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보건당국이 의료인 폭행시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에 대해 입장변화를 보여 주목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심의시에는 폭행, 상습 폭행 등 중대성에 따라 판단돼야 하고, 현재에도 피해자가 원할 경우 처벌 가능하며, 폐지 시 가해자-피해자 간 개인적 분쟁 해결 가능성이 원천 차단된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반의사불벌죄 폐지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9일 ‘강북삼성병원 의사 사망 관련 현안보고’가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반의사불벌죄 폐지에 대한 국민여론이 많은 만큼, 다시 의료법을 논의할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날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의료계와 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해 사고방지 방안을 논의중이라며, 안전한 진료환경 및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사고유형별, 진료과목별 실태조사 ▲예방대책 ▲법ㆍ제도적 장치 ▲인식문화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 최대집 의사협회장
(왼쪽부터)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 최대집 의사협회장

참고인으로 출석한 의료인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며,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임세원 교수 근무지였던 강북삼성병원 신호철 원장은 “이미 우리 병원에는 대피로와 비상벨, 보안요원이 다 있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을 수 없었다.”라며, “간호조무사가 보안요원을 불렀고 도착하는데 1분도 안 걸렸는데 그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은 대처하기가 어렵고, 많은 보안요원과 관련 시설이 있어도 근본적으로 막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신 원장은 “이 사건이 그렇게 순식간에 벌어지지 않았다 해도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700병상에 맞춰 외부용역으로 보안요원 39명을 운영중인데, 응급실 등 꼭 필요한 곳에는 24시간 배치하지만 외래 등은 그러기가 어렵다는 전언이다.

신 원장은 “그런 곳은 24시간 배치하지는 못하고, 여러 구역을 한번에 커버하게 하는 구조다.”라며, “이번에도 가해자는 흉기로 의사를 위협하지만 보안요원이 빨리왔다 해도 대비책이 없다. 방검복, 방호복 입은 것과 삼단봉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병원에서 일어나는 폭행사건은 그 대상이 의사, 간호사 뿐 아니라 청소아줌마까지 광범위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가 바뀐다면 의료기관의 보안경비 제도도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궁극적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 없는 사회와 제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권 이사장은 “정신과에서는 이런 문제가 상시적으로 일어나지만 의료진 입장에서는 병의 증상으로 보고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이라 신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라며, “이런 일은 갑자기 일어나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한 상태다. 외래도 무방비 상태다. 안전요원이 있지만 굉장히 막기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권 이사장은 또, 우리나라는 간호사 1명이 13명의 환자를 보는데, 선진국은 1대 6정도이며, 일본은 간호사 1대 4라며,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사건을 빨리 막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치료 후 퇴원해서 외래에서 볼 때도 환자가 안 오고 지역사회센터에 등록하는 것도 법적인 제도가 없으며, 등록하더라도 인력 부족 등으로 올바른 케어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권 이사장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세워져야지, 한 두가지 법안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사후 대책으로는 국회에 발의된 10건이 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개정된 응급의료법에 준해서 형량을 실효적으로 개정하고,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또, 사전적 예방대책으로 ▲경찰과의 긴급비상연락망 시스템 구축 ▲국고 지원으로 안전관리기금 마련 ▲안전관리기금으로 대피공간, 대피로 마련 등의 조치를 할 것을 제안했다.

최 회장은 특히 3만개소에 이르는 의원급 의료기관과 1,500개소의 중소병원의 경우 대부분 진료실에 대피공간, 대피로, 비상벨 등이 없다며, 최소한의 예방조치로 관련 시설을 설치할 때 개별의료기관에 맡기는 것은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대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전시설 마련에 국가재정이 투입돼야 하고, 이와 관련해 안전관리기금이 조성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능후 장관은 “의협이 제시한 의료기관 안전관리기금에 국가재정 투입을 요청한 것은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라고 답했다.

또한 소규모 의료인만 있는 곳에 별도의 보안요원을 두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에 공감하며, 응급벨 설치에 대해 경찰청과 적극 협조해서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보건복지위원들은 입을 모아 정신질환자의 체계적 관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는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이 사실상 방치상태로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그 동안 실태파악과 관리가 미흡했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의료계와 많은 위원들이 주장한 사법입원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가 구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후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 동의입원 신설과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조건 강화가 신설됐다.”라며, “하지만 결론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입원이 더 까다로워 졌고, 낙인효과에 대한 우려도 있어 결국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병원 밖에 방치되고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라고 우려했다.

김 의원은 “정신질환자는 자기를 입원시킨 보호자나 의사에 대해 굉장히 원망한다. 퇴원후에도 보복조치 욕망이 있는 상황, 환청, 망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라며,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박능후 장관은 “먼저 현재 입원제도가 개선된지 7개월 밖에 안됐으니 좀 더 시행해 보자는 생각이 있었고, 법제처 등 다른 사법기관에서도 사법입원제도에 대해 좀 부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비자발적인 입원은 사적영역이므로 그에 대한 부당성을 행정쟁송으로 다툴 길이 없기 때문에 국가의 책무가 강화돼야 한다.”면서, “국가의 책무에 입원여부 결정과 입원에 대한 구제 청구를 사법적 절차를 통해 하도록 하는 것이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권준수 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도 “사법입원을 포함하는 사법치료명령제, 외래치료명령제 등 법적 제재를 포함하지 않고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상당수 선진국도 이미 사법입원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박능후 장관은 “의사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고 여러 위원회나 사법적 절차를 거쳐서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면서도, “지난해 7월 개정된 법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개최해 결정하는 것인데, 이것을 사법당국과 논의해보면 업무로딩이 많아 사법부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겠냐는 현실적 문제를 제기한다.”라고 토로했다.

지역마다 마련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인력 부족에 대한 문제점도 거듭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현재 15개 시ㆍ군ㆍ구에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가 없는 실정으로, 모든 시ㆍ군ㆍ구에 조속히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를 설치ㆍ운영해야 한다.”라며, “정신건강복지센터 사례관리자 1인당 담당 환자수가 현재 60~70명으로 과다한데,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을 확충해 담당 환자수를 29명 수준으로 경감하여 서비스의 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남 의원은 특히 “정신재활시설도 지속적으로 확충해야 하며, 지방이양사업에서 국고보조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은 “전국에 243개 센터가 있는데, 전문의나 필수조건으로 갖춰야 할 의료인력이 확보돼 있지 않다.”라며, “외부치료명령제를 이행하려면 인력이 확보돼야 하는데, 정부가 치매안심센터 등 의욕적으로 시설은 갖춰놓고 인력을 충원하지 못해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외과적수술은 눈에 보이니 병원에 가는데, 정신질환자는 센터에서 되겠지 했다가 전문인력 부족으로 정신상담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라며, “주기적 약물, 상담 등을 통해 빨리 고칠수 있는 걸 시간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완전하게 실태조사를 해서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확보하지 않은 경우 어디까지 지역에서 서비스할지 개념정리를 해야지, 어설프게 건드려 환자 치료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능후 장관은 “센터가 직접 치료하는건 아니고, 외래치료명령제가 시행된다면 명령하는 사람은 퇴원시 담당의사나 지역사회에 있는 단체장이다.”라며, “하지만 지난해 4건밖에 발동되지 않아 별 실효성이 없다.”라고 인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정신건강복지지원센터의 비정규직이 75%이고, 근속년수는 비정규직의 경우 3년이 안 된다면서 어떻게 전문적인 치료와 접근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은 적어도 자타해 이력자는 정신의료기관 퇴원사실을 본인 동의 없이도 전문의 판단에 따라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보건소에 통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고, 박능후 장관도 동의했다.

정신보건 관련 예산도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프랑스는 정신보건 예산으로 보건예산의 12.9%를 쓰고, OECD 평균이 2011년 5.0%다.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으로 0.3% 수준이었고, 지난해는 1,563억원으로 1.5%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기 의원은 “0.3%에 비해 올랐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OECD 평균 5%로 잡으려면 약 5,0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라며, “다만, 선진국과 같이 모든 예산을 여기에 우선적으로 집중할 수 있을지는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고, 이에 대해 복지부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남인순 의원도 “정신재활시설 및 정신요양시설 기능보강 예산지원 내역을 보면, 2015년 45억원에서 2016년 42억 7,500만원, 2017년 38억 4,800만원, 2018년 34억 8,400만원으로 매년 감소해왔다.”면서, “무엇보다 정신재활시설 미보유 시ㆍ군ㆍ구에 시설을 설치하고 신축 지원으로 정신재활시설을 확충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남 의원은 또, “정신질환자에 대한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 관련 2019년도 예산이 3억 4,000만원에 불과해 올해 정신질환자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 대상으로 지자체 1개소를 선정해 3억 4,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며, 케어안심주택 시범사업의 경우 1개소 1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라며,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 대상 지자체와 예산 지원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보수야당의 반대로 정신질환자를 비롯한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 예산이 감액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정신과 폐쇄병동을 없애는 추세인데, 이는 결국 환자를 입원시킬수록 손해보는 구조인 수가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신 의원은 “폐쇄병동은 정신과의 중환자실에 해당한다.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곳인데, 수가가 너무 낮다보니 대학병원이 폐쇄한다.”라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환자의 치료권이 상실되고 있다. 환자를 위해 문재인케어를 한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진정성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신 의원은 정신질환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실손보험 가입이 철저히 제한되고 있다면서, 사보험 가입 완화방안을 범정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능후 장관은 관련 수가 개정 검토에 착수했으며, 실손보험 가입여부는 법으로는 거부 못하게 돼 있지만, 보험회사가 가입시켜주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장관은 “실손보험 가입을 강제하기보다는 공공의료 차원에서 정신질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라며, “실손보험사에도 말하겠지만 이미 법적으로 차별을 못하게 돼 있는 만큼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경찰과 의료기관, 정신건강복지센터 간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능후 장관은 “필요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론 어려울 것이다. 정신질환자라는걸 판명하기 전에 폭력사태 있을 수 있고, 개인의 신상정보를 세 개 기관이 동시에 공유하는 시스템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어려움이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다만, 법 개정시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가 퇴원시에는 의사 판단 하에 환자동의 없이도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해당정보에 대해 경찰과 공유하는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같은 당 맹성규 의원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도 없고,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찾아낼지가 문제라며, 원격진료 도입시 앱을 통해 환자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한편, 이날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과 민주평화당 장정숙 의원은 자신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등을 먼저 대피시키다 참변을 당한 임세원 교수를 의사자로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위원회 차원에서 결의할 것을 요구했고, 이명수 위원장은 관련법규가 있으므로 이에 따라 검토해 보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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