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차원에서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체계를 갖추기 위해 ‘공공제약사’를 설립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지난 6월 13일 발의한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 8월 23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하지만 환자단체를 제외한 정부, 국회, 업계 모두 부정적 검토의견을 내놨고, 야당도 반대하고 있어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공공제약사 논의 배경 살펴보니…
2003년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SARS),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5년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 등 신종감염병의 지속적인 발병과 유행, 생물테러 위험 등 공중보건위기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국가차원의 대응체계 정비와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또한 의약품 해외 원조의 확대 등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의 역할도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의약품 생산과 공급은 전적으로 민간과 시장에 맡겨져 있어 백신, 퇴장방지의약품 및 희귀의약품 등 환자에게 필수적인 의약품이 시장상황이나 국제적 환경에 따라 공급이 중단되거나 거부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해외 원료수급의 차질로 인한 공급 불안정이나 채산성 부족을 이유로 민간영역에서 생산을 포기해 의약품 공급이 중단되는 사례 뿐 아니라, 희귀질환 의약품과 같이 수요가 적은 의약품의 경우 생산ㆍ수입이 되더라도 고가로 유통돼 의약품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최근 7년간 수익성을 이유로 공급이 중단된 의약품은 전체 공급중단 의약품 583개 중 248개(42.5%)에 이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퇴장방지의약품을 지정해 의약품의 원가를 보전하거나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해 긴급수입 조치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생산ㆍ수입ㆍ공급ㆍ중단보고대상 의약품 제도를 통해 공급독려 및 신속허가변경 등의 행정지원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의약품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예를 들어 민간 제조소에 위탁생산을 의뢰하더라도 해외원료수급 문제로 인해 생산이 불가능하고,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제약사가 생산을 중단한다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권미혁 의원은 “이에 따라 국가가 공공제약사를 통해 의약품 분야의 시장실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국내ㆍ외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상황은?
종전에 우리나라는 국가필수의약품의 개념이 법적으로 정의되지 않았고,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한 국가차원에서의 안정적인 공급 및 관리체계가 부재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약사법’ 개정으로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한 정의 규정이 마련되고,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가필수의약품의 안정공급 종합대책의 수립ㆍ추진주체로 규정됐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소유 제약 인프라 현황자료: 보건복지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소유 제약 인프라 현황자료: 보건복지부

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설치된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에서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전문가단체의 협의를 거쳐 국가필수의약품이 지정되고, 국가필수의약품의 수급상황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등 국가필수의약품 관리체계가 구축ㆍ운영 중이다.

‘약사법’ 상 ‘국가필수의약품’은 질병 관리, 방사능 방재 등 보건의료상 필수적이나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으로서, 보건복지부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 지정하는 의약품으로 정의된다.

2017년 8월 현재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ㆍ관리되고 있는 의약품은 총 126개 품목으로, 이 중에는 ‘약사법’에 따른 희귀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 등 약 30여 개 품목이 포함돼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필수예방접종 백신(20개) 등 정부 정책 목적상 필수적인 의약품 71개와, 응급 의료상 필요한 해독제(21개) 등 의료 현장에서 필수적인 의약품 55개로 구성돼 있다.

공공제약사 설립ㆍ운영 해외사례자료: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 보장과 국영제약사의 역할, 보건경제와 정책연구 제21권 제1호(2015)
공공제약사 설립ㆍ운영 해외사례자료: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 보장과 국영제약사의 역할, 보건경제와 정책연구 제21권 제1호(2015)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현재 공공제약사(국영제약사)를 설립ㆍ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주로 중위소득국가이다.

이러한 국가들이 공공제약사를 설립해 의약품의 생산ㆍ공급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유는, 의약품 생산 기반이 취약해 의약품의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은 반면 상대적으로 의료보장체계가 취약해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공공제약사 설립을 통한 의약품 직접생산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OECD 주요국가를 살펴보면, 미국은 국가필수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의약품공급중단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캐나다의 경우 의약품 공급부족 전담조직 구성을 통한 정보공유 및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영국은 NHS의 공급중단의약품 목록 제공 및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일본은 불채산 의약품 제도 및 필수의약품 포상제도 운영 등의 정책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OECD 주요국가 필수의약품 공급 관련 정책수단자료: 보건복지부출처: 필수의약품의 안전한 수급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 마련 연구(고려대 산학협력단, 2013)
OECD 주요국가 필수의약품 공급 관련 정책수단자료: 보건복지부출처: 필수의약품의 안전한 수급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 마련 연구(고려대 산학협력단, 2013)

▽공공제약사 설립 골자로 하는 제정안
권미혁 의원이 발의한 제정안은 국가가 국무총리 소속으로 ‘국가필수의약품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국가필수의약품 공급계획을 수립하고, 각 부처에 분산돼 있는 의약품 생산 인프라를 통해 위탁생산하거나 ‘공공제약사’를 통해 국가필수의약품을 생산ㆍ공급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법률안의 적용대상이 되는 ‘국가필수의약품’의 개념을 정의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필수의약품의 원활한 공급과 공중보건위기의 효과적 대응을 위해 노력할 것을 책무로 규정했다.

또, 국가필수의약품에 관한 컨트롤타워로 국무총리 소속의 국가필수의약품관리위원회를 설치해 국가필수의약품관리의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는 국가필수의약품 개발연구, 수요ㆍ공급 예측 등의 사업을, 보건복지부장관은 국가필수의약품 관련 통계ㆍ조사 및 정보제공 사업 등을 수행하도록 했다.

아울러 이 법에 근거해 ‘공공제약사’를 설립하고, 공공제약사로 하여금 국가필수의약품의 생산ㆍ수입ㆍ유통ㆍ판매, 정보제공, 의약품의 강제실시, 국가필수의약품의 수요 및 관리에 관한 조사 등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국가가 공공제약사의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재원(보조금, 출연금, 국공유재산의 무상대여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권 의원은 “법안을 통해 국가필수의약품이 신속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하고, 시장상황에 따라 의약품의 공급이 중단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려는 것이다.”라고 발의 취지를 전했다.

▽환자단체 제외한 정부ㆍ업계 모두 ‘수용곤란’
하지만 환자단체를 제외한 정부와 업계는 모두 ‘수용곤란’ 입장을 밝혔다. 다만, 보건당국은 현재 관련용역이 진행중인 만큼, 신중검토 의견을 내놨다.

국무총리실은 ‘국가필수의약품관리위원회’ 설치는 수용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약사법’에 근거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주도의 ‘국가필수의약품 안전공급 협의회’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업무의 추진ㆍ협의 체계를 다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국가필수의약품 관리업무가 요구하는 고도의 전문성 등을 고려할 때 현행 협의회에서 통합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도 ‘수용곤란’ 검토의견을 통해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ㆍ운영에 관한 법률’은 성격과 기능이 중복되는 위원회 설치를 제한하고 있어, 국가필수의약품관리위원회 신설 조항은 삭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가필수의약품의 제조ㆍ공급 및 공중보건위기대응은 국민건강과 관련해 종합적ㆍ통일적 대응이 요구되는 사무로서, 그 성질상 국가사무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지방자치단체에 국가필수의약품관리종합계획에 따른 세부집행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하게 하는 것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업계도 부정적 입장이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는 “제정안의 여러 규정이 현행 ‘약사법’ 규정과 중복되거나 배치돼 법체계상 문제가 있고, 국가필수의약품이나 공공제약사 관련 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별도의 공공제약사를 설립ㆍ운영시 막대한 국가재정 투입 및 생산설비와 제조기술 문제 등이 고려돼야 하므로, 민간기업이 보유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역시 “공공제약사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의 경우 민간제약사 역량이 부족해 국가기반의 제조시설에서 생산ㆍ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새 공공제약사 신설보다는 필수의약품 공급체계를 갖춘 기존 제약기업의 생산시설에 기반한 제조 협력을 통해 실효성 있는 필수의약품 공급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관련용역을 진행중이라는 보건당국은 ‘신중검토’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각 부처에서 수행중인 의약품 생산ㆍ공급 관련 정책을 효과적으로 총괄 관리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필수의약품관리위원회를 설치할 필요성은 있어보이나, 현재 ‘약사법’ 상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에서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복지부에서 국가필수의약품 컨트롤 타워 운영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할 때 해당 연구용역 결과를 고려해 추진하는 것이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공공제약사 설립과 관련해서는 “국가가 직접 공공제약사를 설립해 의약품을 생산ㆍ공급하는 경우의 비용 효과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으므로 직접 설립운영, 위탁생산, 약가 측면의 정책 등 대안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지난해 12월 2일 ‘약사법’ 개정으로 현재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체계가 이미 마련돼 있어 중복입법의 소지가 있다며, ‘신중검토’ 의견을 내놨다.

개정 ‘약사법’에 국가필수의약품 안전공급 종합대책 수립 주체가 이미 보건복지부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으로 규정돼 있고, 현행 협의체에 국무조정실이 포함돼 있으며, 종합대책이 국무회의의 논의 및 대통령 재가를 통해 확정된다는 점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공공제약사 설립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필수의약품의 자급기반 구축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존 200여 개 국내 제약사 시설을 활용한 위탁제조 방식보다 비용ㆍ효과ㆍ관리 등 종합적 측면에서 더 나은 대안인지에 대해 충분한 비교ㆍ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공중보건위기 대응과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국가필수의약품의 공급 및 관리 및 공공제약사의 설립에 관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국가필수의약품 관련 연구ㆍ개발 및 관리사업, 통계ㆍ조사사업, 정보사업, 약학지식 연구ㆍ보급 협력사업의 경우 약사법에 규정된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 관련 규정과 중복되는 법체계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며, ‘수정수용’ 입장을 전했다.

▽국회, 공공제약사 찬반입장 종합 검토해야
상임위 전문위원실은 공공제약사 설립에 대해 찬반 입장이 대립되고 있으므로 양측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석영환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헌법’ 제36조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민의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은 건강권의 핵심 요소로서 이를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관리를 위한 공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제정안의 입법취지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몇 가지 고려사항을 제시했다.

석 전문위원은 공공제약사에 대해서는 “특수법인으로 운영되는 경우 순수 공무원조직에 비해 조직ㆍ인사ㆍ재무상의 자율성이 확대돼 조직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 우수인력을 확보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 지난 2010년 4월 조직ㆍ인사ㆍ재무의 자율성을 확보해 기관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의료서비스 기능을 확대하기 위해 책임운영기관에서 특수법인으로 전환된 바 있다.

다만, 석 전문위원은 “민간영역에서 채산성 등을 이유로 공급되지 않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해 직접 생산ㆍ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공공제약사 설립ㆍ운영에 투입되는 막대한 예산 등을 감안할 때 국가필수의약품을 위탁제조하거나 약가정책 등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이 대립되고 있으므로, 공공제약사의 설립 및 운영의 근거 마련에 대해 양측의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공공제약사를 통한 국가필수의약품 생산 주요 찬반 입장
공공제약사를 통한 국가필수의약품 생산 주요 찬반 입장

또, 제정안은 국가필수의약품의 생산 및 공급에 관한 사항에 관해서는 ‘약사법’의 특별법 지위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긴 하나, 법 체계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안에서 논의된 사항을 ‘약사법’에 반영할 것인지, 이 법률안에 규정한 후 ‘약사법’을 그에 맞춰 정비할 것인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근 ‘약사법’이 개정돼 국가필수의약품 관리체계에 관한 사항이 법적 근거를 갖춰 사업이 운영 중이고, 이 법률안의 내용과 ‘약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필수의약품의 정의 및 국가필수의약품 관리체계 등에 관한 사항이 상이하게 규정돼 법 적용의 혼란을 유발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야당도 공공제약사 설립에 반대하고 있어 법안 통과에 진통이 예상된다.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은 지난 8월 23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국가에 이미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다양한 시설을 마련했다. 이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활용을 할 때이다.”라며, “새로운 시설을 더 짓는 것은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도 “식약처 필수의약품 사업과 중복되며, 공공제약사는 제약회사가 없는 나라들만 설립하는 추세다.”라며, “이를 통해 직접 공급ㆍ관리하는 것은 정부가 시장을 대신하는 것으로, 효율성과 수익성 악화 측면이 크기 때문에 민간을 지원해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이미 제조ㆍ생산ㆍ유통ㆍ사후관리 등을 식약처가 모두 담당하는데, 왜 별도로 총리실 산하의 컨트롤타워를 마련하는지 의문이다.”라며, 복지부가 관련 연구용역을 하는 것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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