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태움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방안이 추진 중인 가운데, 병원계 뿐 아니라 관계당국도 과도한 제한이라며 우려를 제기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지난 3월 9일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수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해 이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난 8월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신창현 의원은 “간호사의 ‘태움(직장 내 괴롭힘)’ 문화는 개인의 품성 문제라기보다 두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도록 강요하는 격무와 과로의 구조적 요인이 더 큰 실정이다. 인력이 부족해 간호사가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피로도가 쌓이게 될 경우 간호사 상호간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그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개정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행법 제36조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기관의 종류에 따른 의료인 등의 정원기준을 준수하도록 하고, 시행규칙 제38조에서는 의료인의 정원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경우 시정명령 또는 영업정지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법상 정원배치 기준에도 불구하고, 간호사의 정원 충족률은 2013년 기준으로 종합병원 63%, 병원 19%, 의원 63%일 정도로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대다수의 의료기관이 간호사 정원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처분 등 적절한 관리ㆍ감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간호사가 부족하면 환자에게 제공돼야 하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간호서비스를 빠뜨리거나 표준을 철저히 준수하지 못하게 되고, 비전문인이 간호의 일부를 떠맡게 돼 간호의 질이 저하되는 등 환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창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병원계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와 법무부도 과도한 처사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대한병원협회는 “직업수행의 자유와 국민건강권을 침해하고 환자 거부에 따른 의료법 위반, 의료특성 및 간호인력 수급 등 의료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입법이다.”라며, “간호사의 격무 및 과로방지를 위해서는 적정인력 공급과 입원료 수가 현실화 등 의료기관의 인력 채용 환경이 우선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이미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간호사 정원 기준이 정해져있으므로 개정안에 반대한다.”라고 분명히 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특정직역에 대해서만 별도로 적정 환자수를 규정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령상 체계에 맞지 않으며, 자칫 의료기관의 환자수 제한 상황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부정적 입장을 전했다.

또한 미준수 의료기관에 대한 형사처벌을 규정하는 것은 의료기관에게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부도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수 배치는 일률적ㆍ획일적 결정이 아닌 환자의 상태와 개별 간호사 담당 업무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므로, 의료기관 운영주체의 직업수행의 자유에 과도한 제한이 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처벌규정과 관련해 과태료나 시정조치 등의 행정적 조치 후 불이행에 대한 벌칙 부과가 아닌 곧바로 벌칙 구성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은 “의료기관이 적정 수준의 간호인력을 배치해 환자에게 충분한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간호인력의 업무 부담을 낮출 필요가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입법취지의 타당성은 인정된다.”라면서도, “현행과 같이 수도권ㆍ대형병원을 제외한 지방ㆍ중소병원의 간호인력 부족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다수의 의료기관이 인력난으로 인해 적정 간호사 수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우려했다.

또, 환자의 상태나 진료과목 등을 고려하지 않고 최소배치 기준을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경우, 개정안의 취지와 달리 법률 준수를 위해 의료기관을 이용하고자 하는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위원실은 아울러 “다른 직종과 달리 간호사에 인력기준 위반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 있다는 점 등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현재 간호사 정원기준을 지키지 않는 의료기관 수가 상당하고 이에 대한 지도ㆍ감독 및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의료기관의 감염관리나 환자안전의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고려할 때, 간호사의 실질적 업무과중을 막고 적정 간호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으므로 찬성한다.”라고 밝혔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태움 논란에 휩싸인 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해 적재적소의 적정 간호인력 정원 기준 확보가 필요하므로 찬성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호주 빅토리아 주, 일본 등은 간호사 배치수준이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필수요건으로 환자의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간호사 최소 배치기준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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