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며 보건의료 분야 교류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남북 협력을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대한예방의학회, 한국역학회는 지난 2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평화의 시대 남북 보건의료 협력과 발전방향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토론회를 개최한 정춘숙 의원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토론회를 개최한 정춘숙 의원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북한이탈주민 출신 약사인 이혜경 박사는 “무상치료제는 경제적 기반이 갖춰진 조건 하에서는 우월한 제도로 진정한 인민의 건강보호에 기여했지만, 경제난과 식량난, 에너지난 속 무상치료제 슬로건의 사회주의는 허구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의 결핵, 말라리아, B형 간염, 기생충 감염, 수인서 질환, 호흡기 감염병, 홍역 등 감염병 현황이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북한은 위생과 방역부서에서 책임을 맡고 있지만, 실제 북한당국이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역량은 이미 상실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모란 교수는 북한 보건 전문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재는 북한 보건 전문가 양성 체계나 북한 보건 연구 전문펀드가 없으며, 북한 보건 문제가 정치적ㆍ경제적 문제로 다뤄져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보건 문제는 인권의 문제이며, 특히 감염병은 과학, 의료, 사회의 문제로 전문가 개입과 전문적 소통 방법이 필요하다.”면서, “향후 통일과 남북 교류를 대비해 북한 보건, 이탈주민의 감염병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박상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향후 과제로 ▲약물 오남용 및 민간요법 남용 예방 필요 ▲증상 위주 건강-질병을 판단하지 않도록 교육 필요 ▲일차의료에 대한 신뢰 회복 및 접근성 향상 ▲북한 주민의 질병관, 질병행태에 대한 심층 연구 등을 제시했다.

신영전 한양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남북한 대규모 교류가 이뤄질 경우 ▲북쪽 지역 다양한 인프라의 양적 부족으로 인한 문제 ▲보건의료서비스 전달 기능의 실조로 인한 문제 ▲남북 간 문제ㆍ제도의 불일치로 인한 문제 ▲특정집단-지역의 긴급한 재난이나 사각지대 발생으로 인한 문제 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경우 보건의료 부문의 시급한 중단기 과제로 ▲보건의료 부문 고위급 회담 개최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원칙 수립: 파리선언+알파 ▲남북 보건의료협정 체결 ▲교류협력 프레임 설정: 부문별 역할 ▲기존 약속의 이행 ▲보건의료 부문 우선 사업 시행 ▲남북한 재난ㆍ응급의료 협력체계 구축 ▲교류협력의 다양화: 보건의료 부문 전문가 교류 ▲다양한 경제산업사업과 지역공동체 개발사업에 공동참여 ▲‘한방도 건강위원회(가칭)’ 운영: 남북한 보건의료 부문 중장기 과제와 로드맵 도출 등을 꼽았다.

신 교수는 “평화 한반도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평화적 국면에서 이러한 평화가 혼란이 아니라 실질적인 남북 주민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깨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며, “이 과정에서 보건의료 부문은 다른 어떤 부문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는 가장 안정적인 통로이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만 하는 영역이며, 먼저 안전한 길을 내는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성격, 번영으로 가는 철로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그는 “따라서 보건의료 부문은 사후적이기 보다 선제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면서, “특별히 이 시점에서 추가로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른바 ‘질서 있는 교류’와 이를 위한 ‘두 개의 레일 전략’이다.”라고 역설했다.

신 교수는 “무엇보다 남북관계에 경제적 이윤만이 앞서서는 안 된다. 경제교류가 야기할 문제들을 사전, 사후에 막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함께 가야 하며, 남북 정부 간, 전문가 간 긴밀한 협조관계가 먼저 구축돼야 한다.”라며, “남북 정부, 민간 부문, 국제사회 간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조직의 설치도 중요하다. 뜨거운 열정도 중요하지만, 그 열정이 차가운 이성과 ‘함께’ 달리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두 개의 레일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이번 한반도 평화 국면은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이다. 보건의료 부문을 비롯한 남북한 모든 부문에서 지혜와 열정을 모아 작게는 한반도, 넓게는 인류의 평화와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정춘숙 의원도 “통일을 대비해 각 분야에서 체계적인 준비와 남북 협력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는 남북 모든 주민의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컨트롤타워와 협력체계가 갖춰져야 할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넘어 귀순한 북한 경비병의 총상 치료 중 나온 27cm에 달하는 기생충은 국민에게 충격을 던져줬다. 구충제 몇 알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 질병이 JSA 병사에게서 발견됐으니 일반 주민은 더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감염성 질환 뿐 아니라 고혈압 등 만성질환 관리도 북한 보건의료 분야에서 시급히 해결이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3년 UN 조사결과에 따르면, 북한 사망원인 중 42%는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것이었다. 특히 현재 북한에서는 전문적인 의료에 의존하기 어렵고, 환자 본인이 스스로 통증이 있을 때만 질병을 인식하기 때문에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있어도 정기적인 의약품 복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 의원은 “남북한의 보건의료 격차를 줄이지 않고 통일을 맞이하게 된다면 한반도에 엄청난 혼란과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라며,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보건의료계의 과제와 역할을 논의하고, 남북 보건의료 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의미 있는 제안들이 제시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