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29명이 숨졌다. 당시 소방당국의 초기 대응이 늦어진 요인으로 불법주정차 문제가 지적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소방청은 소방제도 개선 TF를 구성해 소방 관련 제도 정비를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견을 수렴했는데 1,325건의 제도개선 사항이 수집됐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지난 6월 27일 개정 소방법이 시행되고 있다.

소방차 진입 등을 방해한 불법주정차 차량은 강제 이동되고 이 과정에서 파손돼도 보상받을 수 없도록 했다.

또, 출동하는 소방차에 대한 진로 방해 시 도로교통법이 아닌 소방기본법을 적용해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동안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 의무 위반에 대해 도로교통법이 적용돼 차종별로 5~8만원이 부과됐다.  이번 조치로 과태료가 최소 12.5배에서 최대 20배 오른 셈이다.

이번 제도 개선은 제천 참사 이후 화재사고로부터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돼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소방법 관련 개정안은 2016년 11월 발의됐으나 국회가 1년 이상 묵혔다가 대형 화재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개정이 이뤄졌다.

의료계는 최근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와 강원 강릉 소재 병원에서 일어난 망치 사건으로 충격에 빠졌다.

의사들은 진료중 일어난 이번 사건에 대해 예외없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는 개인이 아니라 의사단체 차원에서 나오고 있다. 의사협회는 물론이고, 다수 지역의사회와 의사단체는 앞다퉈 성명 또는 보도자료를 내고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요구했다.

안전한 진료 환경 구축을 바라지 않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의협이 개최한 집회와 청와대 국민청원을 보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의협은 지난 8일 오후 2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 범의료계 규탄대회를 열고 의료기관 폭행사범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요구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한 법과 제도 개선도 촉구했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인원은 3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의협은 경찰이 집회 참석자를 400명으로 추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800명이 참석했다고 발표했다.

현장에선 참석자가 너무 적어 경찰이 늘려준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물론 참석자중엔 부산, 전남, 대구 등 각지에서 자신의 개인시간을 쪼개어 참석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저조한 참석자수와 의협의 과도한 인원 부풀리기로 빛이 바래고 말았다.

현재 진행중인 청와대 국민청원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청원인은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감옥에 갔다 와서 칼로 죽여버리겠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익산 응급실 의사 폭행사건 피의자를 철저히 수사하고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의협을 비롯한 의사단체들은 앞다퉈 청원 내용과 주소를 퍼날랐다. 보도자료에 첨부하기로 하고, 회원들에게 문자로 안내하기도 하면서 참여를 호소했다.

하지만 3일 시작된 청원은 청원기간 절반이 지난 16일 현재 7만명에 머무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 달 안에 20만명이 동의해야 정부가 공식 답변을 한다.

진료중인 의료인 폭행사건에 분개했다면, 스스로 집회에 참석하고, 국민청원에 동참해야 한다. 내가 참여해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지만, 참여하지 않으면 달라질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큰 화재사고가 나고 소방법이 정비됐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진료중인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사건이 일어나고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비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