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거버넌스의 두 축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와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이하 재정운영위)’를 가입자 및 공익 중심 거버넌스로 개편하고, 공급자 등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금은 공급자의 결정권한이 지나치게 크니 자문역할에 한정하자는 것인데, 보건당국은 개편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급진적인 변화 주장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양승조ㆍ남인순ㆍ권미혁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실련, 참여연대, 한국노총, 민주노총은 20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국민건강보험 거버넌스 개혁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건강보험 거버넌스 운영의 문제점으로 ▲중앙정부 중심의 독점적 의사결정 ▲거버넌스의 균형성 및 상호견제 장치 미비 ▲가입자 권한 축소 및 시민참여 제한적 ▲건강보험운영 주체와 결부된 거버넌스 등을 지적했다.

김 대표는 건정심 개편방안으로 ▲건강보험 주요 사항에 대한 심의ㆍ조정 중심(의결권한 배제) ▲요양급여기준 및 요양급여비용: 심의 ▲보험료: 재정운영위원회로 권한 이관(건정심 심의결과 반영해 정부가 결정ㆍ고시) ▲이외 건강보험 주요 사항(건강보험종합계획 포함): 심의 ▲공익위원은 국회에서 추천 ▲현재 보건복지부차관이 맡고 있는 위원장은 공익위원 중 선출 ▲상대가치개정사항(행위)은 재정운영위 권한으로 이관 검토 등을 제시했다.

또한 현재 건강보험재정 운영권한을 보건복지부에 일임하는 것에서 기금화 등을 통해 건강보험에 대한 국회 재정통제권을 부여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발제를 진행한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경실련)도 “건강보험료를 부담하는 가입자 및 공익대표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한다.”라며 이익단체 및 계약당사자는 정책결정구조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전문평가위원회와 관련, 건강보험 급여결정위원회와 전문적 자문단을 분리해 급여결정위원회에는 이해 상충되는 위원을 배제하고, 급여결정위원회는 가입자단체 및 공익대표 중심으로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급여결정위원회를 뒷받침하는 자문단에 다양한 임상전문가를 포함하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치료재료 급여결정과정의 이원화를 주장하며 “의사결정과정의 분리로 견제와 선의의 경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투명성과 객관성, 전문성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역시 전문평가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위원 구성의 대대적 개편이 필요하다며,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단체와 공익대표 중심으로 개편하고, 선진국처럼 이해관계자, 처방권자, 계약당사자 등은 원칙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시민노동단체는 공감했다.

이찬진 참여연대 변호사는 “현재 건강보험 거버넌스에서 가입자가 소외된 구조를 잘 봐야한다.”라며, “급여여부와 본인부담률 결정은 복지부장관이, 수가와 보험료율은 건정심이 정하는 구조인데 건정심에서도 가입자는 들러리 역할만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국가재정에 편입되는 순간 재정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건보는 적립식 기금인 국민연금 등과 완전히 차원이 다르므로 기금화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 건보재정 기금화는 결사 반대한다고 말했다.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도 “건보 수입과 지출 측면 모두 공급자 권한이 너무 크다.”라고 지적하며, 보험재정의 85%를 부담하는 가입자들의 결정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본부 차장 역시 “보건의료 거버넌스의 두 축인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최대한 일반국민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라며, “가입자 및 공익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개편하고,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산업체 및 공급자)는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방향으로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또한 김 차장은 “보건의료는 전문적인 영역이며, 정보 비대칭성이 제일 심한 정책영역 중 하나인 만큼, 일부 전문가들에게만 판단을 미뤄두는 일은 자칫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돼 국민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라며, “가입자 위원들이 이를 충분히 감시하고, 각 가입자단체들도 스스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보건당국도 거버넌스 개편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공급자 배제나 건보재정 기금화 주장 등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과장은 “2002년에 만들어진 건정심 구조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거나 운영상의 투명성ㆍ책임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면 얼마든지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선할 여지가 있다.”면서, “어차피 국회에서 법 개정을 거쳐야 건정심 구조 개편이 가능하므로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정 과장은 운영의 투명성ㆍ책임성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세워서 건정심과 국회 심의를 받는 구조를 만들었고, 국민참여위, 옴부즈만 등 가입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라며, “이런 요구들을 최대한 반영하는게 건정심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사회적으로도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보재정 기금화 주장에 대해서는 “기금화할 경우 투명성과 책임성이 증가되고 민주적 통제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다른 장기보험과 달리 보장성 결정 등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건보의 특성상 기금화시 재정운영이 다소 경직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건보제도 자체가 공급자와 가입자 간 계약을 전제로 하는데, 협상과 계약에 의해 정해진 것들이 재정당국의 통제 등에 의해 번복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과장은 이어 “전문평가위와 약평위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아니다. 약제급여, 행위, 치료재료 급여, 급여의 적정성, 가격의 결정 등과 관련해 전문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문기구다.”라며, “의사결정을 하는 기구가 아닌,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불가피하게 의료계, 약계 등 전문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건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80여 명의 운영풀을 운영하며 정부와 가입자단체는 고정위원으로 하고, 일부 전문의견을 제시할 사람은 무작위 추첨으로 운영하고 있으므로 공정성 우려는 좀 덜 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성위원과 관련해 가입자단체를 임의로 배제했다거나 복지부 출신이 소비자단체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소비자단체 추천대로 반영한거다. 복수추천은 위원중 결격사유 가능성이 있으므로 다른 위원도 복수추천을 받는다. 다만 단체별로 우선순위를 정해준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결정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정 과장은 “가격 결정 등 민감한 부분이 있어 로비 등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장치를 갖고 있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위원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진행중이므로 좀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이홍균 국민건강보험공단 정책연구원장은 “건정심과 전문평가위 권한이 너무 비대하고, 구성에 문제가 있으며,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발제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라면서도, “건보재정 기금화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납입과 수령기간이 20~40년에 이르는 연금은 기금일 수 있지만, 건강보험은 매년 예상 급여비를 받아 모두 지출하는게 원칙인 단기보험으로, 기금화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또, 전문평가위와 관련, 심평원장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위원 중 가입자단체를 배제하는 조항까지 만들었다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황의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개발이사는 “요양급여기준에관한규칙에 따라 심평원장이 위원을 정하도록 돼 있고, 그런 경우에는 사전 예고를 하고 의견을 수렴해서 한다.”라며, “그 과정에서 가입자단체를 배제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구성에 있어 가입자단체가 다양할 수 있으니 폭넓게 한다는 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황 이사는 또, 의사결정구조에서 전문가집단인 공급자를 배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평가위와 약제평가위는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임상적 유효성 기반 하에서 가치 기준으로 경제성평가를 하고 보험원리에 부합되는지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기구라 전문가 위주로 돼 있다.”라며, “가입자와 기타 공공 부분도 충분히 참여하는 구조다. 구성원 수가 불균형하다는 지적은 가능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문평가위와 약제평가위는 경제성평가를 근거로 급여여부를 결정해서 보장성을 확대하느냐는 차원의 자문기구로, 해외의 수가ㆍ약가결정기구와 5개 전문위를 비교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황 이사는 “비용효과성에 기반한 가치평가를 해서 급여여부를 판정하는 외국 자문위 역시 의약학과 보건학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다.”라며, “다만 수가ㆍ약가 부분은 가입자 위주로 돼있는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황 이사는 “의약학적 가치나 경제적 가치 판단과 관련, 민간 위주의 의료공급이 이뤄지는 우리나라에서 의사결정 전문평가 단계부터 의약계, 제약 등 공급자 측을 배제한 채 의사결정구조를 가입자 위주로 한다는건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가입자 의견을 더 반영하기 위해 위원수를 적정하게 안분하거나, 약제평가위에 별도 전문기구로 가입자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권미혁 의원은 지난 4월 건강보험의 운영방향 설정에 가입자인 일반 국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건강보험 옴부즈만’을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또 다른 주최자인 남인순 의원도 건강보험 거버넌스 개혁을 위해 건정심 구성을 변경하고, 보험료율을 재정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며, 건정심과 재정운영위원회의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건보법 개정안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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