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장에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 관행이 손질될 전망이다. 법제처가 이 같은 규정이 과도한 진입장벽에 해당한다며 개선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법제처(처장 김외숙)는 최근 국무회의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불합리한 차별법령 정비계획을 보고했다.

총 19개 부처 소관 65개의 불합리한 차별법령이 정비 과제로 선정됐으며, 이 중 31건은 올해 안에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보고된 65건의 정비 과제는 ▲유사한 제도 간 형평성 제고(12건) ▲과도한 진입장벽 철폐(22건) ▲사회적 약자와 함께 가는 노동(13건) ▲양성이 평등한 가정과 사회(10건) ▲더불어 잘 사는 사회(8건) 등 총 5개의 분야로 구분된다.

이 중 보건복지부 소관 과제는 ▲보건소장 임용자격을 의사면허 소지자로 제한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사유 제한 ▲직역연금 수급자의 기초연금 지급 일괄 배제 ▲장애인전용주차구역 과태료 부과금액 불합리 등, 총 4개가 포함됐다.

법제처는 먼저,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을 보건소장으로 우선 임용하도록 함에 따라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사면허가 없는 의료인을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중장기검토 과제로 선정했다.

또, 강간 또는 준강간 범죄로 임신된 경우 외에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이나 업무상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간음죄 등 다른 성범죄로 인해 임신된 경우에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없다며, ‘모자보건법’ 개정을 중장기검토 과제로 꼽았다.

그 동안 보건소장 의사 우선임용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5월 보건소장에 의사를 우선 임용하도록 한 규정은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소장 임용 시 보건 관련 전문 인력에 비해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직종을 우대하는 차별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관련근거인 ‘지역보건법 시행령’ 제13조제1항 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 2006년에도 보건소장 자격기준 차별 진정사건에서 특별히 의사 면허를 가진 자를 보건소장으로 우선 임용해야 할 필요성이 적다고 판단, 보건소장의 자격을 ‘의사의 면허를 가진 자 또는 보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인력 등’으로 개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인권위의 권고에 의료계는 의사 우선 임용은 당연한 처사라며 재심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타 직역단체는 해당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는 지난해 인권위 권고 당시 공동 성명을 통해 인권위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며, 이 조항을 개정할 것을 복지부에 강력히 요청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는 결정문에서 보건소장의 의사 우선 임용기준에 대한 진정사건(2006. 8. 29. 결정 05진차387)에서 불합리한 차별행위라고 결정한 것과 달리 볼 이유가 없으므로, 같은 이유로 피진정인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다시 권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는 합리적인 이유없이 고용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우대ㆍ배제ㆍ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추구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약속한 바 있고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새 정부의 기조를 따르고자 한다면 위와 같은 특혜 규정을 반드시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역설했다.

한의협은 지난 4월에도 성명서를 내고,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해 한의사의 보건소장 임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문재인 케어의 핵심인 ‘의료공공성 강화’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한의약의 역할 확대가 필수적이다.”라며, “이를 위해 한의사의 보건소장 임용 확대와 공공의료기관 내 한의과 설치 확충, 한의사의 진료 및 근무환경 개선의 적극적인 추진을 정부당국에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특히 한의협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보건소장 임용기준을 개선해 한의사도 차별 없이 임용될 수 있도록 법적ㆍ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울산광역시와 제주시의 경우 의사 출신 보건소장을 공모했으나 조건에 적합한 지원자가 없어 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의사만을 계속 보건소장으로 고집하고 관련법령 개정을 추진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그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법제처는 이번에 보고한 65개 과제를 국민법제관 의견 수렴, 국민 아이디어 공모제, 현장간담회 및 법제처 내부 공모제 등을 통해 발굴했다.

2019년까지 추가적인 정비 과제 발굴을 통해 국민의 실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각 분야의 차별적인 법령을 순차적으로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법령에 의한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차별 사례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지난해 9월 개설한 ‘차별법령 신고센터’를 계속 운영할 예정이다.

김외숙 법제처장은 “불합리한 차별법령 정비의 취지는 단순히 현행 법령의 차별성만 제거하는 하향적 균등이 아닌 달라진 국민 눈높이와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맞춰 평등권을 상향적으로 실현하려는 것이다.”라며, “선정된 과제에 대해서는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아 조속히 법제화하도록 국무회의에서 각 법령 소관 부처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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