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 의사국가시험을 도입하자는 청원이 제시됐지만, 국회와 정부 모두 수험 부담 증가, 통합교육 저해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신중검토 의견을 제시했다.

앞서 지난 3월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의 소개로 관련 청원(청원인: 전용성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내 대한기초의학협의회 기초의학 의사국가시험 도입 TFT 위원장 외 568인)이 국회에 제출돼 보건복지위로 회부됐다.

청원 요지는 의사국가시험에서 진료역량 뿐만 아니라 의사로서 갖춰야 할 의과학역량 등 다양한 역량을 함께 평가하기 위해 기초의학 의사국가시험을 도입하도록 감사하고, 이 시험의 원활한 도입을 위해 의료법 개정을 요청하는 것이다.

청원인은 “현 의사국가시험은 진료역량을 평가할 뿐, 의과학역량 등 의사가 갖춰야 할 다른 역량은 평가하지 않고 있다.”라며, “의과학역량 등이 결여된 진료역량은 단순 임상진료기술을 의미하므로 이러한 역량만 갖춘 의사를 우수한 의사라 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의사국가시험이 진료역량 이외에도 의사가 갖춰야 할 다른 역량을 평가하는 기초의학 의사국가시험을 도입하도록 의사국가시험을 개선함으로써 우수한 의사를 배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원인은 의과대학 학생이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해 획득해야 하는 졸업역량에는 임상의학 역량 뿐만 아니라 기초의학, 행동 및 사회과학, 의학윤리, 평생교육 습득 능력 등의 역량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한 졸업역량은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에서 제정한 의학교육국제표준, 즉 ‘Basic Medical Education WFME Global Standards for Quality Improvement’에 명확하게 기술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표준은 전세계 의과대학에서 교육해야 할 의사가 갖춰야 할 역량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의학교육평가인증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서도 이 국제기준을 반영한 새로운 인증기준을 사용해 의학교육평가인증을 시행할 예정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우리나라 모든 의과대학이 참여하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에서는 ‘기본의학교육 학습성과: 진료역량 중심’ 뿐만 아니라 ‘기본의학교육 학습성과: 과학적 개념과 원리 중심’, 그리고 ‘기본의학교육 학습성과: 사람과 사회중심’을 출간해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의과대학에서 교육해야 할 다양한 학습성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 국가시험의 필기시험 과목(의료법 시행규칙 별표 1의3)
의사 국가시험의 필기시험 과목(의료법 시행규칙 별표 1의3)

하지만 최근 공개된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의학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초의학 의사국시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의학 의사 국가시험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수험생의 수험 부담 증가, 별도의 기초의학 과목 신설에 따른 통합교육 저해 등 부작용을 고려할 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행 의사 국가시험에서도 의학총론 과목에서 기초의학과 연관된 문제를 출제하고 있으며, 임상의학과 연계된 기초의학 평가가 통합교육 측면에서 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다만, 기초의학과 연계된 문제의 출제 비중이 낮은 측면이 있으므로, 향후 기초의학과 연계된 문제 출제 비중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의사국가시험을 주관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현행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에 기초의학 분야가 포함될 경우 임상의학 분야가 축소될 우려가 있으므로, 현행 의사 국가시험과 별도의 필기시험 도입이 합리적이다.”라고 판단했다.

국시원은 미국, 독일 등 다단계 시험 방식을 준용해 본과 2학년 과정 수료 후 수시로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의학평가원의 경우 “기초의학 의사 국가시험이 도입될 경우 유용성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면밀히 검토한 후 결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국가시험에서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을 연계한 문제 유형을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의사 국가시험의 필기시험 과목(의료법 시행규칙 별표 1의3)
의사 국가시험의 필기시험 과목(의료법 시행규칙 별표 1의3)

국회도 청원 취지는 인정하면서도, 응시자의 반발과 반대의견 등을 고려해 합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종희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현행 의사 국가시험 과목이 임상의학 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기초의학 의사 국가시험을 도입함으로써 환자에 대한 진단 및 치료 등의 기반이 되는 기초의학 분야에 대한 교육 및 평가를 강화해 우수 의사를 배출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하려는 청원의 취지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박종희 전문위원은 다만, 기초의학 의사 국가시험을 별도로 도입하거나 현행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에서 기초의학의 비중을 확대할 경우 졸업 후 의사 국가시험 응시를 준비하는 본과 4학년의 임상의학 관련 교육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실제 진료 시 관련 지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보기 어려운 기초의학 분야에 대한 국가시험 준비 부담 확대로 응시자들의 반발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문위원은 아울러 현재 기초의학 분야에 대한 교육은 통상적으로 본과 1학년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본과 2학년 진급 시 의과대학의 자체 시험으로도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의사 국가시험의 필기시험 과목(의료법 시행규칙 별표 1의3)
의사 국가시험의 필기시험 과목(의료법 시행규칙 별표 1의3)

실제로 미국, 독일 등의 경우 본과 2학년 말에 병리학, 생리학 등 기초의학 분야에 대한 평가를 의과대학 내 자체 시험으로 실시하고 있다.

박 전문위원은 “따라서 기초의학 의사 국가시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의학 교육에 있어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적정 비중, 국가시험 준비 부담 확대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관련 학계, 교육계 및 응시자들의 논의를 통한 합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한편, 임상의학은 실제로 사람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영역의 학문으로, 내과학ㆍ외과학ㆍ소아과학ㆍ산부인과학 등을 의미한다.

기초의학은 질병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인체의 구조와 기능 및 질병의 발생기전을 연구하는 영역의 학문으로, 해부학ㆍ발생학ㆍ유전학ㆍ생리학ㆍ생화학ㆍ병리학ㆍ약리학ㆍ미생물학 등을 의미하며, 통상적으로 의과대학 본과 1학년 과정에서 교육하고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2조 및 별표 1의3에 따르면, 현행 의사 국가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구분된다. 이 중 필기시험 과목은 의학총론(60문제), 의학각론(280문제), 보건의약 관계 법규(20문제)의 3개 과목이다.

과목별 평가 내용을 살펴보면, 의학총론 과목에서 생리학, 생화학 등 기초의학과 내과학, 외과학 등 임상의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문제가 일부 출제되고 있으나, 그 외에 기초의학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문제는 출제되고 있지 않다.

총 360문제 중 280문제를 차지하는 의학각론 과목에서는 내과학, 의과학, 소아과학, 산부의과학 등 임상의학을 평가하는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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