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긴급한 재난상황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재난에 특화된 의료인력의 양성과 교육 및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재난현장에서 대부분 민간으로 구성된 의료진은 재난의료지원을 ‘자원봉사’로 인식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많아 책임부여와 역할 수행 보장에 한계가 있는데, 재난의료는 ‘자선’이 아닌, 체계적인 제공 시스템 하에서 이뤄져야 하는 필수 의료영역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장 김학용 의원과 보건복지위원회 윤종필 의원(자유한국당)은 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의료인력의 재난대응,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정현수 세브란스병원 재난의료교육센터장은 현재 국가 재난의료지원단 교육과 훈련의 제한점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 재난의료지원팀(DMAT)에 국한된 교육 대상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실제 상황시 현장 파견에 제한이 있으며, 상급병원 위주 교육과 지역사회 의료인 배제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특수재난에 대한 교육이 부재한 것도 문제다. 복합성 재난에 대한 대비가 미비하고, 적합한 교육도구나 모달리티 사용이 제한적이다.

정 센터장은 “표준화된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시뮬레이션 교수법의 전문성 부족과 1회성 교육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강사의 표준화를 통해 일관된 교육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 센터장은 민간 정부 협력모델로 행정안전부와 현대차 정몽구 재단, 세브란스, 재난의료 교육팀, 재난의료지원 및 대응사업팀이 함께 하는 ‘재난대응 의료안전망 사업단’이 있다고 소개했다.

해당 사업단은 맞춤형, 멀티모드, 찾아가는 교육을 통해 재난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재난의료 교육을 진행한다. 특히 ‘국제의료시뮬레이션학회’의 인증을 획득함으로써 전문센터로의 국제적 인증을 받았고, 표준화된 프로그램 교육과 평가를 구축하고 있다.

정 교수는 국가 공인 프로그램을 통해 공인 자격증을 부여하고, 재학습과 재평가, 재교육을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또, 교수자 개발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 교육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교육의 질이나 결과를 평가하는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직역별 맞춤화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 의료를 구성하는 의료인 교육 대상자를 확대 적용하고, 특수재난(복합성재난) 대응 교육도 실시해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전문센터를 활용해 교육센터를 확대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이고, 민간-정부 협력 모델 활성화 및 유관 정부기관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 등 예산 확보 필요성도 역설했다.

이어 발제를 진행한 신혜경 한국재난간호사회장도 병원 내 재난훈련 이외 재난대응관련 교육 내용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의료인 대상 재난교육 발전을 위해 ▲재난교육 이수 의료인력 관리: 법적ㆍ제도적 체계 구축 ▲의료인 대상 재난교육 표준화 ▲의료인이 주축이 된 지역사회 팀별 교육 등을 제안했다.

패널토론에서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재난에 대비한 의료인력 훈련과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의료인력의 재난대응에 있어 개선사항으로 ▲책임성 확보 ▲실질적 대응이 가능한 교육ㆍ훈련 프로그램 마련 ▲재난의료기관 및 재난의료인력에 대한 보상과 지원 ▲지진 등 초대형 재난에 대한 대응체계 구축 등을 꼽았다.

특히 윤 센터장은 “재난은 드문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특정 영역에서는 평시에도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공공보건의료기관과 재난의료 전문가가 부족하고 경험이 축적되지 않아 효과적인 재난의료 대응체계 구축에 불리하다.”면서, “재난의료는 ‘자선’이 아닌, 체계적인 제공 시스템 하에서 이뤄져야 하는 필수 의료영역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홍은석 울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간호인력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하며, 병원 평가에 재난대응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DMAT’를 만들었는데, 의사 1명, 행정 1명, 그리고 간호사는 2명이나 들어간다.”라며, “간호사가 가장 핵심인데 법적 지원도 안 되고 있고 제도가 미흡한 것 같다. 좀 더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면 간호사가 재난 현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그 중심이 의사에서 간호사로 많이 넘어가 있다면서, 법을 개정하거나 제도권 내로 들어오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대해 동국대학교 응급의학과 교수는 “다양한 형태의 재난대비를 위한 여러 기관의 다양하고 체계적인 재난안전교육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국내 재난교육과정과 그 다양성은 재난에 대응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라며, “특히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환자 등 상대적 취약계층에 대한 공동대응 교육은 아주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재난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이 필요한데,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지진 발생 당시 가마이시현의 히가시중학교 학새 222명이 인근 우즈노마이초등학교 학생 361명의 손을 잡고 신속하게 대피해 인명피해를 막은 ‘가마이시시의 기적’ 사례로 보듯, 조기교육과 협업체계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재난유형이나 피해대상의 연령, 개별 건물마다 지니고 있는 특성에 따라 피해유형도 다양하기 때문에 해당 환경을 안전사고와 연계해 이해하고, 해당 지역이나 피해 당사자가 지니고 있는 역량을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다.”라며, “특히 자연재해, 지진과 같은 재난유형은 시설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개별 건물이 지니고 있는 적절한 안전교육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지진발생시 해당시설의 물리적 특성을 우선적으로 이해한 후 예방활동 및 피난활동을 수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안전교육 동영상을 보면, 지자체, 공공기관에 대한 사전통보 없이 불특정한 시간에 대피, 대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실제 재난발생 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연습한 안전교육에 대한 실효성을 실제와 같은 훈련을 통해 주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러한 점검을 통해 안전사고 대처능력이 부족한 일반인과 의료인들에 대한 특별교육 등을 실시할 수 있으며, 스스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도 수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제언했다.

또한 이러한 안전교육은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개별 단위의 안전교육을 넘어서 인근 관공서, 학교, 지역주민 등과 함께 하는 지역단위의 안전교육 커뮤니티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인근 지자체들과 통합안전교육을 실시해 안전사고예방 및 안전교육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함과 동시에, 협력을 통한 신뢰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교육 주체는 다양화돼야 하지만, 통일성 있는 교육 커리큘럼이 필요하다.”면서, 재난교육의 커리큘럼에 포함돼야 할 내용으로 ▲안전한 피난환경 조성을 위한 예방활동 ▲개별환경을 고려한 피난계획 수립 방안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안전교육 ▲취약지를 위한 맞춤교육 등을 꼽았다.

한편, 보건당국은 발제자가 표준화된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과 관련, 다양한 민간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강민구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사무관은 “획일적인 통합교육을 정부 주관으로 만드는게 바람직할까 의문이다.”라며, “다양한 교육기회 제공되는 것은 독려할 수 있는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교육을 통해 여러 영역 근무자들의 재난대응 역량이 키워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강 사무관은 또, 국가 재난의료교육이 권역응급의료센터 재난의료지원팀에만 국한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아직 다른 인력까지 우선순위가 미치지는 못했다며, 교육과정을 발전시키고 세부화하는 등 다양화 방안을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현장의료를 진행하며 고민스러운 부분으로 지휘체계 미흡을 꼽으며, 평소에는 얼굴 볼 일 없다가 재난이 터지면 출동해서 모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대오를 유지하며 재난대응을 할 수 있을까가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강 사무관은 “현재는 보건인력 중심인 교육과정을 현장에서 자주 보는 소방 공무원, 경찰, 필요하다면 군인력까지 함께 교육하는 통합교육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라며, “이론적 교육 뿐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도 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재난 현장의 감염병 관리 중요성도 강조됐다.

조은희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장은 “일본은 지진 시 대피소의 감염관리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최근 포항지진부터 대피소 감염병 관리에 대한 교육 필요성이 정립되기 시작됐다.”라고 지적했다.

조 과장은 이어 “일본 대지진 때는 대피소만 500개 이상이었다. 장기적으로 가면 감염병이 문제가 된다. 당시 시스템이 없으니 군부대를 이용해서 모니터링을 하더라.”면서, “감염 관련 의료인력도 문제이지만, 다양한 분야의 인프라와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특히 교육과정의 다양성도 중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스킬’은 최고로 마이크로한 트레이닝은 잘 돼 있지만, 병원이나 시설에 문제가 생길 경우의 매뉴얼은 중하위 수준이고, 마크로한 개념인 지역이나 국가에 문제가 발생하면 더욱 대응능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에볼라 당시 미국은 군부대 등 큰 훈련소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자운대나 간호사관학교에 마련한 것이 전부였다.”라며, “국가적으로 마크로에 대한 훈련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행정당국은 재난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용균 행정안전부 재난대응정책과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재난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제천화재 때도 싸게 건물을 짓기 위해 ‘드라이 비트’를 허용해 결국 안전을 위협했다.”라며, “사회 전반적으로 모든 활동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재난에 대한 투자를 비용이 아닌 필요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과장은 이어 지역사회와 국가 간 협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33종의 표준재난유형이 있는데, 재난이 발생하면 각각 매뉴얼이 있는 370개 기관과 엄청나게 많은 민간단체가 순간적으로 투입되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평상시 표준화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일선 대응기관인 지자체, 군, 경찰, 소방, 해경 등 의료인력과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의 표준화, 훈련ㆍ협업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행안부가 만든 표준화된 재난협력체계 틀을 공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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