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김승택)은 2013년 7월부터 보험회사와 공제조합의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업무를 위탁 받아 수행하고 있다. 심평원은 의학적 전문성에 기초한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통해, 국민을 의학적으로 보호하고 심사결과에 대한 의료기관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심평원이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위탁 받은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평원의 자동차보험 위탁심사를 둘러싼 이슈를 살펴봤다.

▽심평원 자보 위탁심사 ‘자의 아닌 타의’
자동차보험 진료비 위탁심사는 손해보험회사 등에서 자체 인력과 기준으로 수행해왔던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전문심사기관인 심평원으로 일원화하는 제도다.

심평원에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위탁한 취지는 적정 진료를 유도해 선의의 환자를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의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위탁 배경을 살펴보면, 국민권익위원회는 자동차보험과 관련해 일부 의료기관 및 환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보험회사의 자체 심사에 전문성과 객관성이 미흡하다는 점 등을 들어 지난 2009년 11월 심사위탁을 권고했다.

약 1년 후인 2010년 12월 정부 6개 부처(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경찰청)는 허위ㆍ과잉진료 및 진료비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하기로 합의했으며, 2012년 2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자동차보험 진료비 청구ㆍ심사ㆍ지급업무는 의료기관이 심평원에 자동차보험 진료비를 청구하면 심평원이 심사를 진행하고, 보험회사 및 공제조합이 심사결과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평원의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에 관한 기준(국토교통부 고시)’에 근거해 진행된다.

세부 내용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의학적으로 보편ㆍ타당한 방법ㆍ범위 및 기술 등으로 인정한 진료기준(건강보험기준) ▲건강보험기준과 달리 적용하는 사항(별표1) ▲건강보험기준에서 요양급여로 정하지 않았거나 달리 정한 사항(별표2) ▲고용노동부장관이 고시한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 산정기준’의 별표 ‘산재보험에서 추가로 인정하는 요양급여의 범위 및 비용 산정기준’ 등이다.

▽심평원 자보심사 4년, 빛과 그림자 상존
심평원이 최근 공개한 ‘자동차보험 진료비 통계 정보’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자동차보험 진료환자는 204만명, 청구건수 1,553만건, 진료비 1조 6,586억원으로 2014년과 2015년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 환자수ㆍ청구건수ㆍ진료비 모두 연간 증가율은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심평원은 이를 두고 위탁심사가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 현황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 현황

그런데, 속내를 보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한방 진료비는 2014년 2,722억원에서 2016년 4,598억원으로 무려 69% 증가한 반면, 의ㆍ치과 진료비는 2014년 1조 1,512억원에서 2016년 1조 1,988억원으로 4% 증가하는데 그치는 등 한방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보험 진료비 영역에서 한방 의료기관의 강세는 청구기관 현황에서도 확인된다. 2016년 기준 자동차보험 청구기관은 1만 8,327개소로 개설 의료기관 6만 4,986개소의 28.20% 차지하고 있다.

진료분야별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 현황
진료분야별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 현황

이 가운데 의원은 4,976개소로 개설 의원 3만 292개소의 16.43%에 그친 반면, 한의원은 1만 719개소로 개설 한의원 1만 3,868개소의 77.29%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방으로의 자동차보험 진료비 풍선효과는 지난해 4월 공개된 ‘자동차보험 심사위탁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도 확인됐다.

순천향대학교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김헌수 교수)이 진행한 해당 연구는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가 심평원으로 위탁된 지 2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위탁심사의 효과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심평원이 중립적인 심사자의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진료비 심사의 객관성과 투명성이 담보됐고, 결국 진료비를 포함한 대인보험금 지급 체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위탁심사 진료비 심사가 체계화되면서 보험회사의 무리한 진료비 삭감 등 고질적인 심사관행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 결과 진료비에서의 변화보다는 합의금이 크게 감소하면서 전체 지급보험금도 대폭 감소했다.”라고 분석했다.

단, 위탁심사의 효과가 진료비보다 합의금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한방으로의 풍선효과가 발생하는 등 자동차보험 진료비를 둘러싼 개선과제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진은 “위탁심사 이후 통원환자 수의 급격한 증가로 통원진료비가 증가했으며, 특히 요양병원과 한방의료기관의 진료비가 위탁심사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과와 달리 한방의료기관에서 뇌진탕, 경추염좌 및 좌상, 요추염좌 및 좌상의 진료비, 환자 수 및 평균 진료비 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심평원 자동차보험심사센터 강지선 센터장은 지난 2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방 진료비 증가는 한의계의 자동차보험 진료환자 대상 홍보 활동, 입원환자 대비 외래환자 증가 등 여러 요인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현재 한방 진료비 증가 요인을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위탁심사 자체 문제제기 여전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이 민간 자동차보험사의 진료비 심사를 위탁수행하는 것 자체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은 최근 심평원의 자동차보험 심사업무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공단 노조는 “심평원의 자동차보험 심사는 시행 전부터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커다란 우려를 불러일으켰다.”라면서, “국민이 낸 연간 4,000억원의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이 민간의료보험사의 진료비심사를 대행하는 것에 따른 개인질병정보의 불법 활용 및 유출, 건강보험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특히,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심평원으로 하여금 민간 자동차보험사를 위해 자동차보험 진료비심사를 수행토록 한 것은 국민의 공익보다는 재벌기업의 사익을 우선시한 것으로 지난 정부의 큰 정책오류였다.”라고 주장했다.

심평원은 기관이 자동자보험 심사 위탁을 통해 민간 보험사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진료비 증가율 억제 등을 내세우며 국민건강과 공적보험에 기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자동차보험 심사업무 수행에 필요한 제반비용(인건비, 사업비, 사무실임차료, 사무용품 등)은 위탁계약에 따라 위탁자(보험회사ㆍ공제조합)로부터 받고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과는 전혀 무관한 특별회계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심평원의 회계는 진료비용 심사, 의료 적정성 평가 등 기관 고유의 업무에 대한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의약품관리종합정보, 자동차보험심사)로 구분된다.

2016회계연도 심평원 재무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보험심사의 수입(보험회사 및 공제조합 부담) 결산액은 당초예산액 대비 3.2% 감소한 170억 1,000만원이 실현됐고, 지출 결산액은 당초예산액 대비 79.1%인 138억 9,900만원이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결산액 기준 지출항목의 세부 내역은 ▲사업비 30억 8,500만원 ▲인건비 89억 4,200만원 ▲기관운영비 18억 7,200만원 등이며, 예산액 대비 결산액 차액 3억 5,800만원은 반납됐다.

건보공단 노조가 문제 삼은 ‘차세대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 시스템 구축’ 사업 예산 109억원도 위탁자(보험회사ㆍ공제조합)가 부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심평원은 건강보험 심사를 통해 축적된 개인질병정보를 자동차보험 심사를 위해 활용해 자동차 보험사들의 이익 극대화에 걸림돌이었던 기왕증 여부 등을 가려내 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강지선 센터장은 “기왕증 심사는 자동차보험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심사 참고자료를 활용해 판단한다.”라며, “자동차보험 심사를 위해 건강보험의 개인질병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불가능한 부분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 고위 관계자는 “심평원이 위탁심사를 수행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의료계는 심평원이 민간보험인 자동차보험 진료비를 심사하는 것에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심평원에서는 자동자보험 진료비 위탁심사가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고 하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라면서, “환자들이 의과에서 한방으로 많이 가고 있는 현상 등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심평원이 환자와 의료계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동안 심사했던 것을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며, “상해와 질병을 구분해 심사를 진행하고, 정말 환자를 위한 급여기준인지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