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으로 대북 정책이 우호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는 가운데,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가 밝혀져 눈길을 끈다. 특히 과도한 한의학 의존으로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은 최근 국립중앙의료원이 발간한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위한 길잡이’에 기고한 ‘북한 의료 실태와 통일에 대비한 과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영종 소장에 따르면,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표방해 온 북한은 무상교육과 함께 무상치료를 이른바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주요 근거로 내세웠지만, 현실은 이와 큰 거리가 있다.

만성적인 경제난과 사회제도의 비효율성, 보건의료 부문의 부패 심화 등의 문제로 인해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헌법상의 치료와 건강증진 관련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거의 막혀 버렸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북한 보건의료정책의 특성으로 무상치료제와 의사담당구역제, 고려의학(한의학) 중시 정책을 꼽았다.

이 소장은 “자력갱생을 모토로 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보건의료체계는 그 폐쇄성으로 인해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라며, 북한의 제약공업만 보더라도 여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극도의 자립만을 강조함으로써 외부의 선진기술과 원료 도입의 길이 막혀 있다고 전했다.

물론 북한에도 평양제약공장, 나남제약공장, 순천제약공장 등의 생산시설에서 해열제인 아날빈, 아스피린, 설사약 같은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생산량이 워낙 적어 구색 갖추기에 불과할 뿐, 대부분의 역량을 한방약인 ‘고려약’ 제조에 쏟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소장은 “이에 따라 북한은 최근에도 약 생산에서의 자력갱생과 약초 재배만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의약품 부족, 고려의학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더불어 북한의 허술한 의료체계 역시 북한 주민의 건강을 위험에 빠트려 버렸다.”라고 말했다.

북한 의료체계의 또 다른 문제는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문의 숫자는 동의사 1,200명을 포함해 1만 2,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북한 전체 인구가 약 2,400만명인 점을 고려한다면 의사 1인당 주민 2,000명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는 한국의 의사 1인당 담당 인구수 784명에 비해 매우 많은 숫자이다.”라며, “그나마 있는 의사들도 생계유지를 이유로 본업보다는 장사로 전직하기를 희망하고 있어 북한 의료체계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49개에 불과한 종합병원도 모든 북한 주민을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계층 분류에 따른 차별 진료 역시 분한 의료정책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조적인 의료체계 미비와 함께 의사들의 부정부패 역시 문제다. 북한은 1980년 제정한 보건법에서 ‘보건일꾼들은 전체 인민을 건강한 몸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 참가하게 하는 영예로운 혁명가’라고 규정하며 의사들에게 도덕성에 입각한 활동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난 등 생활고 속에서 의사들의 부정부패가 횡행하고 있다. 진료기회를 얻기 워낙 힘들다 보니 환자들의 입ㆍ퇴원이나 각종 진단서의 발급, 의약품 밀반출 등 부정사례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심각한 것은 북한이 이런 속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고 개선책을 마련하거나 외부 지원을 요청하는 대신, 체제 유지나 선전을 위한 겉치레식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단적인 사례가 바로 ‘국가망신 4대 질병’이란 용어다. 북한은 결핵, 간염, 성병, 정신병 등 4대 질병의 발병률 저하를 위해 도당 교육부를 통해 이들 질병의 북한 내 발병률과 남한에서의 발병률을 수시로 비교ㆍ분석하고 있으며, 질병의 북한 내 발병률이 남한 내 발병률 수치를 일정 수준 이상 넘어설 경우 의사담당구역제에 의해 해당 담당 구역 의료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장은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의 경제 사정이 일부 호전되고 민생 분야에도 다소 활기가 돌고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되지만, 이런 상황이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보건의료 분야 등의 열악한 환경 개선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로 점철됐던 과거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하고 한국과 국제 사회와의 대화 무대에 나선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라며, “남북 화해와 협력, 교류 쪽으로 물꼬를 틀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까지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되돌리지 못하게 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분위기에 맞춰 그 동안 중단됐던 보건의료 분야의 남북 협력 사업의 재개를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이 과정에서 유의할 점으로 ▲거대담론보다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협력 및 지원사업의 구상과 추진 ▲구호나 말보다는 행동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남북관계나 대북문제를 둘러싼 남남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 마련 등을 꼽았다.

이 소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불신받는 체제인 북한을 상대로 인도적 차원의 지원과 보건의료 분야 협력 사업을 진행한다는 건 지난한 일일 수 있지만, 열악한 상황 속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혜택에서 소외된 채 고통받는 북한 주민을 외면할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통해 북한 주민이 처한 열악한 보건의료 실태를 감지할 수 있고, 미래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할 수 있다.”라며, “우리 민족의 새로운 도약을 가져올 통일을 위한 노력에 보건의료 부문도 주도적인 역할을 모색할 때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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