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대폭 줄었지만, 보건업은 여전히 사실상 무제한 근로가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특례업종’에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국회는 지난달 28일 본회의에서 노동시간 및 휴게시간, 법정 유급휴일, 휴일근무 할증률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근로시간은 주 52시간으로 축소되고 특례업종도 26개 업종에서 5개로 대폭 줄었지만, 보건업은 ▲육상운송업(노선버스 제외)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운송서비스업 등과 함께 ‘특례업종’으로 잔존해 이 같은 규정에서 제외됐다.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제시 특례업종 조정기준’에 따르면, 보건업은 ‘공중의 편의 및 안전도모와 직접적으로 관련’, ‘응급환자ㆍ응급수술 등 연장근로 한도내에서 대처가 곤란한 가능성 상존’, ‘업무특성상 규칙적 휴게시간 부여 곤란’이라는 사유와 해외사례를 근거로 특례적용을 유지하게 됐지만, 보건의료계 종사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병원의 장시간노동은 업무 특성 때문이 아니라 인력 부족 때문이라며, 진정한 환자안전과 보건의료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특례조항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료연대본부는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응급환자 및 응급수술, 규칙적 휴게시간 부여 곤란의 문제는 전반적으로 인력을 충원하면 59조 특례조항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2015년 노사정위원회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인 ‘근로시간 특례업종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연구’에서도 기존 실태조사결과와 해당 연구의 인터뷰 내용을 종합했을 때 1주 1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패턴은 인원충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현실에서 드러나는 장시간 노동은 위의 사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료연대본부는 또,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공중의 편의 및 안전도모와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특례를 적용하는 것을 꼽았다. 근로기준법 59조 폐기를 주장하는 이유도 시민의 안전도모이기 때문이다.

의료연대본부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위험한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을 계속 지적해왔다.”라며, “생명을 다루는 의료현장에서는 한 순간의 실수가 위험천만한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군다나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 자신이 건강을 잃고 과로사 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상황에서 ‘공중의 편의 및 안전도모’를 위해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한다는 것은 노동자는 안전을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병원들이 간호사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간호사 면허증을 보유한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동조건이 열악해서 사직률이 높기 때문이다.”라며, “오히려 병원들이 인력을 대폭 늘려서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면 인력 문제도 해결하고 의료서비스의 질도 개선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서는 인력을 늘리기보다는 기존 인력이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 저렴하기 때문에 59조 특례조항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병원계에서는 시간외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59조는 병원의 수익 보장에 핵심적인 법 조항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료연대본부는 “결국 국회는 환자와 노동자의 안전을 버리고 병원의 수익보장을 선택한 셈이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현장의 인력이 충분하고 노동조건이 나아진다면 더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항에 대한 즉각적인 재논의와 함께 예외 없는 모든 업종의 특례적용 폐기를 요구한다.”라고 강조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지난달 27일 성명을 통해 “병원의 장시간노동은 업무 특성 때문이 아니라 인력 부족 때문이다.”라며, “보건업 노동시간 특례업종 유지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맹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에는 장시간노동이 횡행하고 있는데, 이는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과 직결된다.”라며, “더군다나 인력부족으로 밥 먹을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병원노동자들의 장시간노동은 의료사고와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병원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으로 묶어두는 것은 병원노동자들에게 환자안전와 의료서비스 질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장시간노동을 강요하는 현재의 인력운영체계를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이어 “병원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지 않는 것은 병원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탁상정책의 전형이다.”라며, “병원은 상시적인 업무의 특성상 초과근로 대상사업장이 아니고, 특수한 경우에도 교대근무제, 당직근무제, 콜제 등이 운영되고 있어 장시간 근로가 발생하지 않는다. 병원의 장시간노동은 업무 특성 때문이 아니라 인력부족 때문에 발생한다.”라고 주장했다.

병원의 장시간노동은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담당하게 하거나 많은 업무를 하게 하고, ▲충분한 적응기간이나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신규인력을 곧바로 투입하고, ▲이직률이 높아 숙련인력이 부족하고, ▲충분한 인력충원 없이 각종 회의ㆍ교육ㆍ행사ㆍ평가준비 등 엄청난 업무를 감당하게 만들고, ▲각 직종간의 업무 분장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각 직종의 고유업무를 타 직종이 대행하는 등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처럼 병원의 장시간노동은 업무특성상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인력 부족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에 보건업을 노동시간 특례대상업종으로 유지할 명분이 없다.”면서,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면 보건업을 노동시간 특례대상업종에서 제외해도 아무런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보건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근거로 ‘불가피한 경우 의사가 아픈 환자를 팽개칠 수 없지 않으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들의 업무상 상시적으로 장시간노동이 요구되지는 않으며, 장시간노동이 용인돼서도 안 된다.”라고 역설했다.

의사들의 살인적인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공의특별법도 제정됐지만, 의사들의 장시간노동이야말로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충분한 의사인력 확보가 해답이지, 의사들에게 장시간노동을 강요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 유지가 해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업을 근로시간 특례대상업종으로 묶어둬야 할 필요성과 관련해 응급상황을 예로 들지만, 응급수술이나 장시간이 소요되는 수술 등 응급상황의 발생으로 인해 연장근로가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면서, “일반 수술은 대개 통상근무시간 내에 수술시간을 예약해놓기 때문에 연장근로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응급수술의 경우에도 응급수술에 대비한 수술실 당직근무자와 저녁번근무자가 있고, 주말이나 휴일의 경우 콜당직제까지 가동하기 때문에 응급수술로 인한 연장근로 발생하는 경우는 실제로는 극히 드물다고 전했다.

다만,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사고, 지진이나 신종플루, 메르스 같은 긴급 재난 등 특수한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이유로 보건업을 일상적인 특례적용사업장으로 묶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러한 긴급재난의 경우에는 ‘근로시간 특례제도’가 아니라 ‘긴급재난시 근로시간특례’ 규정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보건업은 상시적인 초과근로 대상사업도 아니고, 특수한 경우에도 장시간근로를 발생시키지 않는 교대근무제, 당직근무제 등이 운영되고 있으므로 보건의료산업을 노동시간 특례대상업종에 묶어둘 이유는 없다.”라며, “보건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으로 계속 유지할 경우 인력부족으로 인한 병원내 장시간노동을 악용하고 방치하는 핑계거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보건업은 업무특성상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업종이 아니므로 노동시간특례업종으로 유지할 이유가 없다.”면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무제한 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시간 특례업종제도 자체를 전면 폐기해야 한다. 노동시간특례업종 축소가 아니라 무제한 노동을 강요하는 노동시간특례제도 폐기가 해답이다.”라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내 장시간노동 근절운동은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운동이다.”라며, “오는 2020년까지 노동시간을 1,800시간대로 단축하기 위한 로드맵에 따라 2018년부터 병원내 장시간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시간외노동 줄이기운동을 전면화하고, 시간외노동을 줄이기 위한 인력확충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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