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의사를 보건소장에 우선 임용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근거 규정 개정 권고를 내림에 따라, 의사 보건소장 논란이 다시 촉발됐다. 지난 2006년에도 인권위는 같은 이유로 시행령 개정을 권고해 논란이 됐다. 당시 복지부는 ‘보건소는 진료를 포함한 보건의료 업무 전반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갖춘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게 타당하다’는 논리로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청와대가 인권위의 위상 강화카드를 꺼내들면서 과거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의사 보건소장 논란을 짚어봤다.

▽인권위 “의사 보건소장 우선 임명은 차별”
지난 2005년 6월 지자체 보건직으로 알려진 문 모 씨는 ‘의사면허 소지자를 우선적으로 보건소장에 임용하도록 하는 규정은 보건소의 역할에 비추어 맞지 않는 규정이고, 의사가 아닌 보건전문가와 보건업무종사자를 차별해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개정이 필요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한해 뒤인 2006년 8월 29일 인권위는 보건소장 임용 시 의사를 우선 임용하도록 하는 지역보건법 시행령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전문직종에 대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직업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고, 헌법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와, 제11조 평등권 침해의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보건소장 임용조건을 ‘의사의 면허를 가진 자 또는 보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인력 등’으로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복지부장관에 권고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보건소는 진료를 포함한 보건의료 업무 전반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갖춘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게 타당하다며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2015년 인권위에 의사 보건소장 우선 임용은 차별이라는 진정이 다시 제기됐다.

인건위 판단은 ‘의사 보건소장 우선 임용은 차별’이라는 10년 전과 동일했다.

▽인권위, 10년전 판단에 추가된 사항은?
지난 2006년 인권위가 보건소장의 의사 우선 임용에 대해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고 판단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보건소의 업무가 국민건강증진ㆍ보건교육ㆍ구강건강 및 영양개선사업, 전염병의 예방 및 관리, 공중위생 및 식품 위생, 응급의료에 관한 사항 등 의학뿐만 아니라 보건학 등 다른 분야와 관련된 사항도 있어 건강증진 등과 관련된 보건학적 지식이나 지역보건사업도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둘째, 보건소장은 소속 공무원에 대한 지휘ㆍ감독, 관할 보건지소 및 보건진료소의 직원 및 업무에 대한 지도ㆍ감독을 해야 하는 등 조직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끌고 대외관계적 역할을 수행하고 지역보건사업을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을 실천하는 등의 리더십 역량도 필요한 직위라는 점을 들었다.

셋째, 지역보건법 시행규칙의 전문인력 최소 배치 기준에 따라, 각 보건소에는 보건소장을 제외한 의사를 최소 1명에서 최대 6명까지 별도의 의사 전문인력을 두도록 한 것도 시행령 개정을 판단한 근거라고 제시했다.

올해 인권위의 판단에는 메르스 관련 사항이 추가됐다.

인권위는 “복지부장관은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유행 시 일선 보건소가 수행하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 업무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하나, 이는 예방의학 등의 관련 분야 전문의 또는 비의사로서 보건학을 전공하거나 보건사업 종사 경력이 있는 자를 보건소장에 우선 임용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며, 단순히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이 보건소장 업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근거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청와대, 인권위 위상 강화 지시…의사 보건소장 변수
청와대가 인권위의 위상 강화를 직접 지시하면서 의사 보건소장 권고에 변수로 등장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5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의 인권 경시 및 침해를 적극적으로 바로 잡고, 기본적 인권의 확인 및 실현이 관찰되는 국정운영을 도모하기 위해 인권위의 위상강화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된 국가인권위의 대통령 특별보고를 지시했다.

또, 국가인권위로부터 개선 권고를 받은 각 정부 기관에 권고수용률을 높이도록 지시하면서, 인권위 권고의 핵심 사항은 불수용하면서 부가적인 사항만 수용하는 일부 수용은 사실사 궈고 불수용으로 판단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특히, 국가기관과 기관장 평가 항목의 하나로 인권위 권고 수용지수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각 정부부처는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기 위해 골몰하게 됐다.

복지부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사 보건소장 우선 임용을 개선하라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청와대의 방침 후 인권위 권고와 관련한 간담회를 마련했다.

▽의협, 메르스 강조ㆍ피켓 시위로 대응
의협은 인권위의 권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 5월 인권위 권고안 의견서를 통해, 지역보건법 시행령에 의한 차별성은 실제 임용 비율에서 확인할 수 없고, 국민의 건강ㆍ생명과 직결된 주요 직무에 대한 임용 자격 제한은 타당하며, 오히려 국민건강을 위해 의사 우선 임용 규정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일본의 경우도, 보건소장은 의사를 우선 임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부득이한 경우 비의사를 보건소장을 임명할 수 있으나 2년이라는 제한기간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24일 인권위 지역보건법 권고 간담회가 열린 건강증진개발원과 보건복지부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의협 임원들은 보건소장에 전문가인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시행령이 개정되면 제2의 메르스 사태가 다시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사 보건소장을 임명하지 않으면 메르스 사태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원론적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미 인권위가 메르스 사태에 대해 ‘예방의학 등의 관련 분야 전문의 또는 비의사로서 보건학을 전공하거나 보건사업 종사 경력이 있는 자를 보건소장에 우선 임용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의협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전문가인 의사가 보건소장을 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주장하기 보다는 의사 보건소장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

또, 의사가 소장인 보건소와 비의사가 소장인 보건소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지역 주민의 건강증진과 공중보건 예방사업 성과를 비교해도 좋다. 예를 들어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하는 지역주민 건강조사 결과를 지자체별로 분석해 의사 보건소장이 비의사 보건소장보다 지역 주민의 건강관리에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또, 의사 보건소장이 제안한 공중보건사업중 성공한 사례나, 국가사업으로 확대 시행된 사례를 소개하는 방안도 한 방법이다.

결론은 의사가 보건소장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다가가는 홍보 전략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의사가 보건소장을 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같은 표현 말이다.

한편, 24일 열린 인권위 권고 관련 간담회에서는 어떤 논의가 진행됐을까?

간담회에 참석한 한 전문가단체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간담회는 각 참석자가 소속 단체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의견을 주고 받는 토론형식은 아니어서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복지부는 인권위에서 개정을 권고했기 때문에 무겁게 받아들이고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청와대가 나서서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방안을 도입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움츠러들지 않는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인권위 권고대로 시행령이 개정되면 의사 보건소장은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의사 보건소장을 우선 임용하라는 현행 규정이 있는데도 전체 보건소장중 의사 보건소장의 비율이 40%에 불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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