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한 달이 됐지만, 내용이 법안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의료현장에서 혼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연명의료결정법이 의료현장의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이상적이어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를 줄이려고 시행된 법이 오히려 ‘연명의료 쓰나미’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인숙 의원(자유한국당)은 이 같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한 달, 제도장착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개선점으로 ▲서식 간소화 ▲가족 전원 합의: 가족범위 축소 ▲의식 없는 무연고자, 독거노인, 외국인 등에 대한 제한적 대리결정 제도 도입 ▲지정대리인 제도 도입 ▲DNR 제도화 등을 제시했다.

올해 2월 4일부터 3월 6일까지 연명의료중단등 이행 결정 유행 1,003건을 보면, 가족 전원 합의가 397명(39.6%)으로 가족 2인 진술 249명(24.8%)보다 많았다.

이 위원장은 “가족 전원 합의는 가족 2인 진술보다 더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인데, 현장에서는 오히려 더 많았다.”라며, 가족 전원 합의를 위해 가족 범위를 축소할 것을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또, 연명의료 관련 문화 조성 필요성을 강조하며,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 확립, 시설 확충 ▲죽음에 대한 의료인 교육과 의식 개선 ▲죽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임종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역설했다.

허대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반대는 90%에 달하지만, 실제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면서, 그 과정에서는 ▲환자, 가족 ▲의료진 ▲서식 ▲전산화 등의 원인이 있다고 전했다.

말기대상 환자 114명 중 의사가 환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경우는 14명에 불과하다며, 100명은 중간에서 가족이 거부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가족들은 왜 본인이 느끼고 있는데 굳이 임종기라고 말해 고통을 줘야 하느냐며 환자에게 말하는걸 반대한다.”라고 설명했다.

의료진의 결정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다른 나라는 모두 연명의료 결정 기준을 ‘terminal’로 통일하는데, 우리나라만 임종기/말기로 나눴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암은 비교적 결정이 쉽지만, 암 이외의 질환자는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면서 환자가 사망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말기/임종기 진단을 할지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허 교수는 서식이 복잡하고 법 자체가 모순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토론자들도 입을 모야 의료현장에서 법 적용의 어려움과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형욱 대한의사협회 KMA Policy 특별위원회 법제윤리분과 위원장(단국대 의대 교수)은 연명의료의 범위, 형사처벌의 범위, 가족의 범위,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범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환자나 환자 가족이 의사에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를 강제하는 것은 의료계약의 본질에도 부합하지 않고, 미국이나 독일에서도 환자나 환자 가족이 의사에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박 위원장은 “보건복지부의 법령 해석은 임상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응급환자의 경우에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이 배제된다는 측면만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복지부가 이러한 해석을 유지한다면 더 명확한 법령 해석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급박한 응급실 상황을 고려해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류현욱 대한응급학회 법제이사(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 환자들은 말 그대로 급성기 상태의 환자로, 이들은 연명치료의 중단보다는 연명치료의 시행 유보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류 법제이사는 이어 “연명의료의 중단결정 과정과 달리 연명의료의 시행 유보는 상대적으로 급박한 판단이 필요하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와 같이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발했다.

하지만 현행 법률에서는 연명의료의 중단과 유보에 대해 동일한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연명의료 시행의 유보가 필요한 경우에서 이 법의 입법취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연명의료에 해당하는 네 가지(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치료 중 심폐소생술 시행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다며, 기존에 통일되지 않은 상태로 병원에서 각기 사용하고 있던 DNaR 서식을 규격화해 법안 내용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류 법제이사는 또, ▲임종과정에 대한 정의 ▲환자의 의사 확인 과정 ▲기록의 단순화 등의 제도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재영 대한중환자의학회 간사(충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제한적인 법내용과 까다로운 법 절차를 법의 맹점으로 꼽았다. 이로 인해 의료인의 의료행위가 의학적 근거에서 법적 근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문 간사는 또, 의료현장과 동떨어진 등록사이트와 관리기관 인력 및 예산부족, 교육과 홍보의 우선순위 뒤바뀜 등으로 의료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등록사이트 가입에 16단계가 넘고, 본인 명의 휴대전화가 없으면 가입이 불가능하다며, 현재 등록사이트는 법 적용과 의료기관 전담 근무자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자 고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의료행위에 답을 정해두면 오류에 빠지고, 법적인 제약이 강화되면 왜곡된다.”면서,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대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가톨릭대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들이 혼란 속에 빠져 있다며, 법 시행 전처럼 DNR만 받고 있다고 전했다.

김 기획이사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이 법의 절차를 최대한 적용해보려 노력하는데 의사능력이 없는 환자들은 추정과 합의의 절차가 복잡해서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면서,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환자들은 그냥 예전처럼 DNR만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ㆍ등록한 환자만 입원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법은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지 않는 환자의 의사를 고의로 무시하고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의사와 가족의 범죄를 막기 위해 제정됐던 법이 아니므로 처벌조항은 삭제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악행은 기존의 법률로도 처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문화에서 잘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서구적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혼란과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어느 정도 정착된 후에 전면 시행하고, 그 전에는 중단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연명의료의 유보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연장선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환자에 대한 이 법의 적용 예외’가 명문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법률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이 존재하는 위헌성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김선욱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으로 형사처벌 규정이 완화돼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상 문제 등 헌법상 위헌문제를 해소했다고 평가하지만, 여전히 위헌성은 존재한다.”라며, 연명의료결정법의 입법취지인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배제된 가족 전원의 진술로 중단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제18조 규정을 거론했다.

김 변호사는 “더욱이 연명의료 관련 비용에 대해 국가적 지원이 부족하거나 열악한 상황이라면 연명의료와 관련된 비용에 따른 재산적 문제가 환자의 생명에 앞서 가족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현실적 결정요소가 된다는 안타까운 점에서 문제가 있다.”면서, “이와 관련된 위헌성 문제는 법개정을 통해 완전히 당해 규정을 삭제하거나 또는 연명의료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이뤄져 적어도 재정적인 문제가 연명의료 중단의 결정을 함에 있어 고려사유가 되지 않는 상황이 돼야만 해당 규정의 헌법적 정당성이 확보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환자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규정 중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로 확인을 하는 규정도 문제라는 것이다. 이 규정은 단서규정으로 2인 가족의 진술과 배치되는 내용의 다른 환자 가족의 진술이 있는 경우 환자의 의사가 번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 규정은 법적 안정성이 매우 결여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환자의 가족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 불일치에 대한 결과로서의 형사처벌을 담당 의사가 져야 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족 2인의 진술을 신뢰해 연명의료를 중단했고 그 결과 환자가 사망한 이후 다른 가족이 이의를 제기했다면 과연 담당 의사를 처벌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면서, “물론 실제 사건에서는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이는 형사처벌을 검사의 법리적 재량판단에 맡겨야 하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단서 규정 부분은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삭제하거나 문제될 사례를 명확히 규정해 2인의 가족 진술을 믿고 중단을 한 의료진에게 형사적 책임을 면책할 수 있는 내용의 명시적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당국은 이날 제기된 문제점들에 공감하며, 시스템 개선 등을 약속했다.

박미라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제도 개선에 현장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지 못했다.”라며, 의료계가 많이 지적한 전산시스템의 경우 발주해서 고도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의료계와 법조계, 윤리계 의견을 수렴해서 제도 개선을 하기 위한 절차에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과장은 이어 “의향서 작성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 공단도 준비가 덜 됐고, 민간단체 의료기관도 의항서 등록기관을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이지 않다.”라며, “의향서 작성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도록 충분히 작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예산 상황이 넉넉해진다면 적극적인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연명의료결정법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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