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포커스뉴스 칼럼/김동희 변호사>

연명치료 중단 한 달, 입법취지와 현실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 시범기간을 마치고 올해 2월 4일 본격 시행됐다.

그러나 연명의료법은 현장을 반영하지 못한 조건들을 달아 오히려 법 시행 전보다 환자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존엄사 논쟁은 헌법 제10조에서 천명한 인간의 자기운명결정권에 따라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삶을 포기하는 모든 선택을 존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오랜 사회적 합의와 타협에 따라 ‘어떠한 조건에 이르렀을 때 죽음의 선택을 용인할 것인가?’ 하는 기준을 만들게 된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임종과정에 있는 자, 말기환자에게 적극적 치료를 포기할 수 있는 ‘소극적 존엄사’를 인정하며 기준과 절차마련을 위해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들었다. 소극적 존엄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연명의료법의 시행 전 의료현장에서는 소생술 포기 문서인 DNR에 가족 모두의 동의를 받아 치료를 중단했으나, DNR은 병원에서 만든 문서여서 법적 효력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연명의료법으로 마련된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의향서가 좋은 대안이 되기를 모두가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환자측과 의료진 모두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시범사업 시행 시작으로부터 한 달 동안을 기준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2,197건이 등록됐지만 연명의료계획서는 고작 11건이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작성해야 할 서류가 많은데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작성해야 하는 등 절차도 까다로워서다.

만약 연명의료계획서같은 서류가 없다면 담당의사는 환자나 가족에게 연명치료 중단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그러나 우리나라 정서상 말기환자에게 사망이 임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환자의 의식이 없어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없으면 담당의사 및 다른 전문의가 가족관계증명서를 대조해가며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만약 환자의 의식도 없고, 가족도 없는 무연고자라면 연명치료 중단 자체가 불가능하다.

절차를 엄격히 지키지 않고 연명치료중단을 시행하면 담당 의료진은 형사처벌에 자격정지까지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병원에서는 법 시행 전 소생술 포기 문서 DNR을 이용할 때보다 연명치료 중단을 돕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도 법 시행 전보다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앞서 밝힌 사실과 같이 연명치료 중단은 사회구성원들의 끝없는 논의와 심사숙고를 거쳐 결정된 사회적 합의다.

아직 모든 절차가 완벽하게 정립된 것도 아니며,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기 위한 조건과 방식은 합의에 따라 앞으로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법을 만들 때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더라면 하는 큰 아쉬움이 있지만 이 법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시범단계에 있다.

더 많은 고민과 논쟁 끝에 결국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의료현장을 반영한 절차와 조건들을 마련해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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