체제 전환국 보건의료 분야의 경험을 토대로 보건의료 교류ㆍ협력의 과제를 도출해 냈다.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국민 보건서비스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세마스코(Semashko)’ 모델을 채택했지만, 개혁ㆍ개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 체제로의 전환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거의 유일하게 쿠바가 북한과 유사하게 사회주의 의료 체계의 근간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고령화로 인한 보건의료 체계 위기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조 연구위원은 “체제 전환국들의 사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북한 역시 비감염성 질환이 증가하고 있어 현재의 의료 시스템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나타날 것이며, 앞으로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시스템 구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교류ㆍ협력의 필요성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WHO 보건의료 부문 대북 지원 전략(2014~2019) 방향 개요*자료: WHO(2016), WHO Country Cooperation Strategy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14-2019
WHO 보건의료 부문 대북 지원 전략(2014~2019) 방향 개요*자료: WHO(2016), WHO Country Cooperation Strategy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14-2019

세계보건기구(WHO)는 2004~2008년, 2009~2013년 전략에 이어 2014~2019년까지 목표로 한 국가 협력 전략(Country Cooperation Strategy 2014~2019)을 바탕으로 북한 보건의료에 대한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WHO는 보건의료 부문에서의 최우선 지원 분야로 ▲비감염성 질환 예방 및 통제 ▲취약성을 줄이고 재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모성 및 아동 건강 수준 개선 ▲감염성 질환 예방 및 통제 ▲서비스 제공 개선을 위한 보건 시스템 강화 ▲지속 가능한 국가 건강 개발을 위한 WHO 지원을 제시했다.

이전 전략과 비교해 감염성 질환보다는 비감염성 질환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한 것을 볼 때, 북한에서 감염성 질환 못지않게 비감염성 질환 또한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 연구위원은 “앞으로의 남북 보건의료 교류 및 협력에서는 과거처럼 남한이 북한에 소수의 의료 기관을 지어 주거나 소수의 의료진을 교육하는 것보다는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보건의료 체계 회복 로드맵 기획과 실행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최근 북한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으며, 남북 관계의 흐름도 장기적인 평화 정착과 교류ㆍ협력의 활성화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라며,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중장기적인 교류ㆍ협력이 요구되며,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남북 간에 보건의료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중요한 과제이며, 북한의 내부 개혁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그 개혁에 어떤 형태로든 도울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연구위원은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의 남북 보건의료 교류ㆍ협력은 단순 구호나 지원 활동에 대한 것 이상의 보다 긴밀한 파트너십에 대한 구체화가 필요하며, 북한 보건의료 체계의 진정한 회복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전체 거버넌스와 소프트웨어의 변화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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