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끊이지 않는 의료기관 집단결핵 감염사태를 막기 위해 의료인 채용시 결핵검진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지원 없는 검진 의무화는 의료기관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앞서 서울시 노원구 모네여성병원 신생아실 간호사가 지난달 27일 폐결핵을 신고해 이 곳을 거쳐간 신생아ㆍ영아를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반복되는 결핵 집단감염 사태에 국회는 잇달아 관련법을 발의하고, 정부도 하위법령 개정에 나섰다.

특히 복지부가 지난 21일 입법예고한 결핵예방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의료기관 등에서 의료인 등을 신규 채용하는 경우, 입사 또는 임용 후 1개월 이내에 의료기관의 장 등이 결핵검진을 실시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고위험 분야 종사자는 해당 업무 배치 전 실시하도로 했다.

복지부는 “최근 분만전문병원, 어린이집, 산후조리원 등 종사자가 결핵에 감염돼 신생아 등에 결핵 전파사례가 발생해 이에 대한 개선대책으로 의료기관 등 종사자 입사 시 결핵검진 의무화 필요성 제기되고 있다.”라며, “현행 결핵예방법 및 같은 법 시행규칙에서는 의료기관의 장 등이 종사자ㆍ교직원에게 결핵 및 잠복결핵검진을 연 1회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취업 당시 의료인 등의 결핵검진 의무화는 규정하고 있지 않아 이러한 미비점을 개선해 의료인 등에 의한 결핵 전염을 차단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의료인 채용시 결핵검진 의무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비용을 모두 의료기관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는 복지부와 회의할 때 지적한 부분이다.”라며, “오직 규제만 강화하는 것은 너무하다.”라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는 규제만 강화하기보다는 검사비 지원이나 잠복결핵 치료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해 줘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잠복결핵 유병률이 가장 높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빨리 정해주지 않는 이상 부분적인 개선책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김영균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이사장도 “결핵 치료비는 정부가 지원하고 있지만, 검사비용도 지원해 줘야 한다. 일단 찾아내야 치료를 할 것 아닌가.”라며, “결핵검진 의무화 비용을 의료기관에만 떠넘기니 의료계가 반발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물론 천문학적인 비용이라 정부도 부담이 되겠지만, 국민을 설득해서 세금을 더 걷든 여러 방법으로 예산을 마련해 검사비용은 반드시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현행대로 의료기관이 검진비용을 부담하도록 할 방침이다.

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결핵검진 비용과 관련해 세부적인 부분은 아직 결정되진 않았지만, 현행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각 의료기관의 장이 검진하는 걸로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전국 민간의료기관의 의료인 채용시 결핵검진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다만, ‘결핵안심국가’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가 잠복결핵 검진을 지원하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3월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결핵 발병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결핵안심국가 실행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정부는 집단시설 내 결핵 발생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결핵예방법’을 개정ㆍ시행하고 예산 162억원을 확보해 어린이집, 의료기관 등 집단시설 종사자에 대한 결핵 및 잠복결핵 검진을 의무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3월부터 ▲의료기관 종사자 12만명 ▲어린이집 종사자 14만명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11만 8,000명 등 집단시설 종사자 약 38만명에 대해 잠복결핵검진을 추진하고 있다.

6월 8일 기준으로 의료기관, 어린이집,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검진대상자 37만 8,000명 중 33.8%(12만 7,619명)에 대해 검진을 추진한 결과, 21.4%(2만 7,256명)가 양성자로 확인됐다.

아울러, 내무반 등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군부대는 전염 우려가 높아 사전 예방이 중요한 병역판정검사 대상자 34만명에 대해 올해 1월부터 잠복결핵 검진이 추진되고 있으며, 결핵 발병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는 연령인 고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올해 4월부터 잠복결핵검진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결핵 발병 위험이 높고 건강관리가 취약할 수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은 3월부터 추진하고 있으며, 교정시설 재소자는 8월부터 잠복결핵검진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정부가 시행 중인 의료기관 종사자 잠복결핵검진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재정상황이 열악한 중소병원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마저도 올 한 해 한시적으로 책정된 예산으로 이후에는 검사비 지원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국회에서도 관련법이 연달아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지난 19일 의료기관, 학교 등의 종사자ㆍ교직원을 채용할 때와 채용 후에 매년 결핵검진 등을 실시하도록 하는 ‘결핵예방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같은 당 우원식 의원도 지난 14일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해 의료기관에서 환자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의료인 및 종사자를 채용할 경우 건강검진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 역시 지난 13일 발의한 ‘결핵예방법 개정안’을 통해 의료기관ㆍ학교의 장 등은 종사자ㆍ교직원을 채용할 때 채용 후 1개월 이내에 결핵검진 등을 실시하도록 의무화 해 결핵감염을 사전에 예방하도록 했다.

특히 박 의원은 “의료기관 종사자의 결핵 감염은 일단 발생하면 대규모의 역학조사는 물론, 실제 원내 결핵감염사태로 이어질 경우 그 파급력이 중대한 사안이다.”라며, “정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국가 차원의 감염관리 사업을 민간 의료기관의 책임으로 떠넘길 것이 아니라, 충분한 예산 확보를 통해 안정적인 지원을 이어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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