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열린 의사들의 대규모 집회가 막을 내렸다. 주최 측인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 도심에서 의사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는 궐기대회 후 “의료계와 조속히 만나 진지한 자세로 협의하겠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참여자들은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며 만족해 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대외적으로 분명하게 밝혔고, 여론의 이목을 끌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집회였다고 자축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궐기대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주최측 기대 못미쳤지만 올 만큼은 왔다
“주최 측은 3만명이 왔다는데?”

“경찰은 7,000명이라잖아. 도대체 몇 명이 온거야?”

도심 집회는 단체의 조직된 힘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개최하기 때문에 참석자 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석자가 많을수록 더 큰 이목을 끌 수 있다.

의사협회 비대위는 추가 집회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첫 집회 참석자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 2차 집회가 열렸을 때 집회 규모의 추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집회에서 3만명이 모이고 두번째 집회에서 2만명이 모이는 것 보다는, 처음에 1만명이 모이고, 그 다음 1만 5,000명이 모이는 집회에 더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집회 전 비상대책위원회는 최소 3만명에서 최대 5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비대위는 집회 참여 인원을 3만명으로 추산해 발표했다.

경찰은 참여 인원을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다. 다만, 언론에서 개별적으로 확인한 결과, 경찰은 참여 인원을 7,000명에서 7,500명으로 추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명확한 근거에 의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아 본지는 집회 참여 인원을 직접 확인했다. 참가자들이 밀집해 있는 곳의 외곽을 두차례 돌며 파악한 인원은 1만여명이었다.

집회 현장은 연단 앞, 천막 주위, 도로 집결지로 구분된다.

연단 앞에는 약 300여명의 회원이 모여 있었다.

천막 주위의 경우, 19개의 천막에 각 5명에서 10명 가량의 회원이 있었다. 대략 200여명으로 파악됐다.

주최 측은 27개의 천막을 준비했는데, 2개 천막은 운영본부, 6개 천막은 기자석으로 운영했으며, 19개 천막을 회원 안내 및 응급의료지원 용도로 활용했다.

도로 집결지에는 약 9,000여명의 회원이 밀집해 있었다.

가장 앞 줄은 가로로 34명, 가장 뒷 줄은 가로로 16명이 나란히 서있었고, 세로 줄은 385명이 서있었다. 뒤로 갈수록 가로 폭이 줄었다.

본지가 집계한 참가자 수 1만여명은 경찰의 집회 인원 추산 방식에 대비해 봐도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의사들이 밀집해 있던 도로 집결지 면적은 가로 18m(6차선 기준), 세로 275m였다. 4,950㎡는 대략 1,497평이다.

경찰은 1평 당 8명에서 10명이 서있을 수 있다고 셈한다. 1,497평에는 8명 기준 시 1만 2,000명, 10명 기준시 1만 5,000여명이 서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1,497평에 의사들이 균등하고 조밀하게 위치했을 때 가능한 수치다. 현장에서 의사들이 6개 차선에 자리한 부분은 앞 열 100여줄까지였고, 그 뒤로는 천막과 차량이 한 개 차로를 차지하고 있어서 의사들은 5개 차로에만 위치해 있었다. 또, 대열 사이마다 빈 공간이 다수 존재했다.

집회 5일 전 의사협회가 16개 시도의사회로부터 보고받아 집계한 집회 예상참석자 수는 9,000여명이었다.

또, 경찰에 문의한 결과, 비대위도 집회 신고시 예상 참석 인원을 1만명으로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즉, 의사들은 대외적으로는 3만명 참여를 표명했으나, 내부적으로는 1만명 참여를 예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대외적으로 밝힌 숫자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내부적으로 기대한 수 만큼은 참여한 셈이다.

▽의사들의 대국민 설득은 쉽지 않았다
이번 집회는 의사협회 산하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비대위는 국민건강을 지켜내겠다는 뜻으로 이름에 ‘국민건강수호’를 붙였다.

연단 위에 오른 연사들은 문재인 케어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고 의사의 진료행위를 위축시켜 결국 환자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장에 모인 의사들은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가 행복하다’거나, ‘환자들은 정해진 만큼만 치료받게 된다’, ‘재정파탄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의사들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이 결국은 국민 개개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반인은 많지 않았다. 

거리행진 당시 일부 시민 사이에선 ‘밥그릇’이라는 수근거림이 들렸다.

특히, 포털에 의사들의 집회 상황을 전하는 뉴스가 공개되자 부정적인 댓글이 쏟아졌다.

의사들을 탓하는 댓글이 가장 상단(베스트글)에 노출됐고, 찬반 비율은 9대1에 가까웠다.

이에 대해 한 의사는 “의사들에게 여론은 항상 부정적이었다.”라며,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의사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라고 희망했다.

여론이 부정적이라고 해도 여론을 끌어오기 위한 노력은 쉬지않고 해야 한다. 저수가 개선은 여론을 등에 업지 않고서는 실현하기 어렵다.

비대위가 대국민 홍보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화 요구한 복지부... 비대위 향후 행보는?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은 지난 11월 17일 서울시의사회 비대위 발대식에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는 마지막 탄환인데 너무 빨리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라며 바닥 민심을 전했다.

대의원회 임수흠 의장도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0일 집회를 하면 투쟁이 끝난 것처럼 이야기 하는 분들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들의 발언처럼 회원들 사이에서는 ’궐기대회에는 참석할 테니 이후에는 협상을 잘해서 결과를 얻어오라’는 정서가 있는 게 사실이다.

임수흠 의장은 이 같은 정서를 경계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임 의장은 “궐기대회는 투쟁의 끝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라며, “궐기대회에서뿐만 아니라 궐기대회 이후에도 의사들이 얼마나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냐에 따라 의사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궐기대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궐기대회를 마친 현 시점에서 의료계가 실질적으로 얻은 건 없다.

굳이 유일한 성과를 꼽자면, 집회 후 복지부가 “의료계와 조속히 만나 진지한 자세로 협의하겠다.”라고 밝힌 것이다.

다수 언론에서 복지부가 빠르게 손을 내민 것은 ‘이례적’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복지부는 궐기대회 전에도 “의료계와 만나 협의하겠다.”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궐기대회 전과 후 복지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의료계와 협의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했을 뿐이다.

하지만 복지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해도 주변 상황은 달라졌다. 전국의 의사 1만여명이 서울 도심에 모여 문재인 케어의 문제점을 목청껏 외친 직후이기 때문이다.

당장 여론을 의사 편으로 끌어오진 못했지만 사회에 “의사들이 왜 거리에 나섰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집회 전후 언론에서도 의사들의 주장을 다뤄주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문재인 케어의 재정 부분을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포털에서도 문재인 케어에 의문을 제기하는 댓글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비대위는 집회를 발판으로 문재인 케어가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입장이다.

이필수 비대위원장은 1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복지부가 언론을 통해 만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하지 않고 비대위에 정식으로 대화를 요청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요청이 온다면 비대위에서 만나볼 용의가 있다. 비급여 전면 급여화에 대해 의료계와 논의할 자세가 돼 있고, 기한을 정하지 않을 경우 대화에 나서겠다.”라고 원칙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의사들은 이번 집회에서 단합된 힘을 보여줬고, 의사들의 정서도 표출했다.”라며, “복지부는 의료계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의사 사이트에서 격려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또,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이 다음 집회에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라며, “10일 궐기대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부가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계속 집회를 열어 목소리를 내겠다.”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이 위원장은 “오는 23일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대표자 회의와 2차 궐기대회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라며, “대표자 회의는 1월 중순, 2차 궐기대회는 빠르면 1월말 개최를 고려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의사들이 동의하지 않는 문재인 케어는 성공할 수 없다. 우리에겐 투쟁 로드맵이 있다. 우리 계획대로 일관되게 밀고 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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