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에 소속된 의료인의 학력, 전공분야, 면허, 경력 등 인적사항을 환자에게 알리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일명 ‘명찰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프라이버시 침해 뿐 아니라 실익도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혜훈 의원(바른미래당)은 지난 3월 2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8월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의료인 인적사항 공지? ‘과다 규제’ 한 목소리
현행법에서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장의 의무 사항으로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하고,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의 신분을 환자나 보호자가 알 수 있도록 명찰을 달도록 하는 등 권익 보호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혜훈 의원은 “일부 의료기관에서 의사 면허 없는 자가 고용돼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가 존재함에도 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환자들로서는 의료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진료를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의료기관의 장은 해당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 등의 성명, 학력, 전공분야, 면허, 경력 등 인적사항을 게시하고, 장기간 진료계약 체결 시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사 등과의 근로계약 기준을 알려주도록 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의료기관의 책임을 강화하고, 환자를 충실히 보호하려는 것이다.”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개정안의 내용에 의료계는 물론, 복지부와 국회도 부정적인 검토의견을 전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개인정보 게시는 영업의 자유와 경쟁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상당하고, 의료인의 신분확인은 진료실의 명패나 처방전, 명찰 등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므로 현행법을 통해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병원협회도 “학력ㆍ경력 등의 사항은 의료인의 능력과 자질, 의료행위의 전문성이나 진료적합성 등과 직접 연관이 없는 정보로, 오히려 외견적 지표를 중심으로 의료선택권을 행사하도록 조장할 우려가 있으므로 반대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의료행위 제공 등과 무관한 근로계약 관련 사항을 법률에 규정할 실익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대한한의사협회 역시 “의료인의 학력ㆍ경력 등 의무게시 및 근로계약기간 정보 공개는 의료인의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정보유출에 해당할 소지가 크므로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해당 의료인의 학력, 경력, 근로계약기간 등을 의무적으로 고지하는 것은 해당 의료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등 과다한 규제에 해당한다.”면서, “필요시 의료기관 소속 의료인의 면허를 게시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할 것이다.”라고 제언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은 “환자가 의사의 학력ㆍ경력 등의 객관적 지표 및 장기 진료계약의 이행여부를 사전에 확인함으로써 진료의사 선택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측면은 인정된다고 보여진다.”라면서도, “의료인의 신상에 대해 의무적으로 게시하도록 한다면 의료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여지가 있다.”라고 우려했다.

또, 이미 ‘의료법’ 제4조제6항은 의료기관의 장이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도록 명찰을 달도록 지시ㆍ감독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같은 법 제46조제3항은 의료기관의 장이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에게 진료의사 선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모든 의사의 학력ㆍ경력 등의 인적사항을 일률적으로 게시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도출되는 법익이 더욱 큰지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위원실은 아울러 “실제 근로계약의 형태나 기간은 의료기관별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근로기간을 설정하지 않거나, 계약기간이 만료되더라도 통상적으로 재계약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개정안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근로계약기간을 알려주기 곤란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휴ㆍ폐업시 선납 진료비 반환, 글쎄
개정안은 또, 환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업을 휴ㆍ폐업하는 경우 그 취지를 게시해 환자들에게 알리고, 선납된 진료비 반환의무를 규정했다.

최근 일부 의료기관에서 치아 교정 등 장기간의 치료를 이유로 진료비를 선납받은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의료업을 중단하는 등 의료기관을 휴업ㆍ폐업하는 사례가 사회적 문제가 된 바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업을 휴업ㆍ폐업하려는 경우 입원 중인 환자를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기도록 하는 등 관련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휴업ㆍ폐업 신고를 받은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이러한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이 법률 개정을 통해 추가됐다.

하지만 이혜훈 의원은 선납된 진료비의 반환조치 등에 관한 사항은 개정 사항에 반영되지 못했다며,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제30조의3은 이미 휴ㆍ폐업시 안내문을 게시하도록 하고 있어 별도의 법 개정이 불필요하며, 진료비 반환의무는 민사상 채권채무관계로 공정거래법상 표준약관 등에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도 “의료기관 휴업 취지 게시여부는 의료기관 개설자의 판단으로 결정할 사항으로 법률로 강제할 내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선납진료비의 반환청구권은 민법상 환자의 명백한 권리이고 환자권익보호조치의 기본적 사항이라는 점, 소액채권 회수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불필요한 입법이라고 강조했다.

3,0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금전 지급청구의 경우 소액사건심판법을 통해 소장 제출 없이 구두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판결이 아닌 이행권고결정 등으로 빠르고 쉽게 집행권원을 취득하고,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한병원협회 역시 “휴업시 중요한 것은 휴업의 사유가 아닌 휴업 예정사실의 공지와 원활한 환자의 전원을 통한 계속적 진료제공 및 권리 보호이므로, 현행법에 의거해 충분한 제도적 취지 달성이 가능하다.”라며, 법안 개정에 반대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은 “환자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려는 취지로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라면서도, “현행법령에서도 휴·폐업 신고예정일 14일 전까지 휴ㆍ폐업 개시 예정일자(사유 포함)를 기재한 안내문과 진료비 등의 정산 및 반환에 관한 사항을 게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행법령으로도 그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의사와 환자간 진료계약은 민사상 계약으로 진료계약 체결 당시 진료비의 구체적 지급방식, 지급시기 및 지급액 등을 협의에 의해 결정하고 있는 만큼, ‘의료법’에 직접 휴ㆍ폐업시 일률적으로 선납된 진료비에 대한 반환조치를 의무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이므로, 진료과목이나 진료행위별 특성을 고려해 표준 약관 등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유사입법례로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의 휴ㆍ폐업시 영유아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면서 시행규칙에 휴ㆍ폐업 사실을 사전에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고, ‘노인복지법’은 장기요양기관의 휴ㆍ폐업시에는 입소자 또는 이용자가 납부한 이용료 등 비용 중 사용하지 않은 금액의 반환조치계획서를 행정청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책임 보장 위한 보험가입 의무화도 부정적
개정안은 의료사고의 발생 또는 진료계약의 불이행 등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보장을 위한 보험가입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만, 이 역시 부정적 검토의견이 주를 이뤘다.

현행법은 의료기관 개설자나 의료인으로 하여금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의 신체나 재산상의 손해배상책임을 보장하기 위한 책임보험이나 공제조합 등에 대한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려는 의료기관에 한해 보험 가입을 외국인환자 유치의료기관의 등록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의료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의료사고가 발생하거나 진료계약의 불이행 등에 따라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보건복지부장관 등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의료사고시 손해배상책임보장을 위한 보험가입의무는 의료기관에 대한 과다한 규제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은 사적분쟁의 영역이므로, 분쟁해결 방법을 제한해 강제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보험료나 과실비율 및 배상액 산정 등에 관해 환자와 보험사 사이에 2차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또,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정시 이미 국회에서 관련 내용을 심의해 보험가입 의무화 대신 손해배상금대불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사적보험체결의 강제는 엄격한 요건과 최소한의 기본권 제한으로 이뤄져야 하고, 환자의 권익보호가 보험강제가입으로 인해 의료인이 침해받는 사적이익보다 우위에 있는지 법익의 균형성 차원에서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대한병원협회 역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당시 해당 사항은 충분히 검토돼 제도적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신설ㆍ운영 중이므로 별도의 유사제도 신설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의료사고 발생 또는 진료계약 불이행 등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법률에 손해배상대불금제도가 규정되어 운영되고 있으므로, 개별 의료기관에 손해배상책임보장을 위한 보험가입 의무를 두는 것은 과도하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손해보험협회는 “현행 의료사고 배상책임보험 가입의무가 외국인환자를 유치하는 일부 의료기관에 한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내국인 대상 의료기관의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까지 구제방안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면서, 찬성 의견을 전했다.

최근 5년간 의료분쟁접수현황(단위: 건)*연도별 ‘소비자 피해구제 연보’**연도별 ‘사법연감’-자료: 보건복지부
최근 5년간 의료분쟁접수현황(단위: 건)*연도별 ‘소비자 피해구제 연보’**연도별 ‘사법연감’-자료: 보건복지부

한편,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은 “현재 시행 중인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는 조정성립 또는 중재판정이 내려지거나, 법원이 금원의 지급을 명하는 집행권원을 작성하는 경우 등에 한해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개정안에 따르는 경우 양자가 조정이나 중재 등을 거치지 않고도 민간 보험회사를 통한 보상금액 산출 및 지급을 통해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고, 의료기관의 경우 의료사고 등을 대비해 보험료를 납부함으로써 전액배상의 부담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다만, 현재 모든 의료기관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손해배상금 대불에 필요한 분담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의료기관에게 추가적인 보험가입 의무 부과는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법률로써 보험가입을 의무화하면서 의료사고와 관련한 과실유무 판단 및 손해액 산정 등을 전적으로 민간 보험회사의 판단에 따르도록 할 경우 감정의 공정성이나 보상액의 적정성 등과 관련해 환자와 보험회사간의 2차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문위원실은 아울러 개정안에서 제안이유로 밝힌 ‘진료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는 주로 장기간 이뤄지는 치료과정에 대해 의료비를 선납하는 관행 등에 기인하는 측면도 크다고 보여지므로, 진료 계약시 치료의 진행단계에 따라 치료비를 분할납부하는 약정을 체결하도록 권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의무적으로 의료사고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도록 법률에 규정하거나 실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 핀란드, 체코, 헝가리, 스페인, 영국, 미국(캘리포니아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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