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장애인, 이주민 등 의약품 안전사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위해 다양한 정책 제언이 제시됐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표기 확대 필요성이 거듭 제기됐는데, 업계는 활용도가 떨어진다며 반대해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 국회입법조사처, 대한약사회는 지난 12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국민의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한 안전사고 대응체계 강화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한은아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저소득 독거노인, 시각 및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의약품 사용 관련 심층인터뷰를 진행하고, 각 대상에 맞는 정책제언을 내놨다.

먼저, 저소득 독거노인을 대상으로는 건강 및 돌봄 관련 서비스와의 연계를 제안하고, 지역약국 중 가정약국 혹은 요양약국 등을 선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책으로는 ▲점자 표기, 큰 활자 표기 ▲의약복지에 특화한 장애인 보조서비스 제공 ▲시각장애인 전용 투약상자 개발 등을 내놨다. 특히 점자표기와 관련, 영국은 2010년 10월 30일 이후, 독일은 2006년 9월 이후부터 모든 의약품에 점자표기규정을 적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또, “일반적인 장애인 복지제도로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중 사회활동지원 서비스가 있으나, 이 서비스는 중증시각장애자에게만 해당되고 의약품 사용 관련한 직접적인 서비스는 아니다.”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의료전문가나 의약품 전문가를 활용한 의료복지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의약품 안전사용을 위한 수화강의 ▲수화그림문자 복약지도서 ▲거점약국 영상전화기 설치, 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시 수화통역센터로 전화 ▲의약품 데이터베이스 청각장애인용 수화그림문자 개발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한 교수는 취약계층 의약품 안전사용을 위해 약사 보수교육 강화, 거점약국 활용 등을 제안했다.

토론자들도 점자표기를 비롯해 취약계층의 안전한 의약품사용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놨다.

김은진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정보취약계층이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보취약계층별로 맞춤형 의약품 안전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인에게는 돌봄 관련 서비스와의 연계를 통하거나 지역약국을 통한 의약품사용관리지도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표기, 큰 활자표기, 음성지원서비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 지원, 수화그림문자 개발 등을 내놨다.

김 조사관은 이어 “의약품 사고시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 제공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라며,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정보 제공 방법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을 수 있으나, 긴급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처를 위해서는 빠르게 안전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정보제공 방법 및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적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평시에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이모세 대한약사회 환자안전약물관리본부장은 “의약품은 개발당시부터 임상시험의 한계로 취약계층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며, 취약계층은 의약품 유통 및 사용단계에서도 상대적으로 위험이 크다.”라며, 취약계층에 대한 모니터링 및 사례분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기반의 약물부작용, 약물사용오류 보고 활성화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며, 전국에 1개가 아니라 16개 시도에 약국기반 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이어 취약계층에 대한 예방활동 및 안전활동 강화 필요성을 역설하며, “보건소, 협회나 단체, 지역의약품안전센터나 환자안전센터 등 관련기관에서 모니터링 및 사례분석 결과에 기초해 예방 및 안전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 식약처, 건강증진개발원, 보건소 등에 주기적으로 취약계층 약물관리 기본계획을 세우게 하고, 실행 및 평가를 통해 약물관리 수준을 높여야 한다.”면서, “현재는 건강증진사업 항목에 약물사용 분야 없음. 중독에 일부 있기는 하나, 독립항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법적ㆍ제도적 지원 방안으로는 ▲제네릭의약품 상품명 형식 지정 ▲장애인 주치약사 ▲담당약사제도 ▲국민행복카드 약국 적용 확대 ▲요양병원 등 인력기준 개선 ▲촉탁약사제도 ▲방문약사제도 ▲가루약 리필제도 도입 ▲시럽제 제조사 포장 병단위 투약(외래) ▲의약품 안전사용 교육 ▲지역사회 부작용 모니터링 강화 ▲연고제 포장단위 투약 ▲연령제한 약물 식별표시 제도 ▲통역서비스 ▲전자음성 복약지도 서비스 ▲고위험약물 안전관리 수가 ▲약물집중상담 서비스 ▲약력관리 ▲큰 글씨 복약지도문 ▲픽토그램 복약지도 ▲투약 보조기구 지원 등을 제안했다.

지광석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법제연구팀장은 “시각장애인의 의약품 접근성 강화를 위해서는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등 복지정책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라며, “노인 및 시각ㆍ청각장애인을 위한 거점약국의 설립은 공공성이 중요한 만큼, 공공의료기관인 보건소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약품 정보제공 강화는 취약계층의 유형에 따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기업에게 부담을 주는 일괄적 표시제도의 강화보다는 시각장애인 전용 투약상자의 이용 활성화나 국가나 지자체를 통한 점자표기의 보급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 팀장은 또, “고령자를 위해서는 전반적으로 표시의 글자 크기나 모양 등의 기준 개선이 필요하며,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이해가 용이한 별도의 복약관련 메모가 부가적으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면서, “결혼이민자의 경우 언어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하므로 지자체를 통한 정착지원 서비스 강화와 언어 및 안전교육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전했다.

반면, 제약업계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표기 제안에 난색을 표했다.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점자표기와 관련한 시각장애인 패키지 얘기가 매년 나오고 법안도 여러번 발의됐지만 매번 무산됐다.”라며, “현재 다빈도 일반의약품 70여 품목은 이미 패키지에 점자표기가 돼 있지만, 이를 확대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엄 상무는 “생산을 위한 투자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건 생산해도 검수가 어렵다는 점이다.”라며, “활용도도 적다. 우리나라 전문약은 포 포장이 대부분이다. 라벨에 비싼 돈을 들여 점자표기를 해도 약사 조제를 통해 환자에게 제공되므로 시각장애인에게 도달되는건 적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점자 문맹률이 높기 때문에 전면 점자표기를 한다고 해도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엄 상무는 “따라서 약상자에 점자표기를 하는 것보다 시각장애인을 대면하는 약사와 의사가 올바른 설명을 하는게 더 빠를 것이다.”라며, “집에서 보관할 땐 특수 패키지나 보관용기 등을 개발하고, 전화상담 등을 활성화 하는 것이 더 활용도가 높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다문화계층과 관련해서는 편의점 판매 일반의약품을 대상으로 영어, 중국어 주의사항을 만들어 편의점협회에 제공했다고 전했다.

엄 상무는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해 ▲온라인을 활용한 설명서, 복약지도 ▲관련 앱 개발 ▲일련번호 활용한 의약품 추적 등을 제안했다.

한편, 취약계층을 위해 ‘케어 매니저’ 역할을 하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취약계층은 의약품 접근성 뿐 아니라 약국 이용단계, 복약, 부작용 경험이나 의료정보 필요성 문제 등이 복층적으로 존재한다.”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건복지에 걸쳐 있는 욕구를 제공하는 매니저, 대리인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역할을 거점약국, 의원, 주민센터 공무원 중 누가 할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동이 필요하면 이동서비스를 연계해 줘야 하고, 복약지도 할 수 있는 약국을 찾아줘야 하고, 해당 약국의 약사는 교육돼 있어야 한다. 부작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지도 옆에서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그런 체계가 작동되겠느냐.”라며, “실현되기 어렵지만, 중요한 문제인만큼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문제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풀어야 하는 원칙이 맞다. 보건소, 의료기관, 주민센터, 비영리민간단체가 결합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어 매니저’ 역할을 할 누군가는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판단이 핵심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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