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간호사는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백의의 전사’다. 언제 다치거나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희망 직업순위 상위권에 간호사가 있지만,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희망 1순위는 ‘사직’이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10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2018 대한민국 간호사들이 간호사를 말한다!-의료기관의 노동인권 보호와 노동존중 병원을 위한 과제 모색 토론회’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날 간호사들은 의료현장에서 장시간 노동, 교대근무, 폭언ㆍ폭행, 태움 등에 시달리는 현실을 호소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현장증언에 나선 홍슬아 경희의료원 간호사는 “두 달 전부터 노조에서 일하고 있지만, 10년 넘게 ‘데이-이브닝-나이트’라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을 유지했다. 교대근무에서 벗어난 지금도 잠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라고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홍 간호사는 “다수 간호사가 심각한 수면장애를 겪는다. 일주일 동안 3교대 스케줄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직종은 아마 간호사 뿐일 것이다.”라며, “한 교수는 외국에 다녀와도 시차적응하고 생체리듬을 맞추려면 며칠이 걸리던데, 일주일에 3교대하는 간호사들이 대단하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이어 “간호사들은 한 달간 짜여진 교대근무로 아파도 진통제를 먹어가며 근무할 수 밖에 없다.”면서, 간호사들의 과도한 업무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조옥희 양산부산대병원 간호사는 지금도 의료현장에서 간호사를 향한 폭언과 폭행, 성희롱이 만연하고 있다며, 가해자는 지도자격 박탈 등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지현 한양대의료원 간호사는 최근 언론을 통해 문제가 된 간호사 ‘태움’ 문제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물론 폭언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현장의 특성상 엄격하게 병원 교육을 시행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함도 있다는 것이다.

공 간호사는 태움 문화가 문제가 된 후 경력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에게 과거처럼 하나하나 짚어주며 가르쳐주지 않게 됐다며, 오지랖 넓게 다 지적하며 나쁜 간호사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2017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54개 병원 간호사 7,703명을 대상으로 갑질과 인권유린 실태조사를 한 결과, ▲공짜노동 ▲시간외근무, 회의, 교육 참석시 수당 신청 금지 ▲근무표 변경 및 휴가 사용 ▲휴게시간ㆍ식사시간ㆍ휴게 미보장 ▲태움, 직무 스트레스, 폭언, 폭행 ▲각종 행사 동원 ▲인권 침해 ▲부당한 업무 강요 ▲부서회비 또는 사비로 병원물품 구입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나 기획실장은 “5년차 이하 간호사가 전체 간호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이 확인됐다.”라며, “신규간호사의 높은 이직률로 인해 경력간호사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 이는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업무량 증가, 노동강도 강화, 태움과 직무스트레스 증가, 이직률 증가로 이어진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의사인력 부족으로 의사가 해야 할 업무를 PA간호사가 담당하고 있으며, PA간호사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PA간호사가 의사업무를 대행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상 명백한 불법인데, 현장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간호사가 PA로 빠져나감에 따라 경력간호사가 부족해지고 간호사 인력난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기획실장은 열악한 간호사 노동인권 해법으로 ‘환자안전병원ㆍ노동존중일터 만들기 4out 운동’ 전개를 제안했다하며, ‘태움ㆍ공짜노동ㆍ속임인증ㆍ비정규직 out’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용자에게는 ▲산별교섭 참가 ▲환자안전병원, 노동존중일터 만들기 협약 체결을, 정부에는 ▲보건의료분야 좋은 일자리 만들기 노사정 합의 추진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 ▲보건의료업종 노사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병원계도 간호사와 관련한 많은 문제에 공감하며, 정부에 근본적인 인력수급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은 “간호사는 3교대 근무와 밤근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직종으로, 타 직종에 비해 노동강도가 높을 수 밖에 없고 최근 더욱 심화된 간호인력난으로 장시간 노동환경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또한 인증 등 보건의료정책의 변화와 환자의 요구도가 갈수록 증가함에 따라 감정노동 피로도가 더욱 심화돼 간호사 태움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졌다.”라고 지적했다.

정 부회장은 이런 문제들은 특정 의료기관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근시안적인 인력수급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인력투입에 따른 적정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여러 원인 중 중요한 원인일 것이라며,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대책도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정 부회장은 “간호사 인권을 보호하고 일-가정 양립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간호인력 관련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 숫자 확충이 안 되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효과를 못 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1,000명당 면허 간호사 숫자가 OECD의 절반에 불과하는 등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정 부회장은 “인력에 대한 적정보상이 중요하다.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대책에서도 문제로 제기된 간호관리료 차등제를 개선하고, 야간근무 간호사 수당 지급 등 조건이 걸린 보상방안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현재 원가 보존률이 50%에 불과한 입원료 수가를 현실화해 간호사 채용이 재정부담이 안 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 부회장은 “인건비를 수가로 보상하기가 어렵다면 인력에 대한 직접보상이라도 해 줘서 안정된 인력 채용 동력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보건당국은 그 동안 간호인력 수급대책이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현장이 체감할 수 있도록 간호사 처우개선 종합대책의 세부 실행과제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3월 20일 간호사 처우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현장에서 피부로 체감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며, “보건의료노조와 간호계, 병원협회와 함께 시행계획이 잘 이행되도록 약속했고, 구체적 계획에 대한 MOU도 준비 중이다. 조만간 종합대책 발표내용을 실행계획 완비단계에서 추가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곽순헌 과장은 이어 “큰 대책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처우개선, 근무환경 개선, 인력확충 등이 최우선이라는데 병원계와 노동계 모두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병협은 정부의 근시안적 간호인력 대책을 지적했는데,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았다.”라고 인정했다.

병원현장의 근무인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간호대 입학정원 확대정책으로 일관해 온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면허자가 많이 늘어도 병원에 있다가 힘드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특히 나이가 들수록 3교대가 없는 학교 보건교사나 민간회사 등으로 빠져나가 병원 근무 간호사는 전체 면허자수의 50%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곽 과장은 “특히 1년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이 34% 가까운데 위험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신규간호사만 있어서는 환자안전이 담보될 수 없다.”면서, “정부 대책의 가장 핵심은 처우개선과 일하기 좋은 병원환경 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에 따른 경력직 간호사들이 계속 병원에 오래 근무할 수 있게 방점이 찍혀있다.”라고 강조했다.

처우개선 중 핵심은 간호관리료 산정방식을 기존에는 병상수 기준이던걸 환자수 기준으로 바꿨다면서, 병원계에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로 인해 병원의 추가수익금이 많이 생길텐데, 70% 이상을 간호사 처우개선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곽 과장은 “병원계도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력에 대한 보상을 늘렸을 때 중요한건 그 보상이 정확히 그 인력에 갈 수 있도록 하는걸 약속해줬으니 조만간 MOU 형식으로 공개적으로 대국민 발표를 하겠다.”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야간수당, 야간전담간호사 관리료 등도 수가개발이 완성되는 대로 발표할 계획이다.

그는 “종합대책의 상당 부분이 노조, 병원계, 간호계가 머리를 맞대고 이해하는 전제 하에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와야 해서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라며, “종합대책의 전반적 이행을 책임질 복지부 내 전담 TF도 하반기에 구성할 것이다. 간호간병서비스 진행방향도 핸들링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이행할 것이다. 기존과 달라진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도 계속 의원실과 논의중이라며, 병원계와 간호계도 논의에 함께 참여해 다 같이 이행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법안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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