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ㆍ한ㆍ정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합의문 초안이 마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의료계가 뒤숭숭하다. 왜 밀실에서 논의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의협에서 주도권을 뺏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의사협회 집행부가 한의사들에게 의사면허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논란중인 사안을 확인해 봤다.

▽의ㆍ한ㆍ정 협의체는 왜 만들어졌나?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2017년 9월 6일과 8일 각각 한방의료행위에 사용되는 것으로써,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경우는 한의사가 관리ㆍ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두 개정안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책임자에 한의사를 포함하는 내용이지만, 사실상 한의사에게 엑스레이 등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이라는 점에서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23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지만, 국회는 협의체 구성을 전제로 국회 논의를 보류하기로 했다.

국회는 해당 의료법 개정안이 의료계와 한의계의 입장이 극명히 엇갈리고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해 ‘의ㆍ한ㆍ정 협의체’를 두기로 결정했다.

협의체에서 합의된 안을 마련해 가져올 경우 법안에 반영하고, 합의가 결렬되면 법안소위에서 다시 법안을 논의해 의결하기로 했다.

이후 의료계-한의계-정부 간 의료현안 협의체가 마련돼 지난해 12월 29일 첫 논의를 시작했다.

▽왜 밀실에서 비밀리에 논의하나?
의ㆍ한ㆍ정 협의체는 첫 회의에서 협의체 운영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참석자들은 논의범위에 대해,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포함한 의-한의 체계 관련 제반 사항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협의체 회의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단체간 합의된 사항에 대해 논의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애초부터 회의 내용을 비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본회의와 실무회의가 개최될 때마다 논의 내용이 상임이사회에 보고됐다.

또, 집행부는 합의문 초안을 대의원회 운영위원들과 시도의사회장단에 공개하고 의견을 요청했다.

8차례 회의(본 회의 6회, 실무회의 2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번도 나오지 않다가 밀실회의라는 지적이 갑자기 나온 이유는 뭘까?

지금도 의협은 정부 및 유관기관으로 구성된 다수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데 모두 밀실회의인가?

다만, 합의문 초안을 공문으로 보내 공식 의견수렴을 하지 않고, SNS 등을 통해 전달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협의체는 재가동됐나?
일부 언론에서 의ㆍ한ㆍ정 협의체가 재가동됐다고 보도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의협이 마치 수개월 동안 중단된 협의체 회의를 특정 목적을 위해 갑자기 다시 연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의ㆍ한ㆍ정 협의체는 본 회의 7회, 실무 회의 2회 등 모두 9회 진행됐다.

본 회의 개최 일자는 ▲1차 2017년 12월 29일 ▲2차 2018년 1월 19일 ▲3차 2월 23일 ▲4차 6월 22일 ▲5차 7월 13일 ▲6차 8월 17일 ▲7차 8월 31일이다.

합의문 초안을 마련했다는 7차 회의(8월 31일)는 6차 회의(8월 17일)가 열린지 2주 만에 열렸다.

의협회장 선거 전후로 잠시 중단되기는 했으나, 매월 1회 꼴로 주기적으로 개최됐다.

의ㆍ한ㆍ정 협의체는 ‘재가동’된 적이 없다.

▽의사협회는 주도권을 뺏겼나?
일각에서 의ㆍ한ㆍ정 협의체가 한의협회장의 로드맵대로 흘러간다거나, 의사협회가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협회가 주도권을 잃고 끌려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한의협의 요구사항이 합의문에 얼마나 반영됐는지를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일단 8월 31일 논의된 협의체 합의문 초안을 보자.

본지 확인 결과, 합의문 초안은 ▲2030년까지 의료와 한방의료의 교육과정 통합과 이에 따른 면허제도 통합 ▲관계기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의료일원화/의료통합을 위한 의료발전위원회를 2018년부터 구성해 2년 내 구체적인 로드맵 마련 ▲(가칭)의료발전위원회에서는 기존의 면허자에 대한 해결방안 논의 ▲(가칭)의료발전위원회의 의사결정방식은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합의에 따름 등 4개 안으로 구성됐다. 합의문 말미에 협의체 구성원은 합의문 내용 이행을 위해 성실히 노력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번엔 3년 전 추무진 전 집행부에서 복지부ㆍ한의사협회와 의료일원화를 논의한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제시된 안을 보자.

2015년 국민건강을 위한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제시한 제안문과 복지부가 제안한 중재안
2015년 국민건강을 위한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제시한 제안문과 복지부가 제안한 중재안

한의사협회는 가능한 분야부터 협진ㆍ통합의료 등의 방식으로 교류협력을 강화할 것과,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제한없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협의체에 제안했다. 특히, 의료통합 이전에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 줄 것을 제안했다.

또, 양 단체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 의사협회의 한방대책특별위원회를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의사협회는 의대와 한의대 교육과정을 통합하되, 기존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제도를 유지할 것과, 의료통합 이전까지 의사와 한의사의 서로 간 업무 영역 침범을 중단할 것을 제안했다.

복지부는 중재안으로 의료와 한방의료간의 교류를 촉진하고, 교차 진료행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안을 제시했다.

교차 진료행위에는 의사의 한방의료 진료행위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용도 포함한다고 규정했다.

즉, 2015년 추무진 전 집행부가 참여한 협의체에서 복지부와 한의협은 교차 진료행위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합의문에 명문화하려고 했다.

올해 의ㆍ한ㆍ정 협의체에는 교차 진료행위에 관한 사항과,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2015년 중재안에 없던 ‘(가칭)의료발전위원회의 의사결정방식은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합의에 따른다’는 조항을 넣었다.

의료일원화와 의료통합의 세부사항은 의료발전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의사협회가 위원회의 논의 내용에 합의해주지 않으면 의사결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의사협회가 안전장치를 확보한 것이다.

3년 전 한의협회장이 호기롭게 주장한 ‘의료와 한방의료간 교차 진료’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요구안이 합의문 초안에서 자취를 감췄는데도 한의협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협의체에서 합의문이 나온 배경은?
의ㆍ한ㆍ정 협의체에서 협의문이 아니라 합의문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의ㆍ한ㆍ정 협의체는 국회의 요구에 의해 구성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는 10월 10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복지부와 의사협회, 한의사협회에 의ㆍ한ㆍ정 협의체의 진행상황과 성과에 대해 물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구성된 이후 약 10개월 동안 머리를 맞댔음에도 내놓을 결과물이 없다면
의ㆍ한ㆍ정 협의체 무용론이 대두되면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알 수 없다.

협의체에서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다면, 복지부는 호된 질책을 받을 것이고, 국회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관련 법안을 다시 꺼내들 우려도 있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