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에서 허용되는 이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인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료행위를 수행하다 과로로 사망한 사례를 확인하고, 통계를 제시해아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대한의사협회는 21일 오후 2시 의협회관 7층 회의실에서 ‘의사 과로사 해결을 위한 적절한 방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의사들의 과중한 근로시간에 대한 공감대를 얻고, 의료계 밖에서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주장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마련됐다.

가톨릭대학교 김형렬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과로사는 과로에 의해 사망하는 직업병으로 양적 요소와 질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과로사는 1995년 국내에 도입된 후, 2007년 개정된 바 있으며, 2009년 만성과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현재까지 질적평가에 대한 요구가 계속돼 왔다.”라고 과로사 인정 경과를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과로 인정 기준은 주 60시간 근무한 경우, 주 52시간 근무하고 가중요인 1개인 경우, 주 52시간 미만 일하고 가중요인 2개 이상인 경우가 해당된다.

가중 요소는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유해한 작업환경(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등이다.

김 교수는 “질병이나 건강행태 등 개인의 취약성을 부정적으로 고려하고, 교대제나 직무스트레스 같은 노동시간의 질적 특성도 고려가 부족하다.”라며, 과로사 인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질병판정위원회 논의의 구조 문제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의사들이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재를 신청하면 심의를 하러 온 의사위원들이 ‘나도 해봐서 안다’라며 의사 노동시간을 과소평가한다.”라며, “의사들의 과로를 의사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꼬집었다.

과로가 인정이 돼도 예방과 연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며 사후 개입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그는 “사전예방과 함께 사후 개입도 필요하다.”라며, “과로사, 과로자살 발생 현장에 대한 역학조사, 제대로 된 조사와 보상, 유족 지원 프로그램, 피해동료 지원 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노동시간 특례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주당 52시간 상한제가 있는데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업종을 특례로 제시하고 있다. 운송업, 서비스업이 있는데 보건업이 서비스업에 포함돼 있다.”라며, “다른 업종은 52시간 이내로 근로해야 하는데, 보건업은 예외다. 국민 편익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별다른 근거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의사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선 “산재나 공무상질병 신청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문제를 공식화하고 사회로 드러내야 예방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의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왜 사회적으로 허용되는지에 대해 사회적인 설득을 해야 한다. 전공의들이 수련이라는 특수성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연희 법제자문위원(변호사)은 주제발표에서 “과로사는 임상의학이나 법률상 용어는 아니며, 1980년대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된 용어이다.”라며, “판례에 따르면, 과로란 신체적 및 정신적 과중한 부하와 스트레스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서 과로사는 과로로 인한 인체의 항상성의 불균형이 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어떤 질환이나 상태를 초래해 사망한 경우를 말한다.”라고 소개했다.

김연희 위원은 “의사는 노동의 강도가 높고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윤리수준도 높으므로 타 직업군에 비해 스트레스가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법원은 육체적ㆍ정신적 과로가 아닌 스트레스가 문제된 사안에서 스트레스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고, 외부 상황에 따라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 판단이 쉽지 않다고 보고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다른 직업에 비해 근로시간이 길다고 과로 재해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통계자료를 통해 다른 직업군에 비해 유의하게 과로사가 많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응급의료행위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의사들에 한해 통계작업을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라고 제안했다.

토론자들은 의사 과로에 대한 개념정립과 사회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대한병원협회 김병관 미래정책부위원장은 “낮은 수가를 받으니 동일한 수입을 얻기위해 3배 가량 노동강도를 갖고 있다. 의료서비스 특성상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고, 최근 의료인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그러나 우리나라는 관련 법령과 사회 규범상 의사들에게 환자진료에 대한 의무만 강요하고 있다.”라며, “의료현장에서 과로는 안전사고 발생과도 높은 상관관계 보이고 있다. 의료서비스 질을 하락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의사과로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 부위원장은 “헌신과 의무를 강조해온 인식에 대한 전환과 의사 근로시간에 대한 적정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그는 “다만,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행위를 하도록 국가가 허용한 전문인력이고, 의사의 근로시간과 환자의 생명은 비례하므로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법무법인 세승 조진석 변호사는 “근무의 정량적 평가에서는 의학적 평가자료가 확보돼 있지만 정성적 평가자료라고 할 수 있는 근무인의 숙련도나 정서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과로사와 인자 사이에 인과관계를 판단할 의학적, 과학적 자료가 제한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의사들의 업무특성상 정성적인 평가도 중요하다. 법적으로 과로사 법률 제정 등 과로사 법적 판단할 때는 정성적 평가 부족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최근 근거중심 입법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의사들의 근무에 대한 평가도 과학적인 근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이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변호사는 “방사선사들이 방사선 판독 지원업무와 촬영업무시 피폭 당한 이후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인정하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계속 신청하니 결국 법원 판결로 인정됐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의료계 내부에서 업무 부담을 감경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조 변호사는 “진료행위 내에 부수적인 업무를 줄여야 한다. 진료행위를 축소할 수 없다면 부수적인 행위라도 축소해서 근로 강도를 낮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행위 시행이 아닌 서류 업무의 경우 반드시 의사가 해야할 필요는 없다. 법과 관련된 업무 때문에 서류작업을 하는데 전담 인력이나 제3의 인력을 통해 분산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 김명환 사무총장은 “장시간 근로와 관련해서 의사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고 했는데 근로시간 양적인 자료 통계가 나오고 있는데 질적 조사는 없다.”라며, “전문가로서 너무 무방비로 대처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근로시간 특례제도에 대해 홍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김 사무총장은 “특례제도의 중요한 요건은 근로자 대표와 서명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종에 해당된다고 전부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라며, “근로자 단체와 반드시 서명하도록 돼 있다. 대표성 있는 사람과 사용자간 서명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그런 절차를 몰라서 무분별하게 만연해 있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이경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사에게 너무 많은 일을 요구한다. 진료, 행정, 교수회의, 인사과장 회의, 진료위원회 많은 회의가 있다.”라며, “교수들은 진료업적 외에 봉사업적, 연구업적을 요구받는다. 이제까지 사명감으로 버텼는데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다.”라고 호소했다.

이 교수는 “이제 미래의 국민 보건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들을 위해 지속가능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라며, “내부에서 우리부터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SBS 조동찬 의학전문기자도 “법이 없어서 의사가 과로하는 것 같지 않다. 과로는 의사가 환자를 많이 봐야하는 상황 때문에 생기므로 어찌보면 내부 문제인 부분이 많다.”라고 진단했다.

조 기자는 “의사 외에 다른 사회에 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내부적으로 전공의, 병원 봉직의, 의사 직역간 서로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 고려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그는 “최근 인천에서 전공의가 죽었을 때 전공의협의회와 병원의 이야기가 달랐다.”라며, “과로가 심각한 문제라면, 사회를 설득하고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들끼리 먼저 해결할 부분은 없나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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