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1일부터 28일까지 18일 동안 진행된 서울 지역 구의사회 정기총회가 모두 끝났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일반회원의 참여가 저조했다. 현장을 채운 참석자는 대부분 원로나 전ㆍ현직 임원이었다. 상당수 의사회가 지난해보다 감액한 예산을 편성할 정도로 의사회 살림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구의사회 회원수 변화와 총회 참석자수, 예산 변동사항, 시의사회 건의안을 통해 지역의사회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①회원수 부익부 빈익빈 지속
②강남의사 76만원ㆍ용산의사 98만원
③“회장님 뜻대로 하소서…”
④예산 빠듯 ‘올해도 허리띠 조였다’
⑤개원의 희망 1위, 노인환자 정액 인상
⑥구의사회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개원의사의 희망사항 1위는 무엇일까. 구의사회가 올해 정기총회에서 다룬 상급단체 건의사항을 살펴보면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의사회 반모임에서 일반회원들 사이에 논의된 안건이 상임이사회와 전체이사회를 거쳐 정기총회에서 상급단체 건의사항으로 최종 채택되면, 이 안은 서울시의사회로 상정된다.

서울시의사회는 구의사회 건의안건과 집행부ㆍ의장단 건의안건을 심의한다. 이때 원안채택, 흡수통합, 자구수정 등을 거쳐 의협 건의안건과 집행부 수임사항으로 나눈다.

의사협회로 상정된 안건이 분과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되면 의협 집행부는 이 안을 중심으로 회무를 수행한다.

현장의 요구사항이 중앙회로 전달되기까지 절차가 다소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중앙회에서 최종 채택되면 그만큼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물론 논의 과정에서 객관성이 결여된 사안과 수년 간 반복적으로 제기된 안건은 폐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현안은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해 채택한다.

▲서울 25개 구의사회가 올해 정기총회에서 서울시의사회 건의사항으로 채택한 사안
▲서울 25개 구의사회가 올해 정기총회에서 서울시의사회 건의사항으로 채택한 사안

▽노인환자 외래정액구간 상향 조정
올해 가장 많이 안건으로 올라온 사항은 ‘65세 이상 의료보험 수가 정액제를 1만 5,000원에서 2만원으로 상향 조정해 달라’였다. 이 건의사항은 8곳에서 건의사항으로 채택했다.

지난 1월 새해 벽두부터 인상된 수가로 개원가가 들썩였다. 올해 1월부터 2% 인상된 수가가 적용되면서 65세 이상 고령환자 진료 시 외래 정액구간 상한액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환자의 경우 건보공단에서 지급하는 돈과 환자본인부담금을 합한 금액 기준으로 1만 5,000원을 외래 정액구간 상한액으로 적용한다.

1만 5,000원 미만일 경우 환자는 1,500원을 내고, 1만 5,000원 이상일 경우 4,500원 이상(요양급여비용 총액의 30%)을 내야한다.

개원가는 지난해까지 법적으로 보장된 1만 4,000원대 후반 청구 한도 내에서 최적의 진료가 가능하도록 진료 내용을 조합해 환자를 치료해 왔다.

하지만 수가 인상으로 인해 기존 조합법으로 치료를 했다가 외래 본인부담금 상한액을 넘겨 환자와 실랑이를 벌이게 된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해 개원의사들은 최적의 진료를 포기하고, 변경된 상한액에 맞는 진료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기존 진료를 고수하고 환자와 실랑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의원의 경우 올해부터 65세 이상 노인환자의 외래정액 상한액이 현행 1만 5,000원에서 2만원으로 상향 조정돼 개원가의 박탈감은 더 크다.

▽의료전달체계 확립, 병ㆍ의원 기능재정립 시급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7건으로 두번째로 많은 건의안건으로 기록됐다.

이 안건은 해마다 단골손님처럼 채택되고 있다. 현재 감기환자 중 상당수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고,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관리 가능한 고혈압ㆍ당뇨 환자들도 대형병원을 고집한다.

소위 빅4로 불리는 대학병원 외래도 감기환자수가 세~네번째로 많을 정도로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절실한 상황이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서는 진료의뢰 및 회송 제도를 비롯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진료의뢰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무엇보다 병원급은 입원환자 위주로, 의원급은 외래환자 위주로 환자를 진료하도록 기능이 정립돼야 한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도 병ㆍ의원 간 의견 차가 커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안건 어때요? 눈길 끈 건의안건
송파구의사회는 의사협회 회장과 임원의 무급 근무안을 채택했다.

송파구의사회는 적지 않은 회원들이 의협이 무능하고, 회원들 돈만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한다며, 차라리 이 기회에 무급화를 선언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면 회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의사협회는 의사협회의 이익 말고, 회원의 이익을 대변하라는 안건도 채택했다.

송파구회원들은 이 안을 채택하면서 현재 의협 무용론을 넘어 의협 해악론이 거론되고 있다며, 지금처럼 의협이 면허갱신제를 통한 회비 징수율 제고와 같은 일에 열중한다면 회원들은 의협에 등을 돌릴 것이다고 지적했다.

성북구의사회는 의료사고 시 의사면책권을 입법안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최근 의료분쟁조정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의사협회는 23년 숙원사업을 해결했다고 홍보중이지만 일선 회원들은 소모적인 소송이 늘고, 이로 인해 비용 증가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이 분만 과정으로 한정돼 낮은 진료수가로 정치적 이익을 보고 있는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는 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무엇보다 의료사고를 우려해 의사들이 수술을 꺼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건의안건 양보다 정책 반영 관건
올해 구의사회 건의안건은 모두 146건이다. 상급단체 논의과정을 거치면 실현 가능성이 있는 안건 위주로 소수만 채택될 것이다.

다양한 논의 단계를 통해 거르고 걸러진 의료계 현안 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공허한 메아리만 울린 채 사장되는 안건들이 많다.

하지만 일차의료 활성화나 의료전달체계 확립처럼 수년간 요구해 온 안건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료단체 간 의견이 상충돼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게 될 지 더 두고봐야겠지만 국가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의료정책이 입안될 때 의료계의 요구가 반영되기 위해서는 의협 집행부의 리더십과 의료계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집행부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작은 목소리라도 귀기울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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