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외통수에 걸렸다. 외통수란 장기를 둘 때 꼼짝 못하고 당하는 수를 말한다.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의협은 반대를 외치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려는 정부의 노력에 공감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의협은 협의기구를 먼저 제안했고, 결과적으로 협상을 거부할 명분을 잃었다. 비대위를 구성해도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모든 의학적 비급여 급여화 주요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고액의료비로 인한 가계파탄을 방지하기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미용, 성형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의학적 비급여는 신속히 급여화하되, 다소 비용ㆍ효과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본인부담을 차등 적용하는 ‘예비급여’로 건강보험에 편입ㆍ관리하겠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기존 비급여 해소와 함께 새 비급여 발생을 차단하기 위해 신포괄수가제 적용 의료기관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신포괄수가제는 기존의 행위별 수가제와 달리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한 진료(입원료, 처치료, 검사료, 약제 등)를 묶어서 미리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비급여 총량 관리에 유리하다.

문 대통령은 보장성 강화 대책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일차의료 강화, 안정적인 진료 환경 조성, 의료질 개선 등도 병행해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보장성 강화 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오는 2022년까지 총 30조 6,000억원의 건보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또, 보장성 강화 대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건강보험 국고지원(2017년 6조 9,000억원)을 확대하고, 보험료 부과기반 확대 등 수입기반도 확충하기로 했다.

▽보장성 강화대책 공감하지만 개선 요구한 의협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자 의협의 첫반응은 ‘공감’이었다.

의협은 보장성 강화대책을 통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려는 정부의 노력에 공감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의협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개선방안을 찾자는 제안을 곁들였다.

의협의 기본 입장은 ‘조건부 찬성’으로 해석된다.

의협은 하루 뒤 의협회관을 방문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에게 보장성 정책을 구체화하기 전 특별 논의기구를 만들어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복지부 정책국장은 의료계의 참여가 보장되는 특별 논의기구를 신설하겠다고 화답했다.

의협은 협의기구를 먼저 제안했고, 결과적으로 협상을 거부할 명분을 잃었다.

▽결의대회 이끌어 달라는 요구 회피한 의협회장
의협의 대처에 화가 난 회원들이 지난 19일 의협회관서 비급여의 급여화의 문제점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회원들은 비급여 관련 정부와의 협의를 전면 거부하고, ▲원가 이하의 의료 보험수가 정상화 ▲필수의료와 재난적 의료비 중심 단계적 보장 성 강화 ▲적절한 보상 기전 및 합리적인 급여기준 마련 ▲의료전달체계 마련 등을 먼저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회원들은 현장에 참석한 추무진 회장에게 오는 26일로 예정된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를 위한 의사결의대회를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추무진 회장은 내부에서 논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확답을 피했다.

사회를 보던 좌훈정 전 의협 감사가 “오는 23일 상임이사회에서 결정한다고 하니 일단 지켜보자.”라며 정리하려하자 추 회장은 “결정한다고 말은 안했다.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라며 부인했다.

의사결의대회는 26일이고 상임이사회는 23일이다. 행사를 3일 앞둔 이사회에서조차 논의는 하되 결정하겠다는 약속을 못하는 회장을 보면서 회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외통수 걸린 의협…26일 결의대회가 기회될까 
정부는 문 대통령이 직접 정책 내용을 발표할 정도로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복지부는 적정수가를 반영하기 위해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의료계의 어중간한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의협이 국민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에 공감한다고 밝힘으로써 목소리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의협은 내달 16일 개최되는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의결되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과거 비대위가 활동해 온 전례를 보면 새로 구성되는 비대위도 미덥지 않다. 게다가 비대위가 구성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나마 비급여 비상회의가 오는 26일 광화문에서 개최하는 의사결의대회가 비급여의 급여화에 대한 의료계의 입장을 외부에 전달할 기회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도 추 회장은 의사결의대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대의원은 지난 19일 비급여의 급여화 토론회에서 추무진 회장에게 “의사결의대회에 최소 5,000명 이상 참석하게 힘써 달라. 그렇지 못할 경우 임시총회에서 사퇴선언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의사결의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돼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에 의료계의 요구가 반영되도록 하는 시발점이 될까? 추무진 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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