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에 부정적인 입장인 가운데, 국회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나와 주목된다. 국회입법조사처(처장 이내영)는 지난 1일 발간한 ‘2017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현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차의료 강화 수단으로 원격의료를 활용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점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국회입법조사처는 직역간 갈등 심화를 지적하며, 의료인의 의료기기 사용범위 기준을 마련하는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009년부터 매년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내실 있는 국정감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발간해 왔다. 이번 정책자료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 분야에 걸쳐 분석한 680개의 주제를 세 권에 나눠 수록했다.

▽원격의료 재정립과 일차의료 강화
문재인 정부는 원격의료를 의료인 간 진료 효율화를 위한 수단으로 한정하고 정책 방향을 일차의료에 중점을 둘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기간인 지난 4월 28일 발간한 ‘제19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를 통해 “동네의원, 동네약국을 육성하기 위해 일차의료특별법을 제정하고, 동네의료기관에 대한 정책적, 재정적 지원 강화, 대형병원 외래진료 제한, 의원-병원간 환자 의뢰 및 회송체계 강화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현행 ‘의료법’은 정보통신기술 및 원격의료서비스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를 의료인 간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입법조사처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된 것도 문제지만,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가 현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차의료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격의료를 고령사회 진입,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사회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도서지역 주민들과 거동이 불편한 환자, 오지에서 근무하는 군 장병 등에게 문진ㆍ상담ㆍ교육 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격의료가 일차의료 개념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의료인의 의료기기 사용범위 기준 마련해야
국회입법조사처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제언도 내놨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의학과 한의학간 면허와 학제, 의료범위를 구분하는 의료이원체계이기 때문에 의료인이 사용하는 의료기기도 의료범위와 관련돼 있다.

하지만 의료기기를 품목별로 구분해 사용자를 직접 규제하는 의료관계법이 없어 의료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게 국회입법조사처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현대의료기기에 해당하는 진단용방사선발생장치(X-ray)와 특수의료장비(CT, MRI, Mammo)는 별도로 ‘의료법’ 제37와 제38조에 각각 설치 규정을 마련하고, 운영 및 관리책임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의료기기 품목허가시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적합성만을 고려하고 기능에 따라 사용자를 구분해 품목허가를 하지 않고 있다.”라며, “특정 의료기기의 사용이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범위와 연결돼 문제가 되는 경우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 또는 판례를 통해 사용자의 범위가 정해지고 있어 보건의료 직역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보건의료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국회입법조사처는 “의료기기 품목허가시 의료계, 한의계 및 개발자 등으로 구성된 ‘의료기기 기술심사위원회’ 등을 구성해 의료기기의 사용범위와 한계 등도 같이 심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치매국가책임제, 실효성 지적
2017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치매 환자는 72만 5,000명(11만 2,000여명 중증 치매 환자, 15.5% 해당)으로 추산된다. 이는 노인 10명 중 1명(유병률 10.2%)이 치매환자인 셈이고, 2050년에는 27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치매 환자에게 드는 관리비용 역시 2050년에는 연간 106조 5,000억원으로 증가해 GDP의 3.8%를 차지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현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공약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약속했다.

하지만 치매의 예방, 치료 및 관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한다는 취지에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지만, 그 제도 시행의 실효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지역사회 치매지원센터를 확충하면서 이 센터의 기능과 역할이 명확히 제시돼 있지 않은데, 센터의 본래 기능은 치매치료 인프라를 결집해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이 치료 및 복지서비스를 적절히 받을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을 연계하는 것이다.

치매지원센터는 진료기관으로 오인되어 있어 그 위상이 애매하고 보건소가 센터를 관리하며 외부 위탁하는 형태로 실적 위주의 운영에 그치고 있어 전문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다.

또, 치매안심병원을 전국에 설치해 진단 및 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치매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전문인력의 양성과 교육, 종사자 처우개선 및 치매 관리 전담부서의 창설 등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치매 의료비 90%를 건강보험급여로 포괄하고 장기요양보험급여를 적용할 경우 환자가족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 그 취지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현실적 재정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생명보험협회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의료비(간병비 등 기타 비용 포함)는 연간 2,030만원이다.

일각에서는 국가가 치매환자 의료비 90%를 부담하면 환자당 1,800만원, 총 12조 6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한다고 하고, 2050년에는 치매환자가 2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연간 48조 6,000억원을 부담해야 할 것이므로 정부가 독자적으로 재원마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현재 발표된 치매국가관리제는 치매안심병원의 설립 등 공공 중심의 정책만으로 국가치매관리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듯 보이지만, 민간 의료기관의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라고 제언했다.

또, 공공과 민간이 연계된 지역사회 치매관리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으로 분리된 제도적 단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방문요양 대상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요양보호사 비용이 지원되지 않아 간병비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주로 공공의료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는 간호ㆍ간병 통합서비스를 지역사회 민간의료기관으로 확대하고, 이에 치매 환자를 포함시켜 의료기관을 운영할 때 소요되는 비용과 요양병원의 간병비를 보험급여화할 때 드는 비용을 비교ㆍ분석해 실질적으로 치매 환자의 부양부담을 사회적으로 절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중보건장학제도ㆍ국립의대 신설로 취약지 개선
국회입법조사처는 의료취약지의 공공의료인력 양성을 위해 공중보건장학제도 개선과 의료계가 반대하는 국립보건의료대학 신설을 제시했다.

정부는 농어촌 지역의 의료취약지에 대한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분만취약지 지원(2011년~) ▲응급의료취약지 지원(2006년~) ▲신생아집중 의료지역센터 설치ㆍ운영(2014년~) ▲의료취약지 거점의료기관 지원(2014년~)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의료인력의 공급이 필수임에도 최근 보건의료인력의 수도권 집중, 의료취약지 근무 기피 현상으로 지역별 의료수준 격차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16년 기준 전체 의사인력의 53.7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며, 특히 공공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의료취약지 공중보건의사의 수가 2010년 5,179명에서 2015년 3,626명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또한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5.2명으로 OECD 평균 9.1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지방의 간호인력 부족은 더욱 심각해 서울의 경우 인구 한 명당 간호사 수는 0.25명인데 반해 제주는 0.01명으로 지역별 격차가 25배에 달한다.

이와 관련, 국회입법조사처는 “의료취약지에 배치할 공공의료인력 양성을 위해 공중보건장학제도를 개선하고, 국립보건의료대학 설립 등을 통해 별도의 공공의료인력 양성 체계의 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공중보건장학을 위한 특례법’은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가 되려는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일정기간(장학금 수혜 기간 및 근무지에 따라 2∼5년) 근무조건을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국립보건의료대학 유형은 일본(자치의과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의학대학을 졸업하면 9년간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하게 되며, 이 중 70% 이상이 의무근무기간 만료 후에도 해당 지역에서 진료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 의료취약지 문제해결에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실 의료법인 퇴출해야
이외에도 부실 의료법인의 퇴출을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할 것을 주문했다.

비영리법인이 해산하면 그 잔여재산은 정관으로 정한 바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 재산은 공익사업에 사용하거나 이를 유사한 목적을 가진 비영리법인에 귀속된다.

‘의료법’은 비영리 재단법인인 의료법인의 해산과 청산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민법’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규모의 경제(대규모 경영의 이익)를 달성하지 못하고 고비용 생산구조를 가진 부실 중소병원 중에서 의료법인이 개설한 병원 일부가 해산 시 잔여재산이 기부자에게 귀속되지 못하도록 하는 현행 규정으로 인해 과잉진료 등 파행 경영을 자행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의료비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의료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 귀속에 대한 특례를 한시적으로 허용해 부실 의료법인의 해산을 유도하는 등, 시장에서 퇴출할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한편, 부실 의료법인 퇴출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 법인병원 간에 인수ㆍ합병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제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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