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19일 1차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 개편 협의체’ 회의를 개최하고 그동안 내부적으로 마련해 온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을 공개했는데, 그동안 정부가 언급해 오던 경향심사 계획과 함께 동료의사평가제 로드맵을 함께 제시했다.

경향심사란 ‘심사기준 기반 건별심사’에서 ‘의학적 타당성 기반 경향평가심사’로 전환한다는 것인데, 이는 주제별로 지표를 개발하고 기관단위 진료경향을 관찰ㆍ분석해, 변이가 감지되는 기관에 대해 피드백-중재-개선을 지원하는 심사방식으로, 주된 목적은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최소화해 낭비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함이다.

즉, 질환별 건별 심사에서 질병군 단위 경향심사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경향심사’는 의료의 효율성 및 과잉 진료 여부 등의 진료 경향을 분석해 의료 질을 평가하는 의무기록에 기반한 심사방식이다.

빅데이타 기반 의료이용 모니터링과 심사ㆍ평가 시스템과의 연계를 통해 주요 건강보험 진료비 추이를 예측하고 기존 경향과 다른 비이상적인 진료비 지출 변화가 감지되는 의료기관(심평원 목표 상위 10%)에 즉시 정밀심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며, 이를 현지조사에도 활용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허나, 정부는 첫 협의체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심평원이 독단적으로 개편안을 만들고, 그 시행을 기정사실화해 언론 플레이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한축이자 공급자인 의료계와는 어떠한 논의도 없이 졸속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된 경향심사 체계개편 시도는 향후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상되는 기관별 경향심사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선 의료행위 측면에서는 의료행위의 자율성을 크게 제한해 과소진료로 인한 의료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하향평준화를 유도해 결국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다양환 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소신진료는 부당청구 내지 과잉진료로 분류돼 규제가 될 것이며,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 불신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동일한 질병을 가진 환자라도 매우 다양한 임상적 양상을 보이고 그 예후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제공되는 진료의 내용과 양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역내 인구구조 및 지역적 특성 등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빈도, 약제비, 약의 종류, 내원 빈도, 약 처방일수 등 다른 의원과 비교해 상위 10%의 경향심사에 걸리면 즉시 시정요청을 받을 수 있는데, 문제는 전산 분석의 특성상 어떤 상황에서도 평균에서 벗어나는 구간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진료의 획일화를 심화시키고, 기관별 특수성이나 의료인 경력에 따른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의료인의 자기개발 동기 부여를 억제해 결국 신의료기술을 이용한 진료 보다는 평균적인 진료만을 지속적으로 보일 개연성이 높다.

심사 측면에서 보면, 경향심사제에 맞는 위법성 판단 기준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허위ㆍ부당청구 심사 기준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경향심사와 건별심사 체계가 공존할 개연성이 높아, 의료계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규제가 추가되는 것이다.

이미 진료비 고가도지표에 의한 종합관리제에 대해 상당수 의사가 국가의 행정 규제, 보건감시제도라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경향심사 추진은 더욱 더 의료계를 옥죄는 규제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이번 개편안에 제시된 동료의사평가제의 문제점도 심각하다.

기존에 문제되던 심사위원의 공정성 문제가 있으며, 또한 심사위원들이 1차 진료를 잘 모르는 대학교수나 퇴직 후 심평원에 온 분야 권위자들인 상황에서 해당 분야 권위자인 심사위원이 결정하면 어떠한 이의도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선진국의 동료평가제 항목에는 ‘변화하는 진료환경, 의료기술 등에 맞춘 끊임없는 전문성 계발’항목이 있으나, 정부가 원하는 경향심사제에서의 동료의사평가제는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평균치 내의 과소진료로 끌어드리기 위한 방법이며, 의료계의 분열을 조장하는 오가작통법 일뿐이다.

결국 정부는 상기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점에서부터 의료계와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쳐 심사체계 개편을 재검토해야 한다.

의료 전문가 및 이해관계 당사자의 참여를 확대하고, 진료주체와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며, 전문가 단체와 충분한 사전 논의 및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과다의료이용의 책임을 환자가 아닌 의료기관에만 전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개선은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가 아닌 국민 홍보를 통한 교육이나 본인부담률 인상 등의 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의료기관에 대해서도 심평원이 규율방향 및 심사기준 정보 등을 사전 제공하고, 의료비용 절감보다는 의료의 질 관리 위주의 기준 제시로 적정진료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저수가로 인한 의료계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비정상적인 수가의 현실화를 수차례 약속했다.

정부의 보장성강화정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제 정부도 대통령이 약속한 수가의 정상화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또한 지난해 12월 10일 국민건강수호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정부에 4개의 아젠다를 제시한 바 있다.

이들 중  ‘심사평가체계개편’ 해결을 위해서 올해 7월 5일 열린 의정협의체에서 심사기준개선협의체를 만들기로 합의가 된 바 현재 보건복지부, 심사평가원, 의료계가 참여한 심사기준개선협의체가 만들어지고 본격적인 실무협의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는 심사실명제실시, 심사기준 전면공개, 급여 및 심사기준 상설협의체 운영, 심사위원 운영방식 및 구성개선, 1차 심사 적정성평가 실시, 심사의 공정성과 형평성확보, 부적절한 급여 및 심사기준 완전폐기, 행정소명절차 간소화 및 투명화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정부가 의료계에 진정성을 보이려면 일방적으로 경향심사를 주장할것이 아니라 먼저 비정상적인 수가의 조속한 정상화 및 ‘심평의학’이라 불리우면서 의료계를 억누르고 있는 불합리한 심사 및 급여기준을 개선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두가지 사안에서 정부가 진정성을 보인다면 의료계도 정부를 신뢰할것이며 그후 의료계와 정부의 신뢰를 바탕으로 향후 100년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큰 그림을 함께 그려나갈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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